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 사실 보도 안하면 뭘 보도하나

정부, 언론사에 지나친 '보도자제' 요청... 알권리 침해 우려

등록 2004.08.03 12:56수정 2004.08.12 14:59
0
원고료로 응원
a

지난해 10월 15일 새벽 이라크에서 이라크 의료 및 건설 지원 임무를 맡을 서희부대와 제마부대 2진이 서울공항에서 출국하고 있다. ⓒ 연합뉴스 양현택

지난 2월 13일 국회 통과를 전후하여 거의 1년 가까이 이라크 추가파병이 국민적 논란을 거듭해온 끝에 결국 오늘(8월3일) 자이툰 부대 파병이 이뤄졌으나 국방부가 이에 대해 과도한 보도통제를 해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언론학자들은 파병 등 국가 중대사에 대해 언론이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킬 의무가 있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a

국방부는 2일 각 언론사로 협조서한을 보내 자이툰부대에 대한 보도자제를 요청했다. 사진은 2일 국방부 남대연 대변인이 <오마이뉴스> 정운현 편집국장 앞으로 보낸 서한. ⓒ 오마이뉴스

자이툰부대가 이라크로 떠나기 전인 2일 국방부는 각 언론사 편집국장 앞으로 보낸 남대연 대변인 명의의 서한을 통해 자이툰부대의 이동상황 등에 대해 보도를 자제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는 지난달 중순 당시 조영길 국방장관이 각 언론사 발행인 앞으로 ‘협조 편지’를 보낸데 이어 두 번째다.

2일 보낸 서한에서 국방부는 "자이툰부대 장병들이 목적지에 안착해서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부대이동에 따른 제반사항에 대해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구체적으로는 전개시기, 경로, 규모 등을 언급했다.

국방부는 이어 "특히 부대전개가 완료되기 전까지는 일체 언론에 비공개된다는 점과 군 매체가 전개간 동행취재해 부대전개가 완료된 후 언론에 자료를 제공해 드릴 예정"이라며 "부대정착 후에는 파병부대의 평화재건 활동위주로 언론취재를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파병반대 국민행동 등 파병반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은 2일 오전 서울 광화문 열린시민마당에서 파병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가진데 이어 이날 낮 자이툰부대가 합숙훈련 중인 경기도 광주로 옮겨 다시 파병반대 문화행사 등 집회를 가졌다. 이들이 이날 자이툰부대 앞으로 옮겨 집회를 가진 것은 파병날짜 임박을 사전에 인지하고서 마지막 저지활동을 펴고자했던 것이다.

<오마이뉴스>의 경우 2일 오전 10시 50분경 행사 예고기사를 1신으로 보도한데 이어 광주 현지에 취재기자 3명(취재 1, 사진 1, 동영상 1)을 파견, 현장의 집회소식 등을 보도했다. 엄격히 따지면 이는 자이툰부대와 직접 관련있는 기사는 아니다. 즉 자이툰부대 밖에서 시민단체가 벌인 파병반대 행사를 보도한 것이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의 ‘광주집회’는 대다수 언론에서 다뤄지지 않았다.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민중의 소리> <통일뉴스>등 인터넷매체들이 2일부터 광주 현장상황을 자세히 보도한 반면 종이신문의 경우 <한겨레>가 거의 유일했다. 방송도 대부분 국방부의 협조요청을 받아들였다. 반면 대다수 종이신문들은 2일 열린, 이라크로 떠나는 주한미군 2사단 환송식을 사진과 함께 비중있게 다뤄 대조를 이뤘다.

