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항쟁, 6월항쟁, 촛불집회... 그 후

[정대화 칼럼] 시민운동의 개념을 확장하자

등록 2004.08.05 14:10수정 2004.08.08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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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민주항쟁 17주년, 광주항쟁 24주년이 되었다. 80년대를 달구었던 한국 민주혁명의 한 세대가 훌쩍 지난 셈이다. 우리는 이 시기를 민주화 1단계라 부른다. 그러나 지난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은 탄핵반대운동과 더불어 한국 민주화의 새로운 분기점이 되었다. 이 시기를 민주화 2단계로 부르고자 한다.

하나의 사건은 수많은 사건들의 축적의 결과로서 만들어져 특정한 시점에서 불꽃처럼 타올라 역사의 흐름을 바꾼다. 그 불꽃은 다음에 올 또 다른 사건을 키워내는 불씨로 남는다. 역사학자 E. H. 카아는 역사를 "현재를 과거와 이어주는 대화"라 했다. 이 관점에서 한국의 민주화는 광주항쟁과 6월민주항쟁의 불꽃 위에서 피어난 꽃이요 열매랄 수 있다.

그렇다면 민주화 1단계가 마무리되고 2단계 국면으로 접어드는 현 시점에서 민주주의를 심화 발전시키고 새로운 사회를 열어나갈 역사적 불꽃은 무엇이어야 할까? 이 불꽃의 주체는 누구여야 할까? 이러한 문제들이 민주화 1단계를 주도해 온 시민운동에게 화두로 던져진 것이다.

사회운동의 관점에서 민주화 과정을 요약한다면, “한국의 민주화는 재야운동과 학생운동의 힘으로 시작되었고 시민운동의 힘으로 추진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역동성으로 인해 시민운동은 민주화의 핵심 동력이 되었으며,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근본원리의 하나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최근 시민운동은 급격하게 분화되고 있으며, 2000년 이후에는 시민운동의 위상이 하락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역사를 더듬어 올라가면,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은 모두 6월민주항쟁의 산물이랄 수 있다. 그러나 두 운동의 길은 달랐다. 노동운동이 자기지향적 운동을 추구한 반면 시민운동은 타인지향적 운동을 추구했다. 노동운동은 노동자계급의 관점에서 노동자들의 생존권 확보와 노사관계 개선을 목표로 사회세력화와 정치세력화를 추구했으며,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물론 이것은 아직은 좁은 의미에서의 성공이다.

타인지향적 관점에서 활동한 시민운동은 정치적 전망을 포기한 대가로 상당한 수준의 사회세력화에 성공했다. 이것은 그 자체로 매우 획기적인 것이다. 그러나 시민운동이 성취한 사회세력화는 두 가지 측면에서 불안정한 것이다. 하나는, 정치권에 대한 비판과 감시를 통해 사회세력화를 성취했지만, 그것을 지속하고 확대할 수 있는 사회적 토대가 취약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시민운동이 어떤 정치적 전망도 제시할 수 없는 반정치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시민운동의 자기성찰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80년대의 논쟁들


지난 3월 탄핵반대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
지난 3월 탄핵반대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오마이뉴스 권우성
먼저, 정치세력화와 관련된 80년대의 논쟁을 되돌아보자. 사회운동의 정치세력화를 중심으로 한 이 논쟁은 기성 정치권 안에서 정치개혁을 추진하자는 재야세력의 민주대연합론, 독자적인 진보정당의 창당을 통해 정치개혁을 추진하자는 노동자계급의 보혁구도론, 그리고 기성 정치권과 거리를 유지한 가운데 정치권을 비판하고 감시하면서 정치개혁을 추진하자는 시민운동의 정치적 중립성 테제의 세 갈래로 진행되었다.

