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족벌경영 탓"... "장 회장 마지막 결단 남았다"

[인터뷰] 전민수 한국일보 노조위원장-고재학 기자협의회 비대위원장

등록 2004.08.06 11:18수정 2004.08.06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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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대체 - 6일 오후 4시45분]

"임금 삭감 동의 안하면 회사 포기하겠다는 협박"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일보지부(위원장 전민수)는 지난 2일 '경영정상화를 위한 목숨 건 투쟁'에 돌입한다고 선언했다.

"좌초 직전에 놓인 '한국일보호'를 살려야 할 선장과 항해사의 무능과 무책임, 부도덕성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게 이유다. 그동안 비상대책위원회 형태로 운영됐던 조합 활동도 투쟁대책위원회로 전환, 경영진에 대한 본격적인 공세에 나설 계획이다.

편집국 기자를 주축으로 구성된 한국일보 기자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회장 고재학 기자)는 지난 3일 미지금 급여와 관련해서 회사측을 상대로 소송 절차에 들어갔다.

기자협 회장인 고재학 기자는 "장 회장이 증자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어떤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며 "마지막 결단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우선 전민수 위원장은 4일 <오마이뉴스>와 만난 자리에서 "한국일보 위기의 가장 큰 책임은 장씨 일가의 족벌경영 실패에 있다"며 현 경영진에 직격탄을 날렸다. "'조중동'과의 살인적인 경품·무가지 공세도 회복하기 어려운 치명상을 줬다"고 말한다.


노조는 현재 회사측이 요구한 '임금삭감 동의서'에 서명하지 않은 상태다. 경영진이 이미 이행됐어야 할 '300억 증자'를 이유로 또 다시 사원들의 '고통분담'만을 강요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 위원장은 "현재 경영진은 사원들만의 희생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경영정상화 방안을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장 회장이 계속 노조와의 교섭을 거부하고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업무상 횡령 및 배임 혐의 등으로 고소·고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음은 전 위원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 경영정상화 투쟁을 선언했는데.
"회사에서 갑자기 사원설명회를 열고 '임금삭감 동의서'를 받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장기근속자들을 중심으로 50여명의 사원이 사표를 썼다. 퇴직금이라도 깎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노조는 회사가 더 이상 교섭절차를 무시하고 강행하고 있는 이러한 조치들을 묵과할 수 없기 때문에 극한투쟁을 선언한 것이다."

- 한국일보가 위기에 처한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이라 보는가.
"신문시장이 침체돼 있기는 하지만 한국일보의 경우 이전부터 족벌경영 병폐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경영부실이 누적돼 왔다. 거기에다 '조중동'과의 살인적인 부수확장 정쟁에 막대한 무가지·경품 등을 제공하면서 심각한 출혈까지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장씨 일가의 족벌경영 실패를 원인으로 지적할 수 있다."

- 장 회장은 연말까지 300억원을 증자하지 못하면 물러나겠다고 각서를 썼는데.
"한마디로 '생쇼'다. 자기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2년 동안 미뤄놓고 이제와 새삼스럽게 사원 앞에서 이야기하는 이유가 뭔가. 말하자면 임금삭감에 동의해 주지 않으면 12월 말에 안 할 수도 있다는 뜻 아닌가. 회사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협박이다."

- 10여명의 간부가 책임을 지고 사직서를 제출했는데.
"그 사람들은 벌써 경영 실패에 책임을 지고 빨리 나갔어야 한다. 수십 년간 근무했던 사원 50여명이 한 맺힌 가슴 안고 회사를 떠났는데 나로서는 정말 피가 거꾸로 쏟는 일이다. 그들을 이렇게 내보내는 경영진들이 정말 경영자로서의 윤리의식이나 책임감이 있는지 의문스럽다. 사표를 낸 간부들은 하루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 회사는 일체 교섭에 응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사원들만의 희생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경영정상화 방안을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를 무시하고 고사시키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노조는 그동안 자구계획안을 발표하고 경영진과의 교섭을 촉구해 왔다. 경영진은 노조 없이도 노조원에게 '임금 삭감 동의안'을 적용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 현 경영진에 대한 불신이 큰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경영진으로는 희망이 없다. 회사를 정상화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위기를 넘긴다 하더라도 올 연말까지 증자가 이뤄진다는 보장도 없다. 한국일보의 위기를 사원들의 임금 삭감을 통해 버텨나가겠다는 소리밖에 안 된다. 장 회장은 채권단과 사원들을 상대로 게임을 벌이고 있다. 사원들 임금을 안 깎아주면 올해 안에 증자를 안 할 수도 있다는 식으로 나오는 것이다."

- 채권단에 대한 불만도 높은 것 같다.
"채권단 입장에서는 한국일보가 계속 남아 있어야 이자도 받고 원금도 챙길 수 있기 때문에 현 상황이 부담 없을 것이다. 장재구 회장의 증자약속을 미뤄주는 것에 대한 법적 책임도 묻기 힘든 상황이다. 7월말까지 100억원을 증자하겠다는 장 회장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는데도 채권단은 시한을 또 연장시켜줬다.

채권단과 장 회장 사이의 '야합'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서로의 필요에 따라 증자 약속 위반을 계속 용인해 주는 것 아닌가. 증자가 늦어져 발생한 손실 중에서 이자 부분과 기회비용만 따져봐도 수십, 수백억에 이른다. 이를 모두 사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특히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에 대한 압박을 벌여나갈 것이다."

