포천 갈월리 백로가 위험해요!

학교건물 인근에 수백 마리 서식... 안내판도 하나 없어

등록 2004.07.19 20:12수정 2004.07.21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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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일가족으로 보이는 백로 3 마리의 한가로운 한 때

일가족으로 보이는 백로 3 마리의 한가로운 한 때 ⓒ 이인우

마지막 장마가 물러간 지난 18일 일요일 오전 ‘백로’가 서식하고 있는 포천시 갈월리 소흘읍에 위치한 갈월중학교를 찾았다.

이곳을 찾은 것은 1년전의 기억 때문이다. 우연히 이 지역을 지나다가 백로들의 모습을 보게 된 것. 별 생각없이 그냥 지나쳤는데, 어쩐 일인지 다시 한 번 꼭 와보고 싶었다.

버스를 타고 가다 갈월중학교가 있는 갈월리 인근 송우리에서 내렸다. 이 지역은 올 가을 입주를 앞둔 5천 세대가 넘는 아파트 건설공사의 막바지 공정이 한창이었다. 또 인근 상가의 신축, 신규 도로개설 등으로 시내 전체가 공사 현장이나 다름없었다.

공사장에서 나는 중장비 소음과 도로의 먼지는 일상생활에 많은 불편을 야기하고 있었다. 특히 이곳 송우리 아파트 공사 현장으로부터 직선거리로 약 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갈월리’에는 백로 집단 서식지가 있어 그 피해가 우려됐다.

송우리에서 백로가 둥지를 틀고 있는 갈월중학교까지는 도보로 10분 정도 걸렸다. 갈월중학교는 약간 언덕에 위치해 있었는데, 학교 운동장에 들어서서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니 송우리 아파트 공사 현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학교 운동장은 아침 조기축구회 회원들이 운동한 흔적이 남아 있었으나 모두 돌아간 뒤라 조용했다.

a 포천시 소흘읍 갈월중학교옆 백로서식지의 백로

포천시 소흘읍 갈월중학교옆 백로서식지의 백로 ⓒ 이인우

백로 울음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따라 건물 뒤쪽으로 가니 한눈에 보아도 수백 마리 이상 되는 백로들이 소나무 위에 앉아 있었다. 순간 나는 '학교 건물과 불과 10여 미터 떨어진 숲의 나무 위에 어떻게 저렇게 많은 백로들이 둥지를 틀었을까?'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카메라에 백로의 우아한 자태를 담기 위해 적당한 위치를 찾았다. 그러나 워낙 높은 나무 위에 둥지를 틀고 있어 그 바로 아래에서 백로의 전체 모습을 담기란 역부족이었다. 백로의 울음소리가 바로 눈앞에서 들렸지만 하얀 깃털을 휘날리는 백로의 전체 모습은 좀처럼 볼 수 없었다. 바로 숲 옆에 있는 교실로 올라가 높은 위치에서 백로들을 찍으려 했지만 일요일이라서 학교 건물은 모두 잠겨 있었다. 너무도 아쉬웠다.


a 갈월중학교 교실과 불과 10여미터 떨어진 백로 서식지

갈월중학교 교실과 불과 10여미터 떨어진 백로 서식지 ⓒ 이인우


a 갈월중학교 교실 바로 뒤에서 집단 서식하고 있는 백로

갈월중학교 교실 바로 뒤에서 집단 서식하고 있는 백로 ⓒ 이인우

학생들의 수업시간에 백로 울음소리가 방해가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백로들의 울음소리는 꽤 크게 들렸다. 한편으로는 '학생들이 떠드는 소리와 학교 종소리에 백로들이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a 백로 서식지 숲과 학교 건물사이에 있는 훼손된 담장

백로 서식지 숲과 학교 건물사이에 있는 훼손된 담장 ⓒ 이인우


a 백로 서식지와 갈월중학교 건물의 거리는 불과 10여 미터에 불과하다

백로 서식지와 갈월중학교 건물의 거리는 불과 10여 미터에 불과하다 ⓒ 이인우

학교 측이 백로가 서식하고 있는 숲에 학생들이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게 만들어 놓은 듯한 울타리가 보였다. 그러나 그마저 누군가에 의해 훼손되어 구멍이 난 상태로 방치되고 있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백로 서식지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훼손된 담장으로는 학생들이 자주 드나들었는지 아예 숲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 있었다.


