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그간 별고 없었소이까!"
전주의 토호인 김맹억의 집에 저녁 늦게 당도한 옴 땡추는 미리 모여있는 자신의 아우들과 사람들을 향해 가볍게 인사를 던졌다.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옴 땡추를 정중히 맞이했다.
"박선달께서도 강녕하셨는지요."
옴 땡추는 상석에 앉아 사람들을 둘러보며 크게 웃었다.
"그간 철없는 어린 아이를 한 나라의 왕으로 키우겠다는 생각을 가진 자들이 있었소이다. 그 자들로 인해 우리 사이에서도 설왕설레한 자들이 많았소이만 이젠 그럴 염려를 덜게 되었소."
그 말에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금송아지'를 손에 넣었다는 것이오?"
"그렇소이다. 아마도 지금쯤 이 근방에 있을 것이오. 제 아우 이승(二僧)이가 데리고 있소이다. 이제 때가 된 것이외다."
사람들은 더욱 웅성거렸고 옴 땡추가 눈짓을 보내자 혹 땡추가 일어서 소리쳤다.
"모두 조용히 하시오! 형님께서 할 얘기는 아직 남아있소!"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뚝 그치자 옴 땡추의 말은 계속 되었다.
"이제 거사는 시작되었소"
그 말에 방에 모인 사람들은 숨마저 죽인 채 옴 땡추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했다.
"우선 위로는 황해도에서 선단이 내려와 강화도를 봉쇄할 것이오. 만에 하나 일이 안될 경우에는 제주도로 도망가 대마도로 들어가면 후일을 꾀할 수도 있소. 허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오."
옴 땡추는 촛불을 사이에 두고 이글거리는 사람들의 얼굴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비록 표정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지만 노련한 옴 땡추의 눈에는 그들의 표정이 확연히 구별되었다. 어떤 이는 결의에 가득 차 있었고 어떤 이는 겁을 먹고 있었다.
"그렇다고 불안해 할 것은 없소. 이미 도성을 칠 계획은 다 짜여져 있소이다. 한양의 방비를 맡고 있는 곳은 완영(完營)과 금영(錦營)이오 먼저 완영을 뺏은 다음 금영으로 향할 것이외다."
한 사내가 크게 탄식하며 말했다.
"완영과 금영에 허수아비들만 세워놓은 것은 아닐 진데 어찌 그리 쉽게 말을 하시오?"
옴 땡추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손바닥을 크게 세 번 쳤다. 순간 방안으로 검은 옷을 입은 사내가 뛰어 들어와 칼을 뽑더니 순식간에 초 하나를 베어 넘긴 후 사라졌다. 사람들은 너무나 놀란 나머지 소리조차 제대로 지를 수 없었다.
"거사를 위해 저렇게 몸놀림이 날렵한 무사들을 여럿 뽑아 놓았소이다. 이들이 한양으로 들어가 대신들을 비수로 찔러 죽이면 조정이 혼란스러워 지겠지요. 알겠소이까?"
"그 계책은 심히 문제가 있소이다."
뒤에서 선비인 듯한 사내가 나섰다.
"선달께오서는 뒤도 없이 사람만 해하면 만사가 해결될 것이라고 보시옵니까? 이런 중대사가 한낱 저러한 자객의 손에 좌우된다는 것도 그러하고 행여 성공한다 해도 각지의 유생들이 들고일어나 한양의 세력은 고립될 것이옵니다."
"그렇소! 좋은 말이오! 허나 아직 내 말은 끝나지 않았소. 그간 돈을 찍어내고 재화를 모은 것을 잊었소이까?"
선비는 크게 대답했다.
"그야 병졸을 모으고 무기를 사기 위해 모은 재화가 아니옵니까?"
"아니라오! 어중이떠중이들을 모아 무기를 쥐어주고 병졸로 만들어 봐야 후에 공치사를 하며 난리나 부릴 터인데 뭐 하러 그런 단 말이오? 그 돈으로 난 백성들을 살 것이오."
"백성을 산다?"
사람들은 그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상인출신의 사내 하나가 말했다.
"돈을 어떻게 나눌 것인 가도 문제이며 아무리 재화가 많다한들 백성들에게 한 냥씩만 쥐어주어도 감당이 안 될 것이옵니다. 설사 베나 곡식으로 한다 해도 그렇고 민심은 사소한 것에도 조석으로 변하는 법이 온데 이를 어찌 감당하시렵니까?."
"허허허...... 내 어찌 재물을 백성들에게 나누어준다 하였소? 그런 것이 아니라오. 거사를 진행시키기 전에 해야 할 일을 알려주겠소이다! 우선 시전의 싸전에서 한양의 곡식을 모두 사들인 뒤 문을 닫을 것이오! 이러면 어찌 되겠소이까? 얼마 안가 백성들은 환곡을 꿔 먹거나 구휼미를 받기 위해 관으로 모여들 것이고 그 때 이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며 우리가 나설 것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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