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탄핵반대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오마이뉴스 권우성
먼저, 정치세력화와 관련된 80년대의 논쟁을 되돌아보자. 사회운동의 정치세력화를 중심으로 한 이 논쟁은 기성 정치권 안에서 정치개혁을 추진하자는 재야세력의 민주대연합론, 독자적인 진보정당의 창당을 통해 정치개혁을 추진하자는 노동자계급의 보혁구도론, 그리고 기성 정치권과 거리를 유지한 가운데 정치권을 비판하고 감시하면서 정치개혁을 추진하자는 시민운동의 정치적 중립성 테제의 세 갈래로 진행되었다.
시민운동이 추진한 정치개혁 방법론의 철학적 토대는 시민운동이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킨다는 정치적 중립성 테제였다. 시민운동이 이러한 중립성 테제를 바탕으로 상당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또한 그로 인해 시민운동의 정치적 전망을 스스로 차단하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매우 모순적이다. 최근 시민운동의 정치적 중립성이 허구적인 논리라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시민단체들의 활동이 정치적 중립성 논리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다.
다음으로, 사회세력화의 토대에 대해 살펴보자. 사회세력화의 토대가 취약하다는 것은 시민운동이 도덕성에 기초한 영향력의 정치에 의존해 왔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공중전’으로 불리는 시민운동의 활동방식은 시민참여의 ‘주체적 운동’이기보다는 합리적인 문제제기로 시민들의 동의를 구하는 엘리트의 ‘계몽적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정당에 대한 높은 불신은 시민운동이 시민적 동의를 확보하는 좋은 조건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시민의 능동적 참여구조가 아니라 수동적 동의구조이며, 여기에 시민운동의 한계가 존재한다.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자.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노동운동은 노동조합이라는 사회적 토대를 바탕으로 민주노동당이라는 정치세력화를 이룩했다. 그러나 노동운동은 조합적 토대가 튼튼한 반면 시민사회적 토대는 취약한 편이다. 재야운동의 경우에는 상층세력이 정치권으로 진출하여 정치세력화에 성공했지만 사회적 토대는 매우 취약하다. 반면, 시민운동은 정치적 중립성을 바탕으로 일정하게 사회적 토대를 구축한 대신 정치적 전망을 포기했다. 결론적으로, 시민사회의 진정한 정치적 대표체계는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민주화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정치적 공백이 발생한 것이다.
정치적 관점에서 본다면, 2002년 대선으로 참여정부가 출범했고 2004년 총선을 거쳐 개혁세력이 원내 과반수를 차지하고 진보세력이 원내진출에 성공했다. 정부는 투명한 운영을, 정치권은 정치개혁을 약속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와 정당에 대한 불신에 근거한 시민운동의 '대의의 대행'의 시대는 끝났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시민사회가 발전하면서 계몽적 방식의 운동에서 주체적 참여의 운동으로 점차 전환되고 있다. 이것이 1단계 민주화와 구별되는 2단계 민주화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변화가 시민운동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최근 논의 경향을 종합해보면 시민운동의 일반적인 변화 방향은 백화점식 운동에서 벗어나 전문화하는 것, 글로벌화 추세에 맞추어 국제연대를 강화하는 것, 준정당적 위상을 포기하고 풀뿌리화하는 것 등으로 모아지고 있다. 인터넷 베이스의 운동방식을 개발하고 상근 전문가 중심의 운동에서 벗어나 일반시민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확대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이것을 시민운동의 개념 확대라 할 때, 대략 세 차원의 선택이 가능하다. 일차적인 선택은, 기존 시민운동이 스스로 활동영역을 확장하여 글로벌화와 풀뿌리화로까지 개념을 확대하는 것이다. 다음 선택은, 민주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풀뿌리운동이 민주화 2단계 국면에서 시민운동의 주요 영역으로 부각되는 것이다. 풀뿌리운동의 활성화는 ‘공중전’에서 ‘지상전’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시민운동의 개념 확대와 관련해서 매우 중요하다. 마지막 선택은, 매우 민감한 문제인데, 시민운동이 정치적 중립성의 속박에서 벗어나 정치적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다.
시민운동이 정치적 역할을 강화하는 것은 민주화 2단계 국면에 부합하는 필연적인 선택이다. 민주화 1단계 국면에서는 시민운동이 정당과 거리를 둔 상태에서 대의정치의 결함을 보완하는 '대의의 대행' 전략을 수행하는 것이 필요했고, 시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이러한 전략을 수행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참여를 통한 자기실현이 강조되는 민주화 2단계 국면에서는 '대의의 대행'에 대한 수동적 지지보다는 주체적 참여가 더욱 중요해진다. 이것은 제3자적 관점의 비판과 감시를 넘어 주체적 참여를 통해 공공선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시민운동의 정치적 역할을 강화하는 것은 민주화 1단계 국면에서 나타난 시민사회의 정치적 공백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불가피한 선택이다. 민주화 과정에서 시민사회가 급속하게 확장되고 시민들의 참여 요구가 높아진 반면 이를 대표하는 정치주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지역주의에 매몰된 기존 보수정당은 별개로 하더라도, 개혁적인 정당이나 진보적인 정당의 경우에도 시민적 대표성이 매우 취약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민주화 2단계 국면에서 정치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시민적 대표성을 가진 정치주체의 등장은 필연적인 요구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까?
시민운동의 변화가 필요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