이곳은 분명 수백여 마리의 백로들이 집단으로 서식하며 알을 부화하고 가족을 이뤄 살아가는 매우 중요한 장소이다. 그러나 학교 교정 어디에도 이곳이 백로의 서식지이며 숲 안으로는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하는 안내표지판 하나 발견할 수 없었다. 심지어 숲 안에는 학생들이 버린 듯한 우유팩, 슬리퍼, 공책 등이 널려 있었다.

왜 이렇게 관리가 소홀한 것일까. 20일 포천시 문화공보담당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곳에 백로 서식지가 있는 것을 아느냐"고 물었다. 담당자는 "몰랐다"며 "이 지역에 있는 백로 서식지는 그 외에도 신북면, 관인면에도 있다. 이들 백로들이 서식지를 옮겨다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적어도 백로들을 보호하기 위해 안내판 정도는 만들어 놓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자, "그 정도로 신경쓸 여력이 없다. 좋은 제안으로 알겠다"고 말했다.

a 둥지위의 어린 새끼 백로

둥지위의 어린 새끼 백로 ⓒ 이인우


a 나무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백로

나무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백로 ⓒ 이인우

게다가 백로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 소나무의 높이는 교실 건물의 높이와 비슷해서 학생들이 마음만 먹으면 교실 안에서 손쉽게 백로를 향해 무엇인가를 던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매우 위험한 상황에 백로들이 노출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됐다. 20일 학교 행정실 측에 확인한 결과, "학생들에게 숲으로 난 창문을 되도록 열지 않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숲으로 통하는 출구를 막아놨다"고 말했으나, 정작 울타리가 훼손된 것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

a 둥지에서 떨어져 죽은 백로 한마리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둥지에서 떨어져 죽은 백로 한마리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 이인우

나는 계속 백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러다 나뭇가지에 걸린 채로 죽어 있는 백로 한 마리를 발견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처절했다. 학생들이 던진 돌멩이에 맞아 죽지는 않았을까 하는 괜한 의심(?)마저 들었다. 학교 주변에 이곳이 백로 서식지임을 알리는 안내판 하나만이라도 있었다면 저렇게 죽어가는 백로는 없을 텐데….

a 둥지에 앉아 어미를 기다리는 새끼 백로

둥지에 앉아 어미를 기다리는 새끼 백로 ⓒ 이인우

이전까지는 백로 한두 마리가 주변의 논에 날아와 가끔씩 모습을 보였지만 이토록 수백여 마리가 집단으로 둥지를 틀고 한 세대를 맞이하는 장면은 불과 수년 전의 일이라고 학교 입구에서 만난 인근 마을의 할아버지 한분이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또 “예로부터 백로는 부자 동네에만 살았다는 말이 전해지는 만큼 길조(吉鳥)”라며 백로가 그곳에 살고 있음을 자랑스러워 하셨다.

그러나 백로가 살고 있는 갈월리의 옆마을 송우리 시내에서는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는 중이었고, 주변의 논과 밭은 흙이 메워져 방치되고 있었다. 즉 백로들의 터전인 논과 밭이 도시화로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갈월리 백로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도리는 무엇일까?

서식지 주변에 작은 안내판을 설치하고 호기심 많은 주변 학생들이 숲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보다 높은 담장을 설치하는 것 아닐까? 또한 백로의 자연생태를 직접 두 눈으로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하는 등 학교 측에서도 많은 배려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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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그리고 조선중후기 시대사를 관심있어하고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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