시민운동이 추진한 정치개혁 방법론의 철학적 토대는 시민운동이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킨다는 정치적 중립성 테제였다. 시민운동이 이러한 중립성 테제를 바탕으로 상당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또한 그로 인해 시민운동의 정치적 전망을 스스로 차단하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매우 모순적이다. 최근 시민운동의 정치적 중립성이 허구적인 논리라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시민단체들의 활동이 정치적 중립성 논리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다.


다음으로, 사회세력화의 토대에 대해 살펴보자. 사회세력화의 토대가 취약하다는 것은 시민운동이 도덕성에 기초한 영향력의 정치에 의존해 왔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공중전’으로 불리는 시민운동의 활동방식은 시민참여의 ‘주체적 운동’이기보다는 합리적인 문제제기로 시민들의 동의를 구하는 엘리트의 ‘계몽적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정당에 대한 높은 불신은 시민운동이 시민적 동의를 확보하는 좋은 조건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시민의 능동적 참여구조가 아니라 수동적 동의구조이며, 여기에 시민운동의 한계가 존재한다.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자.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노동운동은 노동조합이라는 사회적 토대를 바탕으로 민주노동당이라는 정치세력화를 이룩했다. 그러나 노동운동은 조합적 토대가 튼튼한 반면 시민사회적 토대는 취약한 편이다. 재야운동의 경우에는 상층세력이 정치권으로 진출하여 정치세력화에 성공했지만 사회적 토대는 매우 취약하다. 반면, 시민운동은 정치적 중립성을 바탕으로 일정하게 사회적 토대를 구축한 대신 정치적 전망을 포기했다. 결론적으로, 시민사회의 진정한 정치적 대표체계는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민주화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정치적 공백이 발생한 것이다.

정치적 관점에서 본다면, 2002년 대선으로 참여정부가 출범했고 2004년 총선을 거쳐 개혁세력이 원내 과반수를 차지하고 진보세력이 원내진출에 성공했다. 정부는 투명한 운영을, 정치권은 정치개혁을 약속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와 정당에 대한 불신에 근거한 시민운동의 '대의의 대행'의 시대는 끝났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시민사회가 발전하면서 계몽적 방식의 운동에서 주체적 참여의 운동으로 점차 전환되고 있다. 이것이 1단계 민주화와 구별되는 2단계 민주화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변화가 시민운동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최근 논의 경향을 종합해보면 시민운동의 일반적인 변화 방향은 백화점식 운동에서 벗어나 전문화하는 것, 글로벌화 추세에 맞추어 국제연대를 강화하는 것, 준정당적 위상을 포기하고 풀뿌리화하는 것 등으로 모아지고 있다. 인터넷 베이스의 운동방식을 개발하고 상근 전문가 중심의 운동에서 벗어나 일반시민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확대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이것을 시민운동의 개념 확대라 할 때, 대략 세 차원의 선택이 가능하다. 일차적인 선택은, 기존 시민운동이 스스로 활동영역을 확장하여 글로벌화와 풀뿌리화로까지 개념을 확대하는 것이다. 다음 선택은, 민주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풀뿌리운동이 민주화 2단계 국면에서 시민운동의 주요 영역으로 부각되는 것이다. 풀뿌리운동의 활성화는 ‘공중전’에서 ‘지상전’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시민운동의 개념 확대와 관련해서 매우 중요하다. 마지막 선택은, 매우 민감한 문제인데, 시민운동이 정치적 중립성의 속박에서 벗어나 정치적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다.

