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농약 대신 천적 사용하는 농가들

[기획] 벼랑 끝 우리 농업, 안전한 농산물만이 살 길이다! <1>

등록 2004.07.20 14:11수정 2004.07.22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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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운(45세)씨의 방울토마토 농장은 길이 115m짜리 비닐하우스 다섯 동으로 약 5000여 평이다. 노씨는 올해 6월 12일 토마토 묘목을 심었다.

토마토나 딸기 등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실내 재배작물에서 가장 골치 아픈 해충은 온실가루이와 잎굴파리 등이다. 이들 해충을 잡기 위해서는 살충제를 살포하는 게 지금까지의 보편적인 농법이었다.

그러나 노씨네 토마토 농장에서는 살충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노씨는 토마토 묘목을 심는 것과 동시에 살충제 대신 ‘온실가루이좀벌’과‘굴파리좀벌’이라는 살아있는 벌레를 사용하고 있다. 이들은 편지봉투 크기 만한 종이상자에 담겨져 있으며 비닐하우스 한 동에 2~3개씩 걸어놓기만 하면 된다.

a 토마토 농장의 온실가루이를 방제하기 위한 온실가루이좀벌(동전처럼 생긴 곳에 천적이 있다).

토마토 농장의 온실가루이를 방제하기 위한 온실가루이좀벌(동전처럼 생긴 곳에 천적이 있다). ⓒ 윤형권

노씨네 옆 동네에 사는 김범석(가명, 59세)씨도 비닐하우스를 이용하여 약 3000평의 방울토마토 농사를 짓고 있다. 김씨는 노씨와 비슷한 시기인 올해 6월 중순경 토마토 묘목을 심었다. 김씨도 노씨와 마찬가지로 온실가루이와 잎굴파리라는 녀석들이 나타날 것에 대비하고 있다.

그러나 김씨는 노씨와는 달리 이들 해충에 대비해 화학농약을 준비해 놓았다. 김씨는 이들 해충이 나타나기만 하면 즉시 농약을 살포하여 한방에 없애 버리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

김씨는 노씨의 이상스런 해충구제방법을 미덥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 ‘아직 해충이 나타나지 않았는데, 작은 종이봉투에 담긴 벌레만 여기저기 걸어 놓으면 된다고 하니 참 우스운 일이다. 벌레 몇 마리로 온실가루이와 굴파리와 대항하다니…. 그 녀석들이 얼마나 끈질긴데…’라며 노씨네 농장을 쳐다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그러나 노씨는 김씨의 이런 걱정에도 여유 만만한 미소를 짓는다. 노씨가 이렇듯 여유를 보이는 데는 나름대로의 비책이 있기 때문이다. 노씨는 지난해 딸기재배에 처음으로 천적을 사용하여 재미를 톡톡히 보았다. 비책을 얻은 것이다. 노씨는 논산시 노성면 ‘촌놈딸기’작목반 회장이다.

‘촌놈딸기’는 노씨 또래의 젊은 딸기재배 농군들이 모여 만든 친환경, 고품질을 추구하는 딸기 브랜드다. 친환경, 고품질 딸기를 생산하자니 농약을 쓰지 않아야 하는데 고민하다가 천적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해충을 잡거나 예방하는 천적에 대해 처음에는 믿음이 가지 않았어요. 지금까지의 농사경험으로는 독한 농약을 뿌려도 살아남는 질긴 해충이 많은데, 어떻게 살아있는 벌레로 해충을 예방하거나 잡을 수 있겠는가? 하는 의심이 들었어요.”

그러나 노씨는 일단 한 번 모험을 해보기로 결정했다. 딸기묘목을 옮겨 심을 때 점박이응애의 천적인 칠레이리응애와 목화진딧물 천적인 콜레마니진디벌 등을 딸기재배 비닐하우스에 군데군데 놓았다. 그 결과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났다.


a 응애의 천적인 칠레이리응애(왼쪽)는 1마리가 하루에 응애 알 30개와 약충 20마리, 성충 5마리를 잡아먹는다. 오른쪽의 콜레마니진디벌은 진딧물의 천적이며 1마리가 300~380마리의 진딧물에 산란하여 기생함으로써 진딧물을 퇴치한다.

응애의 천적인 칠레이리응애(왼쪽)는 1마리가 하루에 응애 알 30개와 약충 20마리, 성충 5마리를 잡아먹는다. 오른쪽의 콜레마니진디벌은 진딧물의 천적이며 1마리가 300~380마리의 진딧물에 산란하여 기생함으로써 진딧물을 퇴치한다. ⓒ (주)세실





"반신반의 했던 천적의 효과가 서서히, 그리고 깜짝 놀랄 정도로 나타났어요."

해충이 많이 나타나야할 시기인데 진딧물이나 점박이응애 등의 개체수가 아주 적게 나타난 것이다. 뿐만아니라 천적이 이들 해충을 하나씩 잡아먹고 있었다.

올해 봄에 노씨와 부인 남기순(45세)씨는 논산시에서 추천하는 그린투어 프로그램으로 딸기농장을 개방했다. 그린투어 프로그램은 일반인들이 딸기농장을 방문해 1인당 5000원 정도를 내고 현장에서 딸기를 실컷 따먹기도 하고 또 한사람이 500g씩 가져가도록 하는 딸기농장 체험프로그램이다.

