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조합, '개발이익환수' 격렬 반대

조합원 7천여명 과천청사앞 결의대회... 시민단체는 '글쎄'

등록 2004.07.27 17:23수정 2004.07.27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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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서울·수도권 재건축조합원들이 과천 정부청사 정문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서울·수도권 재건축조합원들이 과천 정부청사 정문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성규

27일 오후 2시 과천 정부청사 앞 대운동장. 재건축조합 모임인 바른재건축실천전국연합 조합원 7000여명이 '재건축악법저지' '임대주택 건축반대'라는 글귀가 씌인 붉은색 머리띠를 동여매고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정부가 입법을 추진중인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에는 재건축으로 늘어나는 용적률의 최고 25%를 반드시 임대아파트를 짓도록 조항이 포함돼 있는데 이들 재건축 조합원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어 거리로 나서게 된 것. 임대주택이 들어설 경우 집값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 반대 논리의 핵심이다.

때문인지 집회 장소 주변에는 '조합원 사유지에 임대주택 웬 말이냐'는 등의 문구를 담은 현수막 수십개가 곳곳에 내걸려 있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이날 시위에 바른재건축실천전국연합에 소속된 서울·수도권 재건축단지조합원들 중 10∼20년 동안 소형평수 아파트에 거주한 사람들이 많이 참석했다고 전했다.

본집회를 마친 이들 조합원들은 과천 정부청사 정문과 민원실 입구로 한꺼번에 몰려가 손에 쥐고 있던 흰색 A4용지 한 장을 접수하려했으나 전경들에 막혀 저지 당했다. 조합원들이 말아서 쥐고 있던 A4 용지에는 '재건축이익환수제 입법예고안에 대한 의견서'라고 적혀 있었다.

a 한 재건축조합원이 제시한 재개발이익환수 반대 의견서.

한 재건축조합원이 제시한 재개발이익환수 반대 의견서. ⓒ 오마이뉴스 이성규

용적률 인센티브에도 불구 "내 재산 왜 빼앗아 가냐" 항의

일부 조합원들은 "정부에 민원을 접수시키겠다는 데 왜 전경들이 막아서냐"며 고성을 질러댔고, 일부는 "내 재산을 왜 빼앗아 가느냐"고 외치며 정문을 봉쇄하고 있는 전경들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기자가 시위를 벌이고 있는 한 조합원에게 다가가 의견서를 잠시 보여줄 것을 요청하자, 한 조합원은 "어디서 왔느냐, 그걸 왜 보려 하느냐"며 경계심을 내보였다. 이후 이 조합원은 "재건축 개발이익 환수제에 반대한다는 민원을 접수시키려 하는데 전경들이 막아서고 있다"면서 "이래도 되는 거냐"고 울화통을 터뜨리며 자신의 이름과 소속을 가린 채 의견서를 기자에게 보여줬다.


이 의견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주거환경이 극도로 열악한 10, 15평 노후 APT 사는 우리가 진정한 서민인데 도대체 누구를 위한 임대 APT를 지으라는 말인가. 사유재산 그렇게 강탈해도 힘없는 서민은 그대로 앉아서 내놓아야 해요? 임대 APT 결사반대. 결사반대!!"


시위가 시작된 지 2시간이 지난 오후 4시께. 과천 정부청사 민원실은 의견서를 접수시키기 위해 들어온 재건축조합원들의 고성으로 넘쳐 났다. 이들은 민원접수 업무를 맡고 있는 공무원에게 "당신은 몇 평에 살고 있느냐, 당신 집 평수부터 줄여라"고 거칠게 항의했다. 이 조합원은 "나는 15평짜리 아파트에서 20년 동안 살았다"며 "그런 내 재산을 왜 정부가 빼앗아 가려고 하냐"고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a 시위 주최쪽은 임대주택 의무건설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시위 장소 곳곳에 걸어놓았다.

시위 주최쪽은 임대주택 의무건설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시위 장소 곳곳에 걸어놓았다. ⓒ 오마이뉴스 이성규

일부 조합원, 조합설립 인가증 반납에는 '부정적'

다른 한 조합원은 "민원인이 이렇게 많이 왔으면 공무원들도 많이 나와서 접수를 받아야 할 것 아니냐"며 다른 조합원은 "최소한 책상 3∼4개 정도는 펼쳐놓고 접수를 받아야 할 것 아니냐"고 공무원을 나무라기도 했다. 이러한 항의에 대해 접수창구에 있던 한 공무원은 "수천명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한명씩 한명씩 접수시키는데 우리도 힘들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민원접수대 옆에서 10여분 동안 계속 공무원에게 항의표시를 하던 한 조합원. 그는 기자가 다가가 "왜 개발이익환수제에 대해 반대를 하느냐"고 묻자 "재건축하는 곳은 강남권이 많은데 그곳은 여러 여건들이 좋아서 집값이 오른 것 아니냐"며 "내가 살고 있는 동안 오른 집값은 당연히 내 재산인데 이것을 왜 환수해 가려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조합원은 '조합설립 인가증을 반납할 거냐'는 질문에는 "관련법안이 통과되면 인가증 반납은 무의미한 것 아니냐"면서 "지금 상황에서 반납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고 본다"며 인가증 반납에는 반대한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 및 수도권의 재건축조합들은 `관련법안이 국회에 통과될 시'라는 단서를 달아 조합설립인가증을 반납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건설교통부는 재건축조합 쪽이 조합설립 인가증을 반납할 경우 즉시 취소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으며 "조건부 반납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므로 되돌려 보내겠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건교부의 한 관계자는 "오후 6시20분 현재 인가증을 반납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임대주택 들어서면 집값 떨어져 반대한다는 논리는 바람직하지 않다"

한편, 시민단체는 재건축조합원의 이같은 시위에 대해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아파트 값을 폭등 시킨 주범이 재건축아파트인데, 그로 인한 개발이익까지 모두 챙기겠다는 생각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박완기 경실련 시민감시국장은 "기본적으로 강남권 재건축 단지들이 아파트 가격을 폭등시킨 진원지였고, 재건축 과정에서 주변시세를 끌어올리는 역할까지 해 왔다"며 "적절한 개발이익 환수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 국장은 이어 "재건축단지를 보면 13평짜리 아파트가 5억원 가량이나 하는데, 서민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며 "우리는 정부가 용적율 인센티브를 준 것조차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문혜진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팀장도 "임대주택이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진다는 식으로 임대주택 의무비율을 거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재건축조합의 반대시위를 비판했다.

그는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기 때문에 재건축 조합원의 공급물량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면서 "개발이익 환수에 동의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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