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표 존재만으로도 부산일보에 부담"

[인터뷰] 이재희 부산일보 노조위원장 "임원 인사권이 가장 큰 영향력"

등록 2004.08.04 15:05수정 2004.08.04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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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희 부산일보 노조위원장. ⓒ 부산일보노조 제공

"<부산일보>가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로 박 대표가 정수장학회 이사장에서 물러나야 한다. 부산일보로서는 소유재단 이사장이 특정 정당의 대표라는 점만으로도 부담스럽다."

정수장학회가 지분을 100% 소유하고 있는 <부산일보> 노조의 판단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부산일보지부(위원장 이재희)는 지난 7월 30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정수장학회 이사장의 용퇴를 다시한번 촉구했다.

이재희 위원장은 "제1 야당 대표인 박근혜 이사장의 존재가 부산일보에 부담이 되는 상황에 왔다"고 진단했다. 즉 부산일보가 아무리 옳은 지적을 하더라도 그 소유주인 정수장학회 이사장이 박 대표라는 이유만으로도 독립적인 목소리로 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위원장은 이같은 사례로 지난 4.15 총선의 경우를 들었다. 일부 보도의 편향성이 박 대표가 정수장학회 이사장이고 정수장학회가 부산일보의 소유재단이라는 사실과 결부돼 공정성 자체를 비판받은 것으로 풀이했다. 또 편집국 기자들이 비상 총회를 열어 보도방향에 대해 논의할 만큼 문제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편집권 독립과 보도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는 구조적인 문제도 제기했다. 정수장학회가 사장과 주요 간부 등 임원진 인사권을 가지고 있다는 게 가장 분명한 영향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조는 이를 '혹독한 자기검열이 불가피하다', '팔이 안으로 굽을 수 있다' 등으로 표현했다.

따라서 노조는 박근혜 대표와 부산일보 관계는 결국 편집권 독립 문제로 귀결된다고 강조했다. 이를 제도적으로 만들기 위해 소유와 경영, 편집이 온전히 독립된 형태로 운영돼야 한다는 게 부산일보 내부의 공통된 인식이다. 노조는 부산일보 소유재단의 미래형 모델로 민주적 운영이 가능한 공익재단 형태를 꼽았다.

다음은 이재희 위원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팔이 안으로 굽을 수 있다"

-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정수장학회 이사장 유지가 논란이 되고 있다. 정수장학회 소유 언론사 노조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박근혜 대표의 정수장학회 이사장직 유지 문제는 그가 한나라당의 유력한 대표 후보군으로 떠오르던 지난 2월부터 우리 노조가 고민해 온 문제다. 소유구조 문제가 언론사에 영향을 미치는 통제 가운데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특히 국내언론 상황에서 1인 사주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박 대표가 부산일보 소유주인 정수장학회의 대표를 맡고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부산일보에서 아무리 옳은 지적을 하더라도 독립적인 목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자신의 존재가 부산일보에게 부담되는 상황이 온 이상 박 대표의 평소 주장대로 아무런 간섭과 통제를 가하지 않았다면 용퇴하는 게 마땅하다."

- 노조에서는 <부산일보> 지분 100%를 소유한 정수장학회 박근혜 이사장의 용퇴를 주장하고 있는데 왜 그런가.
"비판을 기본으로 하는 언론은 그 어떤 세력에 대해서도 독립적이야 그 생명력이 유지된다. 정수장학회가 부산일보 지분을 모두 갖고 있으면서도 경영·편집에 비교적 많은 간섭을 하지 않았던 올해 이전 상황은 언론학자들로부터도 소유구조 문제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정수장학회 이사장인 박근혜 당시 의원이 유력한 한나라당 대표 후보로 떠오르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박 대표가 정수장학회 이사장이고, 정수장학회가 부산일보의 소유재단이라는 점과 결부돼 총선 과정에서 부산일보 일부 보도의 공정성이 비판받기도 했다."

- 최근 <평화방송>과 인터뷰에서 "편집권 독립을 보장할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면 박근혜 대표가 이사장으로 존재한다 하더라도 문제없다"고 표현해 그 진의에 대한 의혹이 일기도 했는데.
"이 문제를 바라보는 지점에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우리 노조는 지난 2월부터 박 대표의 정수장학회 이사장직 유지와 용퇴 문제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부산일보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로 박 대표가 이사장에서 물러나는 게 옳다는 입장을 세워왔다.

우리는 박 대표가 물러나고 소유구조가 바뀐다 하더라도 편집권 독립을 최대한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장기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박 대표 한사람이 물러난다고 해서 부산일보의 공정성과 편집권 독립이 온전히 확보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번 인터뷰는 그런 원칙적 입장과 과제를 밝힌 것이다."

