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 정연주' 아니다... 침묵하는 다수 나서는 것"

[인터뷰] (가칭) KBS 직장협의회 주비위원회 윤명식 대표

등록 2004.08.06 15:42수정 2004.08.07 20:59
0
원고료로 응원
조직 경량화와 업무 효율화에 역점을 둔 최근 KBS의 팀제 도입은 혁명적이라고 표현될 만큼 창사이래 최대 규모의 개편을 가져왔다. KBS는 이번 조직·직제개편으로 비대화에 따른 방만경영과 관료주의 조직문화를 탈피, 경영의 효율성 및 대국민 신뢰를 높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정연주 사장의 이같은 개혁노선에 우려와 불만을 표시하는 내부 구성원도 적지않다. 주로 팀제 도입으로 '자리'를 잃어버린 중간간부급이 많다. 팀장과 팀원으로만 편성되는 팀제 실시로 차장·부장·국장급 데스크 직책 1014개가 사라졌다.

이들 중 일부는 조만간 (가칭)'KBS 직장협의회'를 구성, 공개적인 활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지난 7월 23일 치러진 KBS PD협회장 선거에 출마했다가 떨어진 윤명식(52) 심의위원(부장급)이 5명의 발기인과 함께 주비위원회 대표를 맡아 뛰고 있다.

일부 중간간부, 'KBS 직장협의회' 결성 움직임

7월 30일 사내 게시판에 직장협의회 구성을 제안, 이번 개편에 대한 조직적 반발을 촉발시킨 윤 위원은 "'안티 정연주'이거나 '제2의 노조'를 시도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단지 KBS 발전을 위한 건설적인 비판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순수한 뜻'을 강조하는 그의 설명과 달리 직장협의회는 단순한 임의조직 신설에 그칠 것 같지 않다. 현재 진단부터 앞으로 발전방향 등 KBS에 대한 시각이 회사 측은 물론 노조나 기존 직능별 단체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윤 위원은 2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정연주 사장이 이끄는 KBS 시스템과 방송내용, 중간간부들의 조직내 소외감 등을 가장 큰 불만으로 꼽았다. 윤 위원은 인사 불만 등 사적 이기심의 발로에서 직장협의회 결성이 출발한 게 아니라고 주장했다.


관련
기사
- "KBS에 계급장은 더이상 필요 없다"


다음은 윤 위원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윤명식 위원은 누구인가

52년 강원 출신. 양양고와 강원대를 졸업하고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81년 KBS PD로 입사했다.

춘천방송총국 편성제작국장과 TV2국 차장, 기획제작국 부주간 등을 거쳐 지난해부터 심의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그동안 <6시 내고향>, <일자리 100만개를 만듭시다>, <좋은나라 운동본부> 등을 연출했다. 85년 문화공보부 장관 표창을 받았고 99년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지난달 말 치러진 제11대 KBS PD협회장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 노조나 직능별 단체와 어떻게 다른가.
"노조는 '2직급 갑'까지 가입할 수 있다. 관리직과 1직급은 가입이 불가하다. 직능별 단체는 해당 직능의 친목도모와 권익향상을 위주로 활동한다. 그러나 협의회는 노조 가입자격이 없는 사람과 있는 사람을 망라하고 전 직종이 참여할 수 있다. 가입 신청을 받고 오는 10일경 발족식을 하려고 한다. 다소 유동적일 수 있다."

- 발족 취지를 설명해달라.
"KBS의 형평성, 공정성 문제가 계속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적어도 좋은 방송이란 다양성이 중요하다. KBS 공정성 논란을 보면, KBS가 방송의 다양성을 잃은 게 사실이다. KBS는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를 수용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어느 한쪽에서는 지지를 받지만, 어느 한쪽에서는 비난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100% 지지는 받지 못하더라도 절대대수가 인정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 최근 단행된 인사에 대한 불만이 직장협의회 발족에 작용된 것 아닌가.
"사적 이기심의 발로로 보고싶지 않다. 물론 자리를 잃었기 때문에 오는 불만도 있겠지만, 지금 구조로는 공정한 방송제작을 할 수 없다는 순수한 뜻에서 출발했다. 이번에 시행되는 팀제는 머리와 다리만 있지 몸통이 없다. 방송내용을 게이트 키핑하고 필터링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하는데 중간단계인 '허리'가 없어졌다. 방송내용이 비판받을 소지가 더 높아졌다고 본다."

