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352

보따리 내놔요! (10)

등록 2004.07.21 06:42수정 2004.07.21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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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철기린이 왔을 때 저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틀림없이 저 아이를 지목할 텐데 어찌해야 할지… 여기에 두었다가는 그놈에게 당할 게 뻔한데 어쩌지?”
“그럼, 소자가 데리고 나갈까요?”

“그건 안 된다. 여기 있는 아이들 가운데 하나만 없어져도 난리가 벌어져. 그러니 밖으로 빼돌릴 수도 없고 어쩌지?”
“……!”


이야기를 듣고 있던 조연희의 안색은 금방 어두워졌다.

연화부인의 말대로 나갈 수도,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철기린이 와서 수청(守廳 : 아녀자나 기생이 높은 벼슬아치에게 몸을 바쳐 시중을 들던 일) 들라하면 피할 방도가 없다.

그래서 청백이 더렵혀지면 이회옥과 맺어지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니 안색이 어두워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철기린과 맺어져야 부친의 행방을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기에 그를 유혹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젠 사정이 달라져도 많이 달라졌다.


위험한 순간들을 함께 하는 동안 사랑하게 된 이회옥을 만났고, 그의 모친으로부터 반쯤 승낙도 받았다.

게다가 장일정과 합심하면 부친의 행방을 알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굳이 청백을 희생시킬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철기린은 이회옥과는 불공대천지원수이다. 그렇다면 절대 그에게 몸을 바쳐서는 안 될 것이다.

문제는 그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향하게 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지막이 한숨만 토할 뿐이었다.

“으음…!”

곽영아와 이형경도 딱히 방법이 없었다. 그렇기에 심각한 표정으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 소자에게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오오! 그래? 어떤 방법이 있다는 것이냐?”

“소자가 사람의 얼굴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수법을 알고 있습니다. 이건 역용약을 바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웬만한 안목으로는 식별이 불가능하지요. 하니 얼굴을 추하게 바꾸면…”
“으음! 그런 방법도 있겠으나 지금은 어려울 듯싶구나. 모두가 연희의 얼굴을 아는데 하루아침에 추한 얼굴로 변했다고 하면 분명 의심하게 될 것이야.”

“으음! 그러면 어쩌지요?”
“글세…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어머니! 경도(經度 : 달거리, 월경)를 핑계로 대면 어떨까요?”
“흐음! 경도라… 임시방편은 되겠구나. 허나 놈의 마수(魔手)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면 다른 방법을 택해야 하는데…”

“그럼 더러운 냄새를 풍기게 하는 방법은 어떨까요?”
“냄새라… 액취(腋臭 : 겨드랑이 냄새)나 구취(口臭 : 입 냄새)가 심하면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전부터 그런 냄새가 났다면 모를까 갑자기 그러면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그럼 어쩌죠? 어머니, 소녀 이제 어떻게 해야 해요? 소성주에게 꼼짝없이… 흐흑! 소녀는 싫어요. 어떻게 해요? 예?”
“휴우…!”

곽영아는 한숨쉬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도움도 될 수 없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것은 이형경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침울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질식할 것만 같은 침묵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어머니! 여기에 있는 여인들은 천하 각지에서 뽑혀왔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다들 아름다울 것 아닙니까?”
“그야, 그렇지.”

“그렇다면 굳이 추한 얼굴로 만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

“전체적인 윤곽은 그냥 두고 남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만 손을 봐서 다른 여인들과 크게 다를 바 없게 하면…”
“오오! 그거 좋은 방법이다. 그래, 그렇게 하면 소성주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릴 수 있을 것이야.”

“맞아. 여기 있는 아이들 모두 그의 관심을 받으려고 안달하니 그 방법이라면 가능하겠구나.”

곽영아와 이형경을 무릎을 치며 반색하였다. 물론 가장 환한 표정을 지은 사람은 조연희였다.

“가가, 뭐하세요? 어서 고쳐주세요.”
“그래, 어서 하거라. 놈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니…”

“예! 알겠습니다. 자, 이쪽으로 누우시오.”
“예!”

무림지옥갱에서 피거형에 피해지는 바람에 비참하게 죽은 비접나한 손해구가 남긴 여의안면변형술은 과연 대단하였다.

조연희는 군화원에 든 이후 곽영아가 갈고 닦는 바람에 필설(筆舌)로는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워졌다.

그러하기에 철기린처럼 안목 높은 바람둥이조차 시선을 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코끝이 약간 낮아지고, 갸름하던 턱 선이 약간 부풀자 변화가 생겼다.

여전히 아름답기는 하지만 경국지색이나 화용월태, 혹은 침어낙안과 같은 미사려구를 쓰기엔 조금 손색이 있는 평범한 미녀로 바뀐 것이다. 자신의 솜씨에 만족한 이회옥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후후! 이제 되었으니 일어나도 되오.”
“어머! 벌써 다 된 거예요? 설마 소녀를 눈뜨고는 못 볼 추녀로 만든 건 아니시겠지요?”

“후후! 왜 아니겠소? 너무 못 생겨서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소이다. 그러니 절대 동경을 보면 아니 되오.”
“예에? 뭐라고요? 설마… 가만, 동경이 어디 있더라?”

“하하! 농담이오, 농담. 그러니 그만 고정하시오.”
“호호! 정말이요? 정말이죠?”

조연희는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그녀 역시 농담을 한 것이다. 그런 그녀를 보며 이회옥 역시 웃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의 얼굴이 약간 굳어졌다.

“아차! 잠깐, 잠깐만 더 누워야겠소.”
“어머! 왜요? 뭐가 잘못 되었나요?”
“아니오. 그런 게 아니라. 눈빛이…!”

조연희는 뭔가 잘못 되었나 싶어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회옥은 이에 개의치 않고 손을 놀렸다.

여인들이 사내를 매혹시키는 것은 얼굴만이 아니다.

몸매며, 자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되기에 그런 결과가 빚어지는데 그 가운데 가장 주요한 요소를 꼽으라면 단연 눈빛이다.

아름다움이 현저하게 줄었지만 미소짓는 조연희는 여전히 매혹적이었다.

그것은 눈빛 때문이었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처럼 신비한 빛은 사내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던 것이다.

이회옥이 눈 주위의 혈도인 사죽공(絲竹空)을 점하자 사슴의 눈망울처럼 큼지막하던 눈이 약간 작아졌다.

이어서 찬죽(攢竹), 청명(淸明), 동자료(瞳子鏐) 부위를 잇달아 손대자 신비스럽던 안광이 현저하게 흐려졌다.

“휴우…! 이제 다 되었소. 일어나도 되오.”
“가가! 멀쩡하던 소녀를 못생기게 만드셨으니까 이제 책임지셔야 해요. 아셨죠?”
“예에…? 그게 무슨…?”

농담처럼 던진 말이지만 분명 언중유골(言中有骨)이었다. 하여 이회옥은 당황했는지 아무런 말도 못하고 쩔쩔매고 있었다.

이때 그를 구해준 것은 고모인 이형경이었다.

“어머! 얘 좀 보게. 물에 빠진걸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놔라 하는 것과 똑 같네?”
“예? 제 얘기가 그렇게 되나요?”

“호호! 그럼. 그렇고 말고.”
“호호호! 그래도 괜찮아요. 가가, 제 보따리 꼭 내놓으셔야 해요. 아셨죠?”
‘허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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