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확대·감세, 경기회복 효과 거의 없다"

진보·보수 학자들 한 목소리... 대안은 엇갈려

등록 2004.08.10 17:54수정 2004.08.11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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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확대와 세금감면이라는 서로 다른 경기침체 해법을 놓고 정치권이 연일 팽팽한 논리를 펴고 있다. 마치 과거 미국의 ‘뉴딜정책’(재정확대)과 ‘레이거노믹스’(감세정책)를 연상시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정작 보수와 진보적 경제학자들은 ‘별 효과 없을 것’이라는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들 경제학자들은 정부가 재정을 늘리거나, 세금을 깎아준다고 현재의 내수와 투자침체가 회복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대신 현재의 경기침체의 원인과 해법에서는 분명한 입장 차이를 드러냈다.

보수적 성향의 학자들은 참여정부 경제정책의 ‘급진성’을, 진보적 학자들은 ‘산업구조의 한계’를 현 침체의 원인으로 진단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좌편향적 정책을 바꿔야한다는 주장과 현 금융중심에서 산업중심의 정책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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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경제연구소


진보·보수 "두 정책 모두 큰 효과 없을 것" 한목소리

[재정확대·감세정책의 효과] 이선근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본부장은 우선 한나라당의 감세정책을 '대기업 감세론'으로 규정하고 "대기업 감세론은 전혀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고, 감세로 오는 유효수요 창출이나 투자는 더 이상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본부장은 재정확대정책과 관련해서도 "재정확대 혜택을 입는 쪽은 대기업과 재벌, 부동산 투기꾼 밖에 없다"고 단정하면서 "만약 감세까지 병행한다면 재정지출을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고 되물었다.

유철규 성공회대 교수도 두 정책 모두 기대만큼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 교수는 "법인세 인하는 투자에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법인세율 때문에 투자를 안 하는 것도 아니다"며 법인세 인하를 뼈대로 하는 한나라당의 감세정책론을 반박했다. 오히려 유 교수는 감세정책 시행에 따른 재정불안 때문에 정부가 더 어려운 상황에 빠져들 것이라고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법인세 인하 투자유발효과 '미미'...재정확대는 세부담 상승 효과만

보수 성향의 학자들도 두 정책의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조하현 연세대 교수는 "감세정책이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을 수 있겠지만 경제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금을 깎아준다고 해서 지갑이 열리지 않을 것이며 재정적자만 키울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감세정책으로 인한 가처분소득 증대는 결국 저축으로 흡수될 것"이라며 "소비진작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재정지출확대와 관련해서도 "감세정책보다는 효과가 조금 낫겠지만 위축된 소비와 투자 심리를 살리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투자와 소비의 위축은 강경노조와 참여정부의 분배위주 정책 때문에 발생했기 때문에 정책 전환 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재정학이 전공인 곽태원 서강대 교수는 "두가지 다 큰 효과를 발