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산대놀이 88

멈춰버린 그림자

등록 2004.07.23 08:51수정 2004.07.23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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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 땡추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짓자 선비는 더욱 조롱의 의미를 담아 비꼬았다.

"네 놈이 조선 천하를 두루 안다며 똑똑한 척 했지만 결국 할 수 없구나. 어찌 바로 수하에 두고 있는 사람의 속도 몰랐단 말이냐 하하하!"


옴 땡추는 옴이 막 오르는 듯 신경질적으로 몸을 벅벅 긁어대더니 혹 땡추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거 좀 다오."

혹 땡추가 쇠도리깨를 내밀자 옴 땡추는 무서운 속도로 이를 낚아채어 선비의 머리에 내려꽂았다. 선비는 비명도 지를 사이 없이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가 깨져 그 자리에서 절명하고 말았다.

"팔승이는 가서 삼승이와 사승이를 불러오너라."

곧 허여멀쑥한 사내와 키 작은 사내가 긴박한 표정으로 뛰어왔다.


"너희들은 날이 밝거든 최대한 사람을 모아 이승이를 찾아내라. 그 놈이 노리는 바가 무엇인지는 모르겠다만 거사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이런 다는 것은 시일을 벌기 위한 수작일터, 한시라도 늦장을 부려서는 안 된다."

"명심하겠나이다."


그 때 똥싸게 땡추가 허겁지겁 달려와 바닥에 쓰러진 선비의 시체를 한번 쳐다본 후 옴 땡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왜 그러느냐? 할 말이 있으면 어서 해 보거라."

"그게...... 한양에서 방금 전갈이 왔사온데 계집을 놓쳤다고 하옵니다."

"됐다. 지금은 그걸 신경 쓸데가 아니다."

"그 뿐만이 아니오라......"

똥싸게 땡추는 일그러진 옴 땡추의 얼굴을 보고 차마 입을 뗄 수가 없었다.

"뭘 그리 뜸을 들이느냐! 어물거릴 때가 아니니 모두 말 해 보아라!"

"혜천과 사내 놈 모두를 놓쳤사옵니다."

"이런 육시럴! 결국 멍청한 포교 놈들이 일을 그르쳤구나!"

옴 땡추는 결국 이성을 잃고선 발을 동동 굴리며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그 바람에 방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밖으로 나오게 되었고 선비의 시체를 보고서는 웅성대기 시작했다. 옴 땡추는 숨을 고르며 혹 땡추에게 눈짓을 보냈고 혹 땡추는 당장 선비의 말에 동조했던 두 사람을 골라 끄집어내었다.

"문제가 생겼소이다."

옴 땡추는 허탈한 표정으로 말을 내뱉으며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제 아우가 사람들과 작당을 해서 금송아지를 빼돌렸다 하오이다."

사람들은 크게 동요하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배신한 이들은 용서치 않으려 합니다."

옴 땡추는 쇠도리깨를 휘둘러 앞에 있는 두 사람을 순식간에 살해했고 사람들은 이를 보고 모골이 송연해졌다.

"여기 사람들은 이제 뒤로 갈 곳이 없소이다. 앞으로 나갈 뿐이오. 그리고 이는 날 믿을 때 가능한 일이외다. 알겠소이까?"

사람들은 저마다 눈치를 보며 움츠려들기 시작했다.

"알겠냐고 묻지 않았소이까!"

사람들은 어수선하게 '네'라고 대답한 후 슬슬 뒤로 물러서 이미 밥과 찬을 비운 상을 앞에 둔 채 머쓱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육승아."

"예."

똥싸게 땡추가 비장한 표정으로 옴 땡추의 앞에 고개를 숙였다.

"넌 무사들을 데리고 한양으로 가 이승이와 연결되어 조금이라고 의심스러운 이들은 모두 없애버리거라. 뒤 책임은 그 포교놈에게 떠맡겨 버리면 되느니라. 없애야 할 놈들은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누구인지 네가 알 것이다."

"알겠습니다."

어느덧 푸른빛을 띈 달이 스믈스믈 구름사이로 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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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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