- 박근혜 대표의 정수장학회 이사장 사퇴에 대한 노조 입장을 밝혀달라.
"정치인 박 대표는 정수장학회 이사장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인 박근혜 대표 이사장직서 물러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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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대 총선 당시 <부산일보> 3월 24일자. `사주` 이사장인 박근혜 대표에 대한 우호적인 `띄우기`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 부산일보 PDF

- 4.15 총선 당시 <부산일보> 일부 보도의 한나라당 편들기에 대한 비판이 높았다.
"지역의 언론모니터 단체로부터 편향보도에 대한 지적을 받았다. 노조 공정보도위원회에서도 편향논란이 된 기사와 칼럼에 대해 제작 간부와 논의한 사례가 있다."

- 노조나 기자들은 <부산일보>의 편향보도 원인을 무엇으로 보고 있는가.
"'부산일보가 편향보도를 한다'라는 부분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부산일보를 소유한 재단의 이사장이 한나라당의 대표이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기사를 다룰 때 항시 혹독한 자기검열이 불가피하다. '팔이 안으로 굽을' 수 있는 가능성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산일보는 부산일보가 처한 상황에서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를 하기 위해 노조의 공정보도 감시기구 등을 통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 노조에서는 박근혜 이사장이 한나라당 대표가 되면서 <부산일보>의 '한나라 편들기'가 본격화됐다고 분석했는데, 그 이전에는 문제가 없었는가.
"박 대표가 대표로 선출되기 전까지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름대로는 자체적인 감시와 모니터 활동 정도로 통제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 하지만 <부산일보> 간부들은 노조나 기자들의 지적이 '기우'라고 보고 있으며 정수장학회 입김이 지면에 작용한 적도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간부들은 부산일보의 편집권 독립을 이끌어온 주축세력으로서 많은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잘 되고 있다고 믿고 싶어한다. 그러나 지난 총선 과정에서 편집국 기자들이 '편집국회'(편집국 회의)를 열어 보도방향에 대해 논의할 만큼 문제가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 정수장학회가 사장 등 임원진에 대한 인사권을 갖고 있는 것 자체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 아닌가.
"인사권이 정수장학회에 있다는 것은 매우 분명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임에 틀림없다."

- 그러나 한나라당이나 박근혜 대표는 부산일보 보도에 어떤 영향도 미친 게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 대표 자신이 직접 지시나 명령을 한 일이 없다는 것만으로 아무 영향이 없었다고 할 수 없다. 부산일보로서는 소유재단의 이사장이 특정 정당의 대표라는 점만으로도 부담스럽다. 공정성을 생명으로 하는 언론으로서 치명적인 약점이다."

"소유구조 자체보다 편집권 독립 확보가 더 시급"

- 부산일보 노조에서 88년에도 재단 문제와 관련해 투쟁을 벌인 적이 있는데 당시 노조 주장의 핵심은 무엇인가.
"편집권 독립이 가장 큰 목표였다. 그 투쟁의 결과로 편집국장을 기자 조합원의 직접 선거로 선출하는 편집국장 3인 추천제를 관철하는 성과를 이뤘다."

- 결국 박근혜 대표와 <부산일보>의 관계는 '편집권 독립'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다. 편집권 독립을 위한 제도적 장치로 무엇이 마련돼야 하는가.
"편집국장 직접 선출이라는 부분도 편집권 독립의 완결된 형태는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자 개개인의 민주적 발상, 진보적 의지, 민중의 이익에 복무하는 자세이다. 이런 것을 제도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소유와 경영, 편집이 온전히 독립된 형태로 운영돼야 한다는 원칙 아래 부산일보 구성원 합의와 사회적 요구가 절충되는 지점에서 구체적인 시스템이 마련됐으면 한다."

- 열린우리당 등에서는 과거 박정희 정권의 정수장학회 강탈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거사 진실규명 문제는 그 자체로 중요한 문제이다. 밝힐 수 있다면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근거를 가지고 진행하는 규명이 필요하다."

- 사회 일각에서는 정수장학회 소유구조와 관련, 공공적 재단으로의 전환을 주장하고 있기도 한다. 이에 대한 노조 입장이나 사내 의견이 있다면?
"언론이 공공적 성격의 소유구조를 갖는다면 가장 바람직한 소유형태일 것으로 본다. 하지만 공익재단의 외형을 갖추는 것보다 구성원의 민주적인 의견수렴이 가능하고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는 실질적인 운영이 중요하다. 부산일보 소유 재단의 미래는 민주적 운영이 가능한 공익재단이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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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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