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돌아가는 데도 준비가 필요하다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귀환 프로그램과 관련하여

등록 2004.07.27 16:22수정 2004.07.27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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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외국인 이주노동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8월에 불법체류자에 대한 대대적인 사면이 있다는데, 정말이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질문은 저 혼자만 받는 것이 아니라,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받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일요일에도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청량리에서 찾아 왔습니다. 그들은 8월에 있다는 사면 내용과 그 방법에 대해 알고 싶다고 했습니다. 모두가 5년 이상 체류한 사람들이었는데, 한국에서 더 일할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갖고 저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 사실이 헛소문임을 분명하게 짚어 주면서 저는 너무 야속하게 잘라 말하는 것 같아 약간은 미안한 감정이 생겼습니다.

그들 역시 긴가민가 하던 사안에 대해 더 이상의 불법체류 사면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는 섭섭한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이래저래 많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정부의 '불법체류자 전면 사면'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희망 사항이 루머들을 양산하고, 부풀리는 것 같습니다.

어제도 한국에 와서 일하다가 돌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귀환 프로그램과 관련한 프리젠테이션을 하기 위해 아름다운 재단에 간 사이, 같은 문제로 사무실을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프리젠테이션을 마치고 오자, 부천에 있는 인도네시아 공동체인 알카우사 대표로 있던 또또씨와 그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오는 31일 인도네시아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귀국에 앞서 한국 내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협조를 요청하기 위해 대사관에 들러 전할 말이 있어 서울에 왔다가 들렀다고 했습니다.

또또씨는 떠나기로 작정하고 비행기 표까지 샀다면서 묻는 말이 어떻게 하면 다시 들어올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5년 동안 일하고도 벌어 놓은 돈이 없다고 했습니다. 중간 중간 실직했던 적도 있고, 체불 당했던 적도 있고, 마지막으로 3년 동안 일했던 회사에서는 퇴직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해, 노동부에 진정중이라고 했습니다.

또또씨는 인도네시아 공동체 대표로 있으면서 친구들이 문제가 있을 때마다 저에게 전화를 해 오고,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돕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정작 자신의 퇴직금 문제는 귀국 일정이 촉박해서 해결하지 못하고 공동체 차기 대표를 맡은 조안씨에게 위임하고 떠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또또씨와 그 친구에게 한국에 오기 전에, 몇 년 동안 일하고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를 물었습니다. 다들 3년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왜 5년이 다 돼 가는 이제야 돌아가는 것이며, 다시 나올 생각을 하느냐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 질문에 둘 다 웃으며 하는 말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충분하지 않는지 두루뭉술하게 답했지만, 한국에 처음 올 때 생각했던 것만큼 돈을 벌지도 못했고, 한국에 있으면서 함께 했던 자신들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은 미련으로 남아 다시 한국에 오길 희망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계속된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국에 와서 일하면서 귀국해서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처음의 각오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허물어지는 것을 경험했고, 그에 대한 후회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미래를 위해 준비를 철저히 하지 못했던 자신들의 실수를 다른 사람들은 반복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고향에 돌아갈 준비를 하며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바람으로 그들은 귀환 프로그램에 대해 오래 전부터 공동체 내에서 논의를 해 왔습니다. 그러한 논의의 일환으로 작년 12월에 인도네시아에서 있었던 '국제 귀환프로그램 관련 이주노동자 사회재통합 회의'에 저와 같이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인 준비들을 하지는 못했었습니다. 주중에 일하고, 주말에도 잔업이 있는 경우가 많아 잠시 만나는 정도의 시간을 내기도 어려웠다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공동체로부터 이끌어내고 그 과정을 지도해 줄 사람이나 기관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귀환 프로그램을 위한 준비가 한국 시민 사회 내에서 일고 있는 만큼, 앞으로 '고향에 돌아갈 준비들을 하며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귀환 프로그램에 대한 논의는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쉽게 생각하면, '여우도 죽을 때는 고향을 향한다'는 말이 있듯이, 정든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고향으로 행복하게 돌아갈 준비를 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이 또또씨와 같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시된다면, 준비된 귀국, 좀 더 알찬 외국 생활과 미래를 준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땅에 남은 사람들과 앞으로 들어올 사람들을 위해 귀환 프로그램이 잘 진행된다면, 우리는 아시아 각국에 우리의 좋은 이웃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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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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