한편 일부 신문의 경우 국방부의 보도자제 요청을 받아들여 자이툰부대 관련 보도를 자제키로 했다는 자사의 입장을 사고로 밝힌 곳도 있었다.

a

국방부의 보도자제 요청을 존중한다고 밝힌 3일자 서울신문 <사고> ⓒ 서울신문 PDF

<서울신문>은 '자이툰부대 이동상황 보도하지 않습니다'라는 사고(社告)를 통해 "서울신문사는 이라크 파병되는 자이툰부대의 안정한 이동을 위해 이 부대의 움직임에 대한 보도자체를 요청한 국방부의 입장을 존중키로 했다"며 국방부의 보도자제 협조요청을 적극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서울신문>은 그 이유에 대해 "이라크 파병과 관련한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을 고려할 때 부대이동에 관한 세세한 보도가 국군장병들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자료로 사용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앙일보는 미 2사단 이라크 파병 관련기사에 <알림>으로 간단히 다루었으며, 석간 문화일보의 경우 3일자에서 <사고> 형태의 별도기사로 다루었다. 방송의 경우 YTN이 3일 오후 화면 아래 자막을 통해 '보도자제'를 내보낸 바 있다.

하지만 자이툰부대의 이라크 파병은 국민적 관심이 매우 높은 공적 사안이라는 점에서 자이툰부대의 출국사실 자체까지 보도를 자제하라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지나친 처사라는 지적이 많다.

국방부의 자이툰부대에 대한 보도자제 요청과 관련, 주동황(광운대 신문방송학) 교수는 "이라크 파병의 주무기관인 국방부가 파병반대 여론을 의식해 언론사에 보도자제를 요청할 수는 있다"면서도 "하지만 떳떳한 파병의 명분을 가지고 있다면 보도자제를 요청하면서까지 숨어서 나갈 필요가 있을까 의문이 든다"고 다소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주 교수는 이어 "정부가 테러위협에 도움을 줄 만한 정보를 공표하지 말아 달라고 언론사에 요청할 수 있겠지만 '오늘 파병한다'는 사실 자체까지 막아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또한 김창룡(인제대 신문방송학) 교수는 "기한이 명시되지 않는 자의적 보도유예 요청을 언론사가 받아들일 의무는 없다"며 "언론은 파병 등 국가중대사에 대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킬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문화일보는 3일자 1면 머릿기사로 이라크 파병장병들의 출병식을 비공개로 진행한 것이 논란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방부는 2일 오전 윤광웅 국방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광주 특전사 교육관에서 가진 환송식에 파병장병의 가족과 유재건 국회 국방위원장, 국방장관 출신의 조성태 열린우리당 의원 등 극히 일부인사들만 초대한 채 비공개로 진행했다.

이에 대해 <문화>는 “자이툰부대의 환송식을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해 장병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이라크 평화재건 지원과 한미동맹 강화라는 파병명분을 스스로 퇴색시킨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며 “이는 일부 야당 및 시민단체의 파병반대 여론을 일시적으로 모면하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고 비판했다.

정치권의 경우 여야의 입장이 갈렸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장병들의 안전을 최우선한 군 작전사안”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한나라당은 “군의 사기저하는 물론 국민들에게 파병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할 우려가 있다”는 입장이다. 당론으로 파병을 반대하며, 당 대표가 단식을 하고 현역의원들이 파병반대 집회에 참석하기도 했던 민노당은 “정부 스스로가 파병이 떳떳치 못함을 인정하는 ‘도둑 파병’”이라고 비난했다.

a

주한 미 2사단 병력가운데 이라크로 파견되는 장병들의 출병식 및 환송식이 2일 동두천 미군기지에서 열렸다. 사진은 미군들이 행진하는 장면을 가족들이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 중앙일보 PDF


관련
기사
자이툰 부대 끝내 출국하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100개의 눈을 가진 모래 속 은둔자', 낙동강서 대거 출몰
  2. 2 국가 수도 옮기고 1300명 이주... 이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3. 3 '삼성-엔비디아 보도'에 속지 마세요... 외신은 다릅니다
  4. 4 "삼성반도체 위기 누구 책임? 이재용이 오너라면 이럴순 없다"
  5. 5 전화, 지시, 위증, 그리고 진급... 해병 죽음에 엘리트 장군이 한 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