- 주요 구성원들이 인사에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는 간부들 아닌가.
"인사제도에 반발한, 정년이 얼마남지 않은 간부들은 KBS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어느 조직이나 인사에는 불만이 있기 마련이다. KBS는 그동안 이런 불만을 후미진 곳에서 삼삼오오 모여 불만을 터뜨리는 식이었다. 그런 방식은 회사 발전에 바람직하지 않다. 은밀한 곳에서 지하조직 같은 움직임이 밖으로 나와서 건설적으로 논의돼야 한다."

"'안티 정연주' 아니다, 공개적으로 의사전달 하려는 것 뿐 "

- '안티 정연주' 또는 '제2의 노조'로 가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있는데.
"그건 아니다. 내가 지난달 KBS PD협회장 선거에 나갔을 때 '정 사장 취임 뒤 불이익을 받은 간부들 외에 누가 찍겠는가'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는데 44%의 득표율을 얻었다. 모두 놀랐다. 말없는 다수가 현재 PD협회장 노선에 반대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PD협회는 PD의 권익신장과 전문성 제고, 친목도모가 주요 활동내용이다. 하지만 지금 집행부는 정치성향을 띠고 정 사장의 노선을 많이 지지했다. 눈에 띄게 계파, 파벌도 형성됐다."

- PD협회 선거결과와 직장협의회에 대한 사내 평가는 다를 수 있지 않은가.
"이번 선거결과 이면에는 기존 협회장 노선에 대한 반대세력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침묵하는 양심이 표를 던진 것이다. PD협회장 선거운동을 할 때 기술, 경영 등 직군에서 많이 격려해줘 큰 힘이 됐다. 그게 우리 회사의 민심이라고 봤다."

- 당시 팀제 등 주요 사안에 대해 어떤 공약을 내걸었는가.
"탈정치, 탈계파, 탈이데올로기를 내걸었다. 팀제는 3개월 후 전사적 차원의 대공청회를 주관하겠다고 했다. 협회장 선거가 끝난 뒤 지지세력이 뜻을 같이 하면 경영진에게 공개적으로 의사전달을 해야겠다고 느꼈다. 불만을 음성적으로 표출하면 회사가 망하는 길이다. '안티 정연주' 또는 '제2의 노조를 위한 움직임'으로 보는 오해는 잘못된 시각이다. 우리는 헌신적으로 회사를 만들어왔고 국민으로부터 지탄받지 않고 KBS가 건강하게 나가길 원하는 사람들이다."

- 그럼 노조와 작능단체 등에서 사내 의사수렴이 잘 안되고 있다는 뜻인가.
"노조는 정연주 사장의 개혁의지에 동의하는 조직이다. 건설적인 비판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또 노조가입 자격이 있으므로 이런 얘기를 하고 싶어도 채널이 막혀 있다. 정 사장 취임 뒤 임명된 간부들은 정 사장 지지층이다. 하의상달 시스템이 안되고 있다."

- 그럼 정 사장 취임 이전에는 의사전달이 잘 됐다는 얘기인가.
"물론 원활하지 않았지만 상급자에게 전달됐고 의견 자체가 폄하되거나 매도당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상급자에게 올라가기도 전에 후배들로부터 '수구꼴통', '기득권 유지'로 매도부터 당한다. 국민 절대다수의 지지를 받는 회사를 만들자는 생각이 수구꼴통으로 매도돼서는 안된다. 침묵하는 다수가 더 많아졌다. 내가 접하는 사람들의 경우 '노코멘트 시대'가 돼버렸다."

- 구체적으로 그런 사례를 들어달라.
"송두율 교수 건과 탄핵방송, 현대인물사 캐스팅 등을 들 수 있다. 현대인물사만 해도 인물평가는 살아있는 사람을 다루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세월 지나서 해야 한다. 그런데 후배들이 '임수경을 다루면 왜 안되느냐'고 하면 할 말이 없다. 개인의견은 매도당하니까."