시민운동이 정치적 역할을 강화하는 것은 민주화 2단계 국면에 부합하는 필연적인 선택이다. 민주화 1단계 국면에서는 시민운동이 정당과 거리를 둔 상태에서 대의정치의 결함을 보완하는 '대의의 대행' 전략을 수행하는 것이 필요했고, 시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이러한 전략을 수행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참여를 통한 자기실현이 강조되는 민주화 2단계 국면에서는 '대의의 대행'에 대한 수동적 지지보다는 주체적 참여가 더욱 중요해진다. 이것은 제3자적 관점의 비판과 감시를 넘어 주체적 참여를 통해 공공선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시민운동의 정치적 역할을 강화하는 것은 민주화 1단계 국면에서 나타난 시민사회의 정치적 공백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불가피한 선택이다. 민주화 과정에서 시민사회가 급속하게 확장되고 시민들의 참여 요구가 높아진 반면 이를 대표하는 정치주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지역주의에 매몰된 기존 보수정당은 별개로 하더라도, 개혁적인 정당이나 진보적인 정당의 경우에도 시민적 대표성이 매우 취약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민주화 2단계 국면에서 정치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시민적 대표성을 가진 정치주체의 등장은 필연적인 요구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까?

시민운동의 변화가 필요한 이유

2004 총선시민연대`가 6일 오전 낙선대상자 명단을 발표한 뒤, 손수건을 흔들며 `부패정치 안녕`을 외치고 있다.
2004 총선시민연대`가 6일 오전 낙선대상자 명단을 발표한 뒤, 손수건을 흔들며 `부패정치 안녕`을 외치고 있다.오마이뉴스 남소연
시민운동의 정치적 역할 강화를 위해서, 또는 시민적 대표성을 담보하는 정치주체의 등장을 위해서 모든 시민단체가 정치적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권력과 정치를 감시하는 전문화된 시민운동이 비당파적 입장을 고수한다는 것을 전제로 나머지 시민단체들이 자유롭게 정치적 활동을 전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때 개별 시민단체의 활동영역은 단순한 정책 선택의 수준일 수도 있고 그 이상의 정치 활동일 수도 있다. 시민단체 내에서도 선택의 여지가 있다. 단체가 정책적 판단을 하거나 정치적 선택을 하고자 할 경우 단체의 결의를 바탕으로 추진할 수도 있고, 대표나 의사결정구조의 수준에서 할 수도 있으며, 단체의 성원의 개별적인 결정으로 할 수도 있다. 이것은 개별 시민단체가 스스로 선택할 문제이다.

다만 현 시점에서는, 시민운동의 정치적 역할을 중앙정치보다는 지역에서 지방자치와 주민참여의 관점에서 발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으로 판단된다. 지역에서 주민자치를 활성화하고, 자기 삶의 문제를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주민들의 지혜를 모아 공동의 노력으로 지역공동체를 가꾸어 나가는 등의 역할이 시민운동의 새로운 과제로 제시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시민참여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참여와 의사결정의 정치를 기대할 수 있다. 아래로부터의 이러한 참여의 전국적인 결집이 중앙정치를 구성한다고 가정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정 새로운 정치의 출발일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시민운동의 성격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시민운동의 성격이 헌법이나 법률로 규정되는 법률적인 것이 아니라 주어진 시대의 사회적 상황에 의해 규정되는 역사적인 것이고 사회적인 것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운동이 그 시대의 변화를 대변하는 것이라면, 시민운동 역시 80년대 이후의 변화를 대변하는 것이며, 그런 한에서 시민운동은 한국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나타났던 사회운동사의 맥락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민운동 역시 재야운동, 노동운동, 학생운동 등 다른 사회운동과 구별되는 특수한 운동으로 볼 수 없다. 즉 시민운동은 사회운동의 80년대식 표현 혹은 민주화 과정에 부합하는 사회운동의 민주적 변형태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시민운동을 포함한 모든 운동은 사회적 모순구조에서 출발하여, 그 사회의 미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궁극적으로는 그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런 점에서 모든 운동은 필연적으로 가장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운동은 최고의 정치이며, 정치는 운동의 제도적 표현인 것이다. 다만, 민주화의 특수한 상황에서 등장한 시민운동이 복잡한 정치적 관계 속에서 일시적으로 정치적 중립성을 강요받게 된 것뿐이다. 이런 점에서 민주화 2단계는 이제 시민운동의 정치적 해방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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