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하늘이 준 선물"

'희망의 집'에는 행복이 있습니다

등록 2004.07.31 10:10수정 2004.08.04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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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름다운 부부, 안영열 원장과 그의 아내 이영미씨

아름다운 부부, 안영열 원장과 그의 아내 이영미씨 ⓒ 권윤영

"이런 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조그만 것이라도 함께 나누는 기쁨을 말이죠. 보람이라는 말보다는 행복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듯 합니다. 우리는 이 일을 함으로써 행복합니다.”


문 밖에 커다랗게 걸린 ‘희망의 집’이라는 팻말. 그 안에서 새어나오는 평화로운 기도소리가 지나가는 사람의 발목까지 붙잡는 그곳. 14명의 사람들이 둥지를 틀고 ‘가족’이라는 정겨운 이름으로 살아가는 곳이다.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그들은 이미 가족이나 매한가지다.

안영열(45) 원장과 그의 아내 이영미(40)씨가 희망의 집을 연 것은 지난 99년부터. 이들은 결혼할 때 약속한 “오갈 데 없는 어려운 사람들과 울타리를 이루고 함께 살자”라는 서약을 지킨 것이다.

그 약속대로 이들은 현재 10, 14살이 된 딸들 말고도 장애를 갖고 있는 9명의 성인 남자, 그리고 가족이 없는 청년 한 명과 살고 있다. 이들 부부는 이들의 대소변을 다 받아주고 음식을 일일이 챙겨준다.

생활비는 아내가 성당 사무장으로 버는 수입과 그가 틈틈이 차량 운행으로 얻는 수입으로 충당한다. 그 외에 지인들이 십시일반 도와주는 정도. 만성폐쇄성폐질환을 앓고 있는 안 원장은 99년에 쓰러진 후부터 산소호흡기와 함께 생활해야하는 불편함을 갖고 있지만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의 수족이 되어주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다른 환경에서 살다가 모여서 사는 것이니 가끔씩 마찰이 생길 수밖에요. 함께 의지하고 사는데도 가끔씩은 토닥거릴 때도 있어요. 그럴 때는 속상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합니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

a 거실에 걸린 가족사진이 희망의 집에 찾아온 손님들을 반긴다

거실에 걸린 가족사진이 희망의 집에 찾아온 손님들을 반긴다 ⓒ 권윤영

안 원장은 과거에 수도원의 수사(修士)였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수도원으로 봉사활동을 나온 대학생 봉사자였다. 그렇게 인연이 닿은 두 사람을 하늘이 맺어주려고 했는지 안 원장은 수도원 생활을 접어야 했다.


건강이 악화됐기 때문이었다. 20년 전 폐 수술을 받았던 그에게 또 다시 건강 악화라는 시련이 닥쳤고, 몸이 아픈 그에게 힘이 되어 준 것은 이씨였다. 여대생이었던 그녀에 비해 안 원장은 검정고시 출신에 가진 것 하나 없는 고아였다. 당연히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혔다.

반대 속에서도 이들은 지난 91년에 백년가약을 맺었다. 아무것도 없이 사랑만 가지고 결혼생활을 시작했고, 돈을 빌려 방 한 칸 딸린 슈퍼를 마련하고는 신혼살림을 차렸다.

슈퍼를 하면서도 안 원장은 중고차로 음료수를 팔러 다니거나 차량 운행을 하면서 생활고를 해결해야만 했다. 하지만 운전만 하다보니 폐기능이 더 나빠졌다. 그는 지난 99년 또 한 차례 쓰러져 중환자실에서 3일 만에 깨어났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부부가 남들을 보살피며 살 것이라는 좋은 생각만 갖고 있으면 뭐하나. 이러다 죽으면 끝이 아닌가' 그래서 애초에 하려고 했던 일을 하자고 결단을 내렸습니다. 자고 있던 아내를 조용히 깨웠죠. 제 뜻을 말하니 아내 역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들 부부는 먹고 싶은 것 안 먹고 쓰고 싶은 것 안 써가면서 부지런히 돈을 모은 끝에 지금의 자리에 '희망의 집'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우리 가족은 행복해요

a 대전 가양동에 위치한 희망의 집

대전 가양동에 위치한 희망의 집 ⓒ 권윤영

마음이 부자여서인지 이들은 희망의 집 운영 외에도 수시로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다. 쌀이나 반찬 등 먹거리를 갖다 주는 것. 전에는 1주일에 4회씩 노숙자에게 컵라면을 갖다 주기도 했지만 얼마 전부터는 몸이 안 좋아져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태어나면 부모님도 생기고 동생도 생기는데, 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정해진 것이지, 내가 가족을 고르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 생각으로 같이 사는 거죠. 가족이랑 살면서, 사는데 보람을 느끼는 것은 아니잖아요.”

아내 이씨의 이야기에 안 원장이 응수한다.

"정말 많이 듣는 질문이 ‘그렇게 어떻게 사느냐, 몸도 안 좋은데 힘들어서 어떻게 하느냐’ 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많이 가졌어도 이런 일을 못하고, 몸이 건강해도 이런 일을 못하잖아요. 몸이 약하면 약한 대로 돈이 없으면 마음만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랍니다.”

이들 부부는 너무나 행복하다고 입을 모은다. 오래 전부터 하고 싶던 일이었고, 두 딸 역시 자신들의 뜻을 존경해주고 있다. 하지만 “왜 힘이 안 들겠어요?”라고 말하는 그의 아내. 그런 아내를 보며 안 원장은 가슴 속에 담아뒀던 말을 꺼냈다.

“아내는 하나님이 제게 준 선물입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루에도 열 번은 넘게 말해요. 나같이 미약한 사람하고 결혼해서 너무나 많은 희생을 하는 아내에게 금은보석은 못 주겠지만 사랑한다는 말은 많이 주려고 합니다. 그 말에 진실이 담겨있다며 이 사람 행복하지 않을까요.”

이들 부부는 힘들 때면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면서 ‘희망의 집’ 대가족을 이끌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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