"후배들 생각만 '선'이 아니다"

- 직장협의회 발족이 자칫 신·구 세대의 이분법적 갈등으로 갈 우려도 있지 않은지.
"가입문의 전화를 하는 사람 중에 노조원도 많다. 발의를 위원급에서 해서 그렇지 PD협회장 선거에서 얻은 227표 중에는 386세대나 신입사원도 많다. 그런 우려 역시 이 움직임을 폄하하려는 것이다."

- 직장협의회가 발족되면 어떤 활동을 주로 할 계획인지.
"일단 직종별로 지금 KBS에 대한 평가와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볼 생각이다. 이후 'KBS 어떻게 갈 것인가'라는 주제로 사내 심포지엄을 열 것이다. 제작 일선 후배들 생각만 '선'이 아니라는, 큰 '과'도 있다는 생각을 일깨워줘야 한다."

- PD협회장 선거에서 당선됐다면 협의회 발족을 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직종·직능단체별로 불만이 많다는 걸 느꼈으니까 '직능단체협의회'를 만들었을 것이다. 지금은 사안 있을 때 공동 대응하는 수준이지만 상설화된 협의체는 없다."

- 오히려 직장협의회 활동이 KBS 개혁을 거꾸로 돌리는 것 아닌가.
"아니다. 개혁으로 가면서 공정성 비난받는 것을 막아주려는 것이다. KBS가 진보에서는 지지받고 보수에서는 비난받아서는 안된다. 국민 대다수로부터 지지받아야 한다. 다양성을 존중해주는 방송이 돼야 한다."

- 언론의 특성상 국민 절대 다수의 골고른 지지를 받는다는 게 쉽지 않은데.
"언론은 공영방송을 제외하고는 각자 노선이 다를 수밖에 없다. 신문은 각자 사주, 사시가 있다. <한겨레>는 친여일 수밖에 없고, <동아일보>는 반정부일 수밖에 없다. 사시가 그렇다. 그러나 공영방송은 그러면 안된다."

- KBS에 대한 국민적 평가나 지지가 지금보다 더 높은 때가 있었는지.
"국민의 지지가 높아진 게 97∼98년부터가 아닌가 싶다. 그때부터 국민이 정보를 주로 어디서 얻고, 어떤 매체를 신뢰하는지 묻는 조사에서 KBS가 1위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물론 정 사장이 오면서 여성 등 마이너리티(소수)에 대한 배려가 많아졌고 KBS에 대한 지지가 지금이 가장 높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 KBS를 위한 이같은 충정이 '땡전뉴스', '땡노뉴스' 시절인 80·90년대에는 왜 나타나지 못했는가.
"그때 충정이 80년대말과 90년대초 노조와 PD협회 등을 만드는 힘이 됐다. 당시 참여했던 사람들도 직장협의회 발족에 동참한다. 그러나 이름을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곤란하다."

"간부들은 반개혁 불순세력 부추김에 의연하라"
노조, '팀장 인사' 관련 성명서 발표

KBS노조가 직장협의회 발족 등 일부 구성원의 움직임과 관련해 중간간부들에게 의연함과 함께 후배들에게 귀감이 돼주길 요청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위원장 김영삼)은 3일 성명을 통해 팀장 인선에서 배제된 간부들에게 후배로서 각별한 당부를 해 눈길을 끌었다. 노조는 "간부직위 대폭축소로 상실감이 전혀 없을 수 없겠지만 그동안 쌓아온 전문성과 경륜을 현장에 쏟아넣어달라"고 주문했다.

또 노조는 "반개혁·반KBS 정서를 부추기는 사내 불순세력의 부추김이 있을지라도, 특정 집단의 사익을 추구하는 '사조직'이나 '압력단체'를 만들자는 유혹이 있을지라도 의연하게 거부해달라"고 호소했다. 노조는 "후배들은 선배들의 양보와 애사심을 토대로 개혁을 일구었다는 자랑스러운 기억을 갖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조는 팀장 인사에 대해 "전반적으로 무난했다"면서도 ▲팀장 절대 다수를 1직급 이상 간부로 채웠고 ▲개혁방향에 부합되지 않는 일부 인물이 여전히 요직에 남아 있으며 ▲능력과 상관없이 옛 관료체제 핵심 간부 일부가 중용된 점 등을 유감으로 지적했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2. 2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3. 3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4. 4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5. 5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