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걸린 박근혜 강경 발언

당 지도부 "정면 대응 말고 민생현안 챙겨야" "다음 단계 넘어가자"

등록 2004.08.02 15:40수정 2004.08.03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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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표가 2일 상임운영위회의에서 고개를 숙인채 다른 참석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박근혜 대표가 2일 상임운영위회의에서 고개를 숙인채 다른 참석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국가 정체성과 과거사 문제에 대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강경한 태도에 대해 당 지도부와 주요 당직자들은 "내부 합의가 우선이다" "박 대표가 전면에 나서는 것은 불필요하다" "민생현안을 챙겨야 한다"는 등 박 대표와 엇박자의 반응을 보였다.

특히 노 대통령이 지난 주말 의문사진상위원회의 권한을 존중한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과 관련 박 대표가 "대통령의 답변이 충분치 않다"며 한나라당의 후속 대응을 강하게 주문한 것과 달리 당내 인사들은 "노 대통령이 답변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 향후 수습책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휴가를 끝내고 2일 당무에 복귀한 박근혜 대표의 이같은 태도는 당과 사전조율이 없었던 것으로, 대다수 의원들도 박 대표의 '흥분'이 과하다는 반응이다. 박 대표의 최측근인 한 의원은 "휴가기간 비서실장 등 누구와도 접촉이 없었다"며 "오늘 회의에서 이런 (강성) 발언을 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당혹스러워했다.

이는 언제고 다시 불거질 수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전력 문제가 당내에서 명확한 자리매김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전략의 부재, 대표 개인의 감정이 충돌, 중첩되어 드러난 현상으로 보인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2일 상임운영위원회의에서 친일, 유신독재 등의 과거사 문제에 대한 정면 돌파 의지를 밝혔다. 박근혜 대표가 마이크가 담긴 접시를 옮겨주며 참석자들의 발언을 독려하고 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2일 상임운영위원회의에서 친일, 유신독재 등의 과거사 문제에 대한 정면 돌파 의지를 밝혔다. 박근혜 대표가 마이크가 담긴 접시를 옮겨주며 참석자들의 발언을 독려하고 있다.이종호

휴가기간 철저한 은신...복귀 후 강성 발언에 지도부도 당혹

2일 상임운영위원회 회의. 기자들이 나간 뒤 열린 비공개 자리에서 박 대표는 의원들에게 "정체성 문제에 대해 대통령이 왜 답변을 안하느냐, 이 상황을 한나라당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집중적으로 논의해 달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대다수 상임위원들은 "대통령이 답변한 것으로 봐야 한다, 답변을 더 요구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정체성 논란이 "관념적인 논쟁"으로 흐르는 것을 우려, 정책과 구체적인 사안별로 "국회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김영선 최고위원은 "대표는 당분간 정면에 나서지 않는 게 좋겠다, 당 지도부가 나서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당 내부 합의가 우선"임을 강조했다.

남경필 원내수석부대표는 "결국 답변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국회차원의 대응에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남 수석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겨냥 "일부사항에 대해서는 갈등이 불가피하다"며 "70 : 30의 원칙, 즉 70은 공이고 30은 과라는 입장에서 공과를 나눠 대응하는 것이 맞지 않냐"고 말했다.


공성진 제1 정조위원장은 "대통령의 답변을 기다리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며 당 차원의 구체적이고, 실무 단위의 대응을 강조했다.

진영 대표 비서실장도 "새로운 이슈를 제기해 자연스러운 해결과정을 도모해야 한다"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가정체성 논란이 "모호한 문제제기"라는 입장이었다.

이성헌 제2 사무부총장은 "일일이 대응하는 것은 불필요하다"며 "민생경제 등 닥친 현안에 더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의도연구소 중심, 국회 차원의 전략적인 대응 필요해"

박근혜 대표가 인사말을 마친뒤 물을 마시고 있다.
박근혜 대표가 인사말을 마친뒤 물을 마시고 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임태희 대변인은 공개회의 때와 '다른' 비공개 회의 분위기를 전하며 "사사건건 대응하기 보다 여의도연구소 등을 중심으로 전략적인 대응이 바람직하다"며 "민생현안이 우선이고 국회는 9월 정기국회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고 말했다.

임 대변인은 기자와 만나 "정체성, 사상 논쟁은 관념적이기 쉽다"며 "가령 탈북자, 대북지원의 문제에 있어 우리가 정책을 내놓으면 그게 국가정체성에 대한 한나라당의 입장이 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또한 노 대통령의 형인 건평씨가 판사에게 전화를 건 것을 두고 진상조사를 해야 한다는 박 대표의 입장에 대해서는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세게 말씀하셨지만 의원들의 입장은 그렇지 않았다"며 별도의 진상조사단을 꾸리는 등의 대응은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한편 당 지도부의 이 같은 태도는 공개회의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김덕룡 원내대표는 열린우리당이 과거사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기 위한 '진실화해미래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야당에 제의한 것에 대해 "우리는 집권당이 과거사에 매달려 정권 차원의 기구를 설치하든 말든 개의치 않고 불순한 의도로 만들려는 국회기구나 정부기구에 대해 강력하게 대처하겠다"고 반발했다.

이한구 정책위의장은 "역사해석을 집권당 중심으로 하겠다는 것"이라며 "사법기관을 무시하려는 발상은 독재체제에서나 가능하고 혁명체제에서나 일어나는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성토했다.

남경필 수석부대표는 "거대한 시나리오를 가지고 대한민국의 정체성 부인하려는 것"이라며 "탄핵역풍으로 얻은 과반수의 힘을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는데 사용하면 국민으로부터 거대한 역풍을 받아서 정권이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덕룡 원내대표가 상임운영위 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덕룡 원내대표가 상임운영위 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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