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제각 아래에 민가가 하나 있었는데 헐리고 없군요. 그곳에서 혼자 1년 살던 때도 있었답니다. 제각과 감나무가 보이는 오른 쪽 위에 방죽이 있었습니다.김규환
컹컹 짖는 개가 뒤를 따르지만 곧 주인에게 가버리고 산막을 지나 제각 위쪽으로 50여 미터만 더 오르면 방죽이 있다. 방죽 위엔 겉은 녹색인데 배아지가 시뻘개 공산당이라 불렀던 무당개구리가 천지다. 제들도 심심한 건지, 오후 느지막이라 산소가 부족해선지 까뒤집기를 반복한다.
꽃창포와 고마리 따위 물풀이 가장자리를 감싸고 있다. 가져온 도구를 풀숲에 던져두고 풀을 위로 걷어 올린다. 일부러 긴바지를 입고 손에 토씨를 했으니 온몸이 젖을 각오로 방죽 안으로 들어간다.
“물컹” 수렁에 폭 빠진 느낌이다. 비릿한 방죽 수렁 냄새가 역하게 코를 찌른다. 먼저 들어간 형이 “야 규환아 쩌기 바가치 갖고 와” 하면 나는 주위에 나뒹구는 양동이와 바가지를 가져다주고 나도 합류해 안으로 들어갔다.
흙탕물이 되지 않게 조심조심 손을 넣어 쑤욱 밀어 넣으면 목덜미까지 물이 잠긴다. 어차피 버리기로 한 몸이다. 집에 가면서 냇가에서 멱 감고 돌아가면 아무 문제가 없으니 옷이 젖는 건 개의치 않았다.
물 속은 아무리 조심해서 다녀도 바닥에 깔려있던 흐레가 일어나선지 도통 보이지 않는다. 속을 더듬더듬 하다가 문득 손에 만져지는 감각으로 우렁이를 하나씩 건져 올리는 수밖에 없다.
“야, 여깄다.”
“어디? 큰가?”
“솔찬히 크구만.”
내 작은 손에 가득 찰 정도로 큰 것이었다. 나도 힘을 내 더 열심히 뒤져갔다. 하나를 잡으면 발을 움직이지 않고 한자리에서 열댓 마리는 잡을 수 있으니 맨 처음 걸 발견하면 그 뒤론 쉽다. 몇 번 더 눈을 감고 딱딱한 것이 만져지기를 고대하며 슬슬 손을 움직이자 내 손에도 드디어 딱딱한 감각이 느껴졌다.
“성! 성! 나도 잡아부렀어. 허벌나게 큰디.”
우렁이 입은 커다란 비닐 막이 쳐져 있다. 빙글빙글 다섯 바퀴 쯤 돌며 급속히 작아지며 꽁지부분으로 아이 응가모양으로 간명하게 마무리 했다. 날것을 좋아하는 지라 생으로 먹어볼까 하다가 형이 뭐라 할까봐 참으니 침이 꼴깍꼴깍 넘어갔다.
잡히면 바로 “톡” 던져두고 다시 손을 담가 우렁이를 잡아나갔다. 1시간여 공을 들이니 내가 잡은 건 한 되가웃 되었고 두 살 위 셋째형은 세배나 잡았다. 양동이에 훅 털어 넣고 몸에 묻은 흙을 대충 털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냇가에서 목욕을 하고 들어왔다.
“엄마!”
“응, 어디 갔다 왔냐?”
“거시기…지각(제각) 방죽에서 우렁 잡아왔어라우.”
“어디 보자. 워메 참말로 많이 잡았네. 마침 국을 뭘 끓일까 생각하고 있었는디 잘 됐구먼.”
옷을 갈아입는 짧은 시간이 흘렀다. 여름밤은 길게 꼬리를 늘어뜨리고 우리 집 마당에 발간 햇볕 한 줌을 아름답게 비춰주고 있었다.
어머니는 급히 먹을 일부를 꺼내 득득 문질러 씻고 나머지는 해감을 해뒀다. 당일 먹을 양엔 놋수저를 두개나 담갔다. 물이 팔팔 끓자 으깬 된장을 푹 집어넣는다. 우렁이를 되가웃 넣어 적당히 익어가자 야들야들 잘 자란 솔(부추)을 한번만 썰어 넣는다.
마루에 걸터앉아 저녁을 먹는 행복한 시간이 다가왔다. ‘푸시푸쉬’ 콧바람을 내가며 쇠죽을 먹는 송아지와 벌써 배부르다고 저녁잠을 청하는 까만 돼지가 유달리 예뻐 보였다.
“셋째야 상 가져가라.”
“예.”
아버지 몫만 따로 퍼 드리고 우린 큰 양푼에 그냥 담겨져 있다. 비닐 막을 떼어 내고 미리 준비한 탱자나무 가시로 나사형태를 봐가며 슬슬 돌려 끄집어내자 푸르스름한 속살이 큼지막하게 빨려 나온다. 탱자가시를 내려놓고 입 안에 쏘옥 밀어 넣었다.
베어 물자 중국산이나 양식(養殖) 우렁이 씹는 맛-딱딱한 고무 씹는 기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럽게 혀에 감긴다. 두세 번 씹자 입안 가득 약간은 쌉싸래하면서도 껍질에 엉겨 붙은 된장 알갱이가 어울려 논다. 보드라워진 부추를 한 젓가락 넣으니 그마저 사르르 녹아 없어졌다.
국물 한번 떠먹고 우렁이 하나 빼먹고 내 손엔 국물에 된장 범벅이 되었지만 밥 한 술 뜨지 않아도 배가 불러왔다.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누가 많이 까먹는지 내기를 하는 아이들과 오랜만에 별미를 드시는 부모님. 그렇게 여름 짧은 밤이 시작되었고 마당에선 모깃불이 ‘사르르’ 소리를 내며 피어올랐다.
어디 자연산 우렁이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