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강의 피서와 물놀이, 기억나세요?"

도심 분수대에서 물놀이가 즐거운 아이들을 보며

등록 2004.07.29 14:19수정 2004.07.29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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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시청앞 분수대에서 물놀이 재미에 빠진 어린이들

시청앞 분수대에서 물놀이 재미에 빠진 어린이들 ⓒ 이승철

요즘 밖에 나가면 머리가 벗겨질 것 같은 따가운 햇볕이 삼복더위를 실감케 합니다. 열대야 현상으로 밤잠까지 설치게 하는 대단한 더위 때문에 너도나도 휴가 길에 올라 피서지로 향하는 도로들이 또 심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피서지로는 산과 강 그리고 바닷가를 꼽을 수 있는데, 아무래도 물놀이를 할 수 있는 곳이 피서하기에는 제일 좋겠지요. 어린아이들과 젊은이들은 바닷가를 좋아하고, 나이가 들수록 조용한 산속이나 농촌을 찾는 경향이 많습니다.

50대 이상이면 대개 이맘때쯤 시골의 개울이나 저수지에서 멱 감고 물장구치던 어린시절이 생각나실 겁니다.

50~60년대까지만 해도 시골이면 어느 마을 어느 산골에 가도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이 흐르는 시내와 저수지들이 있었지요.

a 옷이야 젓거나 말거나, 신나는 어린이들

옷이야 젓거나 말거나, 신나는 어린이들 ⓒ 이승철

먹고살기도 어렵던 시절이라 수영복이 따로 있을 수 없었고, 어린아이들은 으레 벌거벗은 몸으로 물놀이를 했지요. 또 옷이래야 무명이나 삼베, 모시 반바지가 고작이니 벗을 생각도 안하고 그대로 물속에 뛰어들곤 했습니다.

마을 앞 작은 저수지나 길가의 개울에서 물장구도 치고 송사리와 가재도 잡으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텀벙대던 아이들. 갑자기 소나기라도 쏟아져 기온이 내려가면 입술이 파랗게 질려도 낄낄대며 웃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들이 오늘의 5~60대입니다.


그때는 피서니 휴가니 하는 것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었지요. 서울 사람들도 지금처럼 멀리 동해안이나 남서해안의 해수욕장을 찾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고, 지금은 아파트단지로 변한 인천 송도와 한강이 아주 좋은 서울 사람들의 물놀이와 피서지였답니다.

a 아이 시원해!  아이들은 어디나 물이 있는 곳이면...

아이 시원해! 아이들은 어디나 물이 있는 곳이면... ⓒ 이승철

대표적인 서울의 피서지 겸 물놀이 장소로는 지금의 한강대교 위쪽에 펼쳐져 있던 중지도에서 서빙고동까지 펼쳐진 넓은 백사장과 뚝섬유원지 그리고 광나루유원지를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만 해도 한강 물이 그만큼 맑고 깨끗했습니다. 한여름이면 한강의 유원지와 백사장은 피서와 물놀이 나온 수만 명의 시민들로 북적거렸답니다.

강물 위에는 놀이배가 뜨고 백사장에는 형형색색의 파라솔이 가득했지요. 물론 지금처럼 모래찜질을 한다고 모래 속에 온몸을 파묻고 잠이든 주부들도 있었고요.

그 시절, 아이스케키(Ice cake) 행상이 있었습니다. 행상들은 십대 소년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간혹 어른들도 있었지요.

사카린을 녹인 물을 얼려서 만든 얼음과자를 아이스케키라고 불렀는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즐기는 여름 기호식품이었답니다. 행상들은 얼음을 채운 상자를 어깨에 메고 사람들 사이를 누비며 구성지게 ‘아이스케이키!’ 하고 외치고 다녔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어른들을 졸라 너도나도 한 개씩 사서 입에 물고 그 달콤하고, 시원한 맛에 흠뻑 빠져들곤 했답니다.

a 엄마 아빠와 밤나들이 나온 어린이도, 우와! 신난다.

엄마 아빠와 밤나들이 나온 어린이도, 우와! 신난다. ⓒ 이승철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라 여름철에는 성업 중인 얼음공장과 함께 아이스케키 공장들이 여기저기 생겨났습니다. 잘 팔리는 아이스케키 행상은 가정형편이 어려운 중·고등학생들에게 여름 한 철 좋은 아르바이트 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대도시 생활이 자연과 점점 멀어지면서 요즘은 젊은 부모들은 여름방학을 맞은 아이들을 데리고 시골 할머니 댁이나 외가로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어린시절 자연 속에 묻혀 자연과 더불어 살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산으로, 들로 마음껏 뛰어놀다가 집에 들어오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내놓는 삶은 옥수수며 찐 감자나 고구마, 참외나 수박을 맛있게 먹습니다. 그리고는 모깃불을 피워놓은 들마루에 누워 하늘의 별을 헤아리다가 잠이 들곤 했습니다.

시골에 친가도 외가도 없는 아이들은 방학 중에 시골에 다녀온 아이들을 많이 부러워 한다는군요.

요즘은 시골도 많이 오염됐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때 묻지 않은 자연 속에서 호흡하며 흙투성이가 되어 뛰어노는 아이들의 밝고 건강한 모습을 보면, 역시 어린시절에는 자연을 직접 접할 수 있는 시골생활을 많이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찌는 듯한 무더위가 한창인 요즘, 도심의 분수대에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나름대로 피서를 즐기고 있습니다.

분수대에 뛰어들어 옷이 흠뻑 젖거나 말거나 희희낙락 즐거운 모습들을 보며, 누구도 말리거나 탓하지 않고 웃습니다. 이런 피서가 요즘 세대의 또 다른 재미거리로 자리 잡는 것 같습니다.

시골 개울에서 마음 놓고 물장구를 치거나 옛날 한강에서의 그런 기억에 젖어있는 제게는 안쓰러운 느낌으로 다가오지만 말입니다.

오늘도 대단한 찜통더위입니다. 가까운 곳에 있는 분수대에라도 뛰어들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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