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푹 찌는 살인더위에 8일째 단식
"여당 개혁 의원들 결단의지 가져야"

[인터뷰] 광화문서 '파병반대' 농성하는 김혜경 민주노동당 대표

등록 2004.07.30 19:07수정 2004.07.31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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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민주노동당 대표가 이라크 파병철회를 위해 무더위속에서 8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30일 오후 박영희 장애인이동권연대 대표가 김 대표의 손을 잡고 격려하고 있다.
김혜경 민주노동당 대표가 이라크 파병철회를 위해 무더위속에서 8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30일 오후 박영희 장애인이동권연대 대표가 김 대표의 손을 잡고 격려하고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30일 오전 11시 광화문 열린시민마당, 민주노동당의 이라크 파병철회 농성장에 마련된 온도계는 35℃를 기록하고 있었다. 가끔 바람이 불었지만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더운 열기를 식히지는 못했다. 저녁 8시가 넘어야 기온이 조금 내려간다고 한다.

농성장에는 민주노동당은 물론 각 단체들의 천막과 플래카드가 빈틈없이 들어서 있었다.

민주노총, 파병반대국민행동, 외국인이주노동자협의회 등의 단체들이 농성에 나섰고, 천주교 사제들과 반전기독연대도 나란히 농성천막을 쳤다. 농성장 곳곳에 참여연대,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전국민중연대 등 다양한 단체들의 플래카드가 빽빽하게 걸려있었다. 단체들은 나무에 줄을 걸고 옷, 수건 등의 빨래를 걸어놓으며 장기농성에 적응하고 있었다.

이주노동자들(뒷 모습 보이는 이)도 광화문 열린시민마당에서 파병철회 촉구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주노동자들(뒷 모습 보이는 이)도 광화문 열린시민마당에서 파병철회 촉구 농성을 벌이고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농성에 참여한 이주노동자 조능동(25세, 중국)씨와 아빌(33세, 파키스탄)씨는 "미국인들은 이라크에서 많은 사람을 죽였고 대량학살무기를 발견하지도 못했다"며 "한국도 미국처럼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날로 8일째 농성에 들어간 김혜경 민주노동당 대표는 눈에 띄게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전날인 29일까지만 해도 생기가 있었다는데, 밤새 고열에 시달리면서 기력이 쇠했다고 한다.

김 대표는 허리가 심하게 결려 오래 앉아있기도 힘든 상태였다. 마침 같이 농성을 하던 천주교 사제가 지압을 배운 적이 있어 김 대표의 몸을 보살펴주었다. 간호를 받던 김 대표는 잠시 몸을 일으켰지만 약 20분간 손님들과 대화를 나눈 뒤 다시 누웠고, 그 뒤에 오는 손님들은 누운 채로 맞이했다.

오전 11시 30분께 장애인이동권연대의 박영희 대표가 휠체어를 타고 농성장을 찾았다. 박 대표는 김 대표를 보자마자 손을 잡으며 "이 날씨에 이게 무슨 일이래요"라고 말을 건넸다. 김 대표는 "어유, 왔어"라고 반갑게 맞으며 "나 하나 기력 떨어지는 거야 별 문젠가"라고 답했다.


"유인태·임종석 의원, 운동하며 알던 사이... 결단 의지 필요하다"

이날 오전 김혜경 대표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파병재검토 결의안에 서명한 여야의원들이 60명으로 늘었는데 개원 이후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결의안은 상정하지 않고 밥그릇 싸움을 하다가 시간이 없다고 폐회했다"며 여야를 비난했다.


특히 김 대표는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개혁성향의 386세대 의원들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유인태 의원에 대해서는 "70년대 유신과 맞서 싸우던 인물이었다"고 평가하며 실망감을 나타냈고, 임종석 의원에 대해서는 "천주교 사회운동을 하면서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을 하던 시기에 전대협 의장이어서 알게 됐다"며 "작년에 파병반대 단식까지 했는데 결단의 의지가 필요하다"고 쓴소리를 했다.

김 대표는 시민들에게도 "대통령이 국민의 생명을 헌신짝처럼 버려두고 지키지 않는데, 국민들이 일어나 스스로 지켜야 한다"며 파병철회 운동에 나서줄 것을 호소했다.

최근 국가정체성을 둘러싼 여야 정치공방에 대해 김혜경 대표는 "웃기는 논의"라고 일축했다. "한나라당이 제기한 '사상논쟁'은 말하고 싶지도 않고, 부시 대통령의 말만 맹종해 국가적으로 위신을 실추한 노 대통령 역시 정체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여야를 비난하다 "(화를 내니까) 몸에 열이 오른다"며 힘들어했다.