- 향후 계획은.
"일단 6일 우리은행 앞에서 채권단 항의집회를 열 계획이다. 현재 경영진이 노조와의 협상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부에 조정신청을 하는 방안도 고려중이다. 장 회장을 상대로는 업무상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고발하는 것을 검토중에 있다."

"장 회장의 마지막 결단 남았다"
[인터뷰] 기자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인 고재학 기자

기자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인 고재학 기자는 4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최근 한국일보가 처한 경영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장 회장이 약속했던 증자가 이행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를 바탕으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사원들의 고통분담이 병행된다면 "지금의 위기가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고 기자는 또 "현재 채권단과 한국일보 사이에 채결돼 있는 재무구조개선약정(MOU)을 보다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퇴직금 누진제 폐지 등에 관해 노조와 약간의 입장 차이는 있지만 상황인식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다"고 밝힌 고 기자는 "향후 한국일보가 보다 개혁적인 신문으로 거듭난다면 신문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기자들의 내부 동요에 대한 질문에는 "선후배간의 끈끈한 정과 '곰바우' 같은 기질이 한국일보에 여전히 남아 있다"고 밝히면서도 "현재 경영진으로는 한국일보에 희망이 안 보인다고 떠나는 경우가 있는 만큼 경영진의 증자 약속 이행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다음은 고 기자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 지난 3일 '임금 미지급' 소송에 들어갔는데.
"장 회장은 2002년 말까지 증자를 완료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그 약속을 늦춘 게 한두 번도 아니고 거기에 실망한 기자가 하나 둘씩 떠나고 있다. 편집국 기자는 물론 회사 전체가 굉장히 힘든 상황이다. 장 회장에게 마지막 결단을 촉구하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장 회장이 약속을 안 지킨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만약 약속을 안 지키면 어떤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장 회장도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 현재 한국일보 경영 위기를 어떻게 보는가.
"장 회장이 약속했던 증자가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게 관건이다. 오히려 상황이 명쾌하게 정리되는 국면에 왔다고 생각한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도 있듯 지금 상황에서 장 회장이 증자를 해서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한국일보가 가면 다행이고, 장 회장이 증자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지지부진한 게 아니라 기자들을 비롯해 사원 모두 똘똘 뭉쳐 회사를 새로운 구조로 만들어보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 채권단에 대한 불만이 높은 것 같다.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채권단 입장에서는 장 회장이 그래도 240억 정도 증자를 했고 계속 증자를 하고 있으니까 부담이 없을 것 같다. 이자도 꼬박꼬박 받을 수 있지, 돈 한 푼 들지 않지 손해 보는 게 없지 않느냐. 채권단 입장에서는 당연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노조와 편집국 기자 일부에서 채권단이 왜 빨리 경영진을 압박해서 약속을 이행하도록 하지 않는지 불만이 많은 게 사실이다. 현실적으로 보면 장 회장이 이렇게 버티면서 이런 상황까지 끌고 온 거고, 그런 부분에 대해 채권단도 마땅히 손쓸 방법이 없는 것 같다."

- 경영정상화 방안에 대한 입장은.
"200억 이상 적자가 나는 회사에서 우리 몫만 찾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일종의 모럴 헤저드처럼 비칠 수 있다. 사원들도 고통분담을 하고 대주주는 증자약속을 지켜야 한다. 채권단도 현재 유례 없이 불리한 MOU를 합리적으로 고쳐줘야 한다. 세 가지가 함께 이뤄져야 한국일보가 존속 가능한 기업 시스템을 갖출 수 있다는 게 기자 대부분의 생각이다. 노조 역시 이 부분에 대해 인식을 함께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 구조조정에 대한 필요성은 모두 공감하는 것 같다.
"지금 한국일보는 200만부 찍던 시절의 인력과 규모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합리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없다. 구조조정의 필요성은 노조도 인정하고 있다. 다만 구조조정 과정에서 단체협상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 게 문제인 듯하다. 한국일보는 먹고 살 수 있는 파이에 걸맞은 인력과 규모로 슬림화 돼야 한다.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 노조와 기자협의회의 입장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닌가.
"퇴직금 누진제 폐지 등에 있어서 노조가 상대적으로 불만이 높을 뿐이다. 편집국 기자들 경우 이미 연봉제가 실시됐고 퇴직금도 정산된 상태기 때문에 노조의 피해의식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외형상 그럴 뿐이지 회사 상황이 절박하다는 인식에는 모두 마찬가지다. 퇴직금 누진제 폐지에 있어서는 회사가 합리적인 대안을 노조 측에 제시해 주고 합의점을 찾아 위기를 넘겨야 한다."

- 내부 기자들의 동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번에 사직서를 제출한 50여 명 중에 편집국 기자는 없다. 선후배간의 끈끈한 정이 남아있다. '곰바우' 같은 기질이 한국일보 기자들에게 여전히 남아있다. 임금이 중요한 변수이기는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 한국일보를 떠나는 기자는 없을 것이다. 현재 경영진으로는 한국일보에 희망이 안 보이기 때문에 떠난다는 경우는 있는데 그만큼 경영진의 약속 이행이 중요하다."

- 향후 계획은.
"장 회장의 증자 약속 이행을 압박하는 활동을 계속 해나갈 것이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한국일보를 좀 더 개혁적인 신문으로 만들어 나가야 할 것 같다. 신문 상품으로서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다." /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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