노씨네 딸기농장 입구에는 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인증한 친환경농산물표시인증마크를 걸어놓아 그린투어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안전한 딸기임을 인식시킴으로서 큰 호응을 얻었다.

논산시 연산면에서 30년간 포도농사를 짓고 있는 정재정(59세)씨는 올해 4월부터 6월까지 점박이응애 방제를 위해 칠레이리응애를 사용하였다.

“포도농장이 8000여 평인데, 일반 농약보다 천적 사용에 따르는 비용이 많이 드는 게 부담입니다. 처음 천적을 사용했지만 친환경농업으로서의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봅니다. 비용문제와 다양한 해충에 대한 천적의 종류도 갖추는 게 뒷받침이 되어야 농사꾼이 맘 놓고 천적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a 포도농장과 파프리카 농장에 사용중인 천적

포도농장과 파프리카 농장에 사용중인 천적 ⓒ 윤형권

전북 김제시 순동에 위치한 참샘영농조합은 1995년부터 우리 온실로 된 유럽식 재배시설로 파프리카 재배를 시작했다. 현재 참샘영농조합은 6600평의 시설에서 연간 14억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생산량의 90%가 수출로 나가고 있으며 나머지 10%는 국내 유명백화점으로 나간다.

참샘영농조합 인근에는 15개의 영농조합 또는 개인이 운영하는 파프리카 재배 단지가 형성되었다. 또 이들 조합에서는 선별처리와 판매를 담당하는 별도 법인체를 설립하여 생산과 판매를 분리해 경영하고 있다.

이들 영농조합 단지에서 생산하는 파프리카의 한해 수출은 1000만 달러. 친환경농업의 대표적인 성공사례이다. 적절한 수분과 영양 그리고 천적의 사용 시기 등을 컴퓨터로 제어하는 최신식 시설이 갖추어진 이곳에서는 생산 이력을 통해서 무농약농산물 품질을 철저히 유지하고 있다.

a 수출을 위해 선별작업을 마친 참샘영농조합의 싱싱한 파프리카.

수출을 위해 선별작업을 마친 참샘영농조합의 싱싱한 파프리카. ⓒ 윤형권

참샘영농조합의 조병운(34세) 과장은 “파프리카 농장에서 발생하는 해충은 대개 온실가루이, 총채벌레, 진딧물 등인데 살충제를 살포할 수 없습니다. 잔류농약이 검출되면 수출길이 끊어지니까 무농약을 고집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해 세실(주)에서 생산하는 다양한 천적을 사용하여 일본에서 온 바이어들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파프리카 재배에 다양한 천적을 사용하여 해충을 방제하는 기술이 일본보다 앞서 있다고 합니다. 품질에 대한 신뢰를 확실히 준셈이죠.”

참샘영농조합 6600평의 파프리카 농장에서 천적 사용으로 지출하는 비용이 3500만원 정도. 만약 일반 농약을 사용한다면 1000만원 정도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화학농약을 사용했을 경우 수출이 어려운 것은 물론 실내에서 살충제 살포에 따른 인체에 미치는 영향과 인력 비용을 감안하면 그 정도 비용 지출에 대해 아깝지 않다고 한다. 소비자들에게‘안전한 농산물’을 공급하는 천적사용은 친환경농업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올해 11월에 파프리카 묘목을 심을 때부터 인근 15개 농가와 조합에서는 모두 천적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이젠 농사도 생산자가 일방적으로 생산하던 시대는 가고 소비자의 욕구에 생산자가 맞춰주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소비자가 믿고 찾는 안전한 농산물의 생산만이 살 길입니다.”

천적을 이용한 안전한 농산물 생산수출로 연간 100만 달러의 소득을 올리고 있는 참샘영농조합의 조병운 과장의 말이다. 천적만이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그러나 인체에 해로운 농약을 하지 않은 안전한 농산물만이 소비자로부터 선택받는다.

천적이라고 하는 인간에게 무해한 생물학적 방제에 의해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창조주가 인간에게 내려준 축복이며 지혜가 아니겠는가?

친환경농산물표시인증제도에 대해

▲ 친환경농산물표시인증마크.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충남지원 제공

친환경농산물은 자연환경을 보전하고 소비자에게 보다 안전한 농산물을 공급하기 위해 농약과 화학비료 및 사료첨가제 등 화학자재를 전혀 사용하지 아니하거나 최소량만 사용하는 농산물을 말한다.

친환경농산물의 표시인증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토양과 수질, 생산 환경은 물론 생산과 출하된 농산물에 대해서 철저히 확인하는 제도이다.

친환경농산물 표시인증마크에는 유기농산물, 전환기유기농산물, 무농약농산물, 저농약농산물이 있다.

유기농산물 : 농약과 화학비료를 일체 하지 않은 것
전환기유기농산물 : 유기농산물로 전환하는 과정의 농산물. 유기재배를 2년간 지속해야 유기농산물이 된다.
무농약농산물 : 농약을 일체 하지 않았으나 화학비료는 일반적인 시비에 비해 1/3수준 이하로 한 것.
저농약농산물 : 농약과 화학비료를 일반적인 농약살포 기준과 비료시비 기준의 1/2수준 이하. / 윤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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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깎는다는 것은 마음을 다듬는 것"이라는 화두에 천칙하여 새로운 일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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