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산대놀이 87

멈춰버린 그림자

등록 2004.07.22 08:47수정 2004.07.22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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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지금 쌀을 사들인다 하더라도 늦어지지 않겠사옵니까?"

선비의 말에 옴 땡추는 슬며시 웃었다.


"이미 경강상인들이 평소보다 많은 쌀을 사들이고 있소이다. 허나 한번에 많은 양을 사들이면 의심을 받을 터 조심하고 있을 따름이오. 그리고 여기 모두를 모이게 한 이유는 '금송아지'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물어보기 위함이오."

"그야 이제 끝난 얘기지 않소? 이제 우리 손에 들어온 그 아이가 왕실의 자손임을 어찌 증명할 것이오?"

"증명해줄 사람들은 한양에 있소이다. 그러니 문제지요. 그러니 뒤탈을 없애자 이 말입니다."

그 말에 사람들은 굳은 표정으로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단, 선비가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따졌다.

"그것은 아니 될 소리외다! 왕실의 자손을 해치면 민심이 따를 리 없소!"


"허허허...... 그럼 지금 왕실을 해치는 것과 다름없이 제 맘대로 주무르는 외척들은 뭐란 말인가?"

"그건 다르지 않소! 이게 노상강도들이나 하는 모의와 다를 게 뭐가 있소이까!"


선비가 일단 나서자 두 어명의 사람도 이를 찬성하고 나서 방안은 논쟁으로 소란스러워졌다. 옴 땡추는 혹 땡추로 하여금 사람들을 조용히 시킨 다음 전혀 동요되지 않은 태도를 유지 한 채 말했다.

"그럼 그 얘기는 내일 하도록 하고 오늘은 밤도 늦은데다가 배도 출출할 터이니 건넌방에 차려놓은 술과 밥을 자시오."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후 옴 땡추는 옆에 있는 혹 땡추의 귀에 대고선 속삭였다.

- 아까 그 세 놈들은 오늘밤 없애버려라.

혹 땡추는 당연한 말이라는 듯 웃으며 장난스럽게 팔을 빙빙돌려 보였다.

"큰 형님 계시오?"

콧수염 땡추가 헐레벌떡 뛰어들어와 무작정 옴 땡추를 찾기 시작했다.

"웬 호들갑이냐?"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한 옴 땡추는 바짝 긴장하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큰일났소이다. 이승이 형님과 그 동자승이 보이질 않소이다."

"허허...... 뭔가 착오가 있는 것이 아니냐?"

옴 땡추가 믿어지지 않는 다는 투로 넘기려 하자 콧수염 땡추는 정색을 하며 손을 내 저었다.

"이른 저녁을 먹은 뒤 잠이 오지 않는 다며 제게 술과 고기를 사 오라 시킨 이가 아이까지 달고서 어딜 사라졌단 말입니까? 필시 이건 마음이 변한 것이외다."

그제야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옴 땡추는 방금 전 방에서 자신을 노상강도로 비유한 선비를 당장 찾아보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놀란 사람들이 밖을 내다보며 답했다.

"그 사람 저녁은 됐다며 밤바람이나 쐬고 온다고 했소이다."

"당장 그 놈부터 잡아라!"

혹 땡추가 맹렬히 대문을 박차고 뛰어 나갔고 이윽고 두드려 맞아 반죽음이 된 선비가 질질 끌려 들어와 옴 땡추 앞에 내동댕이쳐졌다.

"이놈! 이승이와 무슨 모략을 꾸몄느냐!"

선비는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은 채 옴 땡추를 바라보았다.

"모략이라니. 모략은 네 놈들이 꾸미지 않았느냐? 무너진 왕실의 기강을 세우고자 뜻을 모았지만 네 놈이 모든 것을 망치고 있지 않은가?"

그 말에 발끈한 혹 땡추가 쇠도리깨를 꺼내어 선비를 후려치려 했지만 옴 땡추는 이를 막으며 물어보았다.

"그래, 난 네놈이 남인(南人)출신으로서 결국 이럴 줄 알았지만 어째서 이승(二僧)이마저 네 놈의 말에 넘어 갔는지 알 수 없구나. 아이를 데리고 어디로 갈 참이었느냐?"

"허허허......처운(處雲)이 남의 말에 넘어갈 사람으로 보이더냐? 한심한지고...... 애초 그가 나를 끌어들인 것이니라."

"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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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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