김 대표는 결국 이날 오후 녹색병원 하성호 과장에게 "혈당저하로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입원 검사를 받았다. 의사들은 "농성을 풀고 입원하라"고 요청했으나 김 대표는 "농성장에 돌아가겠다"며 이를 거부했다.

다음은 김혜경 민주노동당 대표와의 인터뷰 전문.

"열린우리당이 앞장서서 대통령 마음을 바꿔야"

이라크 파병 철회를 요구하며 8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혜경 민주노동당 대표.
이라크 파병 철회를 요구하며 8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혜경 민주노동당 대표.오마이뉴스 권우성
- 건강 상태는 어떤가. 가족들의 걱정이 클텐데….
"(오른쪽 허리를 손으로 짚으며) 이쪽이 많이 결린다. 단식할 땐 평소에 안 좋던 것이 아프다고 하더라. 친정 어머니가 84세인데 몸조심하라고 하신다. 딸들도 걱정을 하고. 다른 당 대표들도 단식을 했지만 목표가 달라서 차별성이 있다고 본다. 이번 파병철회농성은 온국민과 나라의 미래가 걸린 문제다. 생명보호와 전세계의 평화를 위한 것이다.

- 민주노동당의 농성을 놓고 찬성여론도 있지만, '원내에 들어갔으니 달라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세상은 바뀌지 않았는데 민주노동당만 바꾸라고 할 수 있냐. 그것은 기득권의 얘기다. 10명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염원은 이 사회를 제대로 된 세상으로 바꿨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원 후) 2달 동안 세상이 바뀐 것도 아니고 여러 가지 장애가 있었다. 국회법도 워낙 잘못되어 제대로 권한도 안 주고 보수정당끼리 쑥덕쑥덕하고, 변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민주노동당에게 변하라는 소리를 할 자격이 없다."

- 이번 임시회에서 결국 파병재검토 결의안이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 무엇이 문제였다고 보나.
"결의안에 서명한 의원들은 60명으로 늘었고 계속 늘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계속 상임위 건, 국회의장 건으로 밥그릇 싸움을 하더니 시간이 없다고 (회기를) 폐회했다. 빨리 국회를 정상화해서 논의를 하고 국민의 여론을 수렴해야 한다.

파병재검토안에 서명한 여야 의원들은 정말 존경스럽고 고맙지만, 여야, 특히 열린우리당이 이 문제에 앞장서야 하는데 미온적이라서 실망스럽다. 열린우리당은 노 대통령의 정책을 그대로 따를 게 아니라 대통령의 마음을 바꾸는 역할을 해야 한다."

- 17대 국회에는 초선 의원들이 대거 진출했고, 386세대 의원들도 많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의원들도 많지 않나.
"그렇다. 70년대 유신에 맞선 유인태 의원부터 내로라 하는 분이었고, 임종석 의원은 천주교 사회운동을 하면서 알게 됐다. 그 때 나는 전국적으로 국가보안법 철폐투쟁을 했고 임 의원은 전대협 의장이었다. 임종석 의원이 파병반대 단식까지 했었는데, 아무리 당의 대변인이라도 당론이 옳지 않다면 결단의 의지가 필요하다."

- 장갑차 여중생사망사건이나 탄핵사태 때에 비해 여론의 관심이 높지 않다.
"시기가 어렵다. 노동계가 하투 중이고, 시민들도 휴가철이다. 날씨도 너무 덥고. 그러나 이 싸움이 소수의 싸움으로 보여도 그렇지가 않다. 종교계가 나섰고, (사회단체의 원로) 어른들, 학생들이 나섰다. 불씨가 퍼지고 있다. 이제는 국민이 일어나 스스로 생명을 지켜야 한다. 대통령이 국민의 생명을 못 지키고 헌신짝처럼 (모른 척) 하고 있지 않나."

- 전쟁은 반대하지만 파병에는 찬성하는 국민 여론도 있다.
"소수라고 본다. 일방적인 국익 논리로 왜곡된 것이다. 어린아이들에게 물어봐라. 평화적인 목적이라면 삽을 든 노동자들을 보내면 된다. 왜 무기와 3000여명의 군인을 보내나. 미국이 반전여론에 밀려 자국 군인들을 대신해 한국군을 보내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에게 일방적으로 요구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몇 년 못 가서 비판받을 것이다."

- 현재 정치권에서 가장 큰 이슈는 이라크 파병문제가 아니라 국가정체성 논란이다. 이를 어떻게 보나.
"웃기는 논의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러는(파병을 강행하는) 것이 정체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오직 부시 미 대통령의 말을 맹종하는데 이로 인한 국가적인 (위신) 실추는 어떻게 하나. 한나라당이 말하는 '사상논쟁'은 말하고 싶지도 않다. 낡은 이념을 가지고 있다. 두 당 모두 그렇게 할 일이 없으면 민생을 더 보살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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