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논쟁' 덫에 걸린 박근혜의 딜레마

임태희 "왜 과거사에만 매달리냐"...당내 여론 부정적

등록 2004.08.01 17:26수정 2004.08.02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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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오마이뉴스 권우성
"박 대표의 '전면전' 발언은 완전히 돌발변수였다. 당에서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체성 문제로 일주일 넘게 끌고 간 게 잘못이다. 전당대회 직후 3~4일 정도에서 그쳐야 했다. 그런데 휴가 중임에도 불구하고 저쪽(열린우리당)의 공격에 일일이 대응하며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박근혜 2기 체제의 출발에 매우 안 좋은 이미지를 남겼다."

한나라당의 한 주요당직자는 박근혜 대표의 휴가 후 행보를 소개하며 이 같은 불만을 토로했다. 정체성 논란, 즉 유신체제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한 열린우리당의 공격에 박근혜 대표의 대응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또한 이 당직자는 "아버지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감정이 앞서는 것 같다"며 여야의 과거사 공방에 있어, 박근혜 대표의 '개인플레이'가 크게 작용했음을 시사했다.

이는 남경필 원내수석부대표의 "요즘 박 대표가 부친과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는 의연함을 잃은 게 아닌가, 여당 공격에 의연히 대처했던 박 대표가 흔들린다는 생각이 든다"는 발언과도 일맥상통한다.

당내 부정적 평가 "박 대표, 아버지 문제에서는 의연함 잃어"

이 같은 자성론은 지난주 말부터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지난주 29일 열린 상임운영위 회의. 기자들이 빠져나간 뒤 열린 비공식 회의에서 남경필 수석의 '과거사 논란'에 대한 감정적 대응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건의에 상당수 공감대가 이루어졌다는 전언이다.

박 대표의 발언에 '경제살리기'라는 단어가 섞이기 시작한 것도 그 즈임이다. 당시 회의에서 박 대표는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 큰 원인은 경제 자체보다 비경제적 요인 크다는 분석이 많다"며 "국가 정체성 문제에 신뢰를 주는 것이 경제 살리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으나 견강부회(牽强附會)에 그쳤다.


또한 '의연한 박 대표가 아버지 문제에서는 흔들린다'고 비춰지는 것을 경계한 원내대표단은 "한발짝 물러나 줄 것"을 건의했으나 박 대표는 "당에서 나서주는 사람이 있나"라며 섭섭함을 드러냈다고 알려졌다.

이런 맥락에서 김덕룡 대표가 지난 30일 기자간담회를 자청, 박 대표의 '아버지 과거 사과'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는 등 앞장선 모습을 보인 것은 그런 당의 의지를 피력하는 차원 아니었겠나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임태희 신임 대변인은 8월 1일 당사에서 가진 공식 브리핑을 통해 "당 안팎에서 당대표나 원내대표가 과거사, 정체성 등의 문제에 너무 전면적으로 매달리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듣고 있다"며 "이런 목소리를 당 지도부에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임 대변인은 "진영 비서실장과 (박 대표) 휴가 후 행보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며 "대표 입장에서 지금까지의 상황을 적절한 시기와 적절한 방법으로 밝힐 기회를 마련하겠다"고 말해 빠르면 내주 초 과거사·정체성 논란과 관련 박 대표의 '정리'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휴가 끝낸 박 대표, 다음 행보 주목

한나라당의 이 같은 태도는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민생경제 회복과 사회갈등 통합을 내세우며 소모적 정쟁에서 발을 먼저 빼는 듯한 태도를 취하면서 여론 주도권을 뺏길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임 대변인은 "과거사 보다 더 중요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과거사에 매달리는 것은 국회의 본분이 아니다"라며 "현재와 미래를 위한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여당을 향해 "양당 대표가 합의한 6개 특위 설치를 위한 준비를 우리는 이미 끝냈다"며 '일하는 국회'의 재가동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정현 부대변인은 박 대표의 휴가 후 일정과 관련 "2일 오전 태능선수촌을 방문해 올림픽 대표단을 격려하는 것을 시작으로 다시 '현장정치'로 돌아가지 않겠냐"고 말해 여권과의 공방에서 박 대표가 다시 전면에 나설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당내에서조차 과거사 논란과 관련, 얻은 것 보다 잃은 게 많다는 평가가 제기되고 있어 박 대표가 이를 어떻게 정치적으로 극복할지는 여전히 남은 과제다.

9월 정기국회 때 상정될 것으로 보이는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 처리가 남아 있고, '아버지 문제에선 발끈하더라'는 약점이 노출된 상황. 또한 친박근혜 계열의 의원들조차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지만 박 대표는 이에 어떤 대꾸도 하지 않고 있다.

전당대회 이후 여름휴가를 보내고, 본격적인 박근혜 2기 체제의 출발이라 할 수 있는 8월 첫 주. 당 지도부들과 갖는 회의에서 박 대표가 내뱉을 '말'들이 주목된다.

"더위 만큼이나 어렵고 힘든 나날을 이겨내고 있다"
박 대표, 미니홈피 통해 '아버지 공방' 피로감 내비쳐

박근혜 대표는 지난 달 31일 자신의 미니홈피(www.cyworld.com/ghism)를 통해 여권의 '아버지 전력'에 대한 공격에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박 대표는 "요즈음 더위만큼이나 저도 어렵고 힘든 나날을 이겨내고 있다"며 "이 어려움을 여러분이 옆에 계셔서 견뎌내고 있다"고 썼다.

하지만 박 대표는 현안과 관련 더 이상의 구체적인 언급을 삼가며 "경제가 너무 나빠 이 긴 터널을 언제 빠져나갈 수 있을지, 방송에서 장사하시는 분이 하신 말씀이 마음에서 떠나지를 않는다"고 말해 '민생행보'를 다시 이어갈 뜻을 내비쳤다.

무더위에 여러분들 잘 지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우리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드는 요즈음
여러분들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경제가 너무 나빠 이 긴 터널을 언제 빠져나갈 수 있을지, 방송에서 장사하시는 분이 하신 말씀이 마음에서 떠나지를 않아서......

삶이 너무 무거워 지칠 지라도 우리는 견뎌 내어서 미래를 보고 가야 합니다.
우리가 이 어려움을 극복 해 나가지 않으면 우리는 미래에 남겨 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을지 모릅니다.
우리가 우리를 스스로 성숙시키기 위해서 이 어려움을 극복 해나가야 한다면 많은 사람은 그 길을 포기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누구나 살면서 어떤 어려움도 없이 살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꼭 딛고 일어 나가야만 하는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요즈음 더위만큼이나 저도 어렵고 힘든 나날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이 어려움을 여러분이 옆에 계셔서 견뎌 내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저와 함께 모두 의 미래를 위해서 조금만 더 힘든 길을 이겨내시길 바라면서....

어려움 속에서 더위를 피해 휴가를 가시지 못하는 분들께......
제 사랑의 마음이 늘 여러분과 함께 걱정하고 삶을 같이 걸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무더위에 건강 유의하시기 바라며, 지금 여행을 가신 모든 분들도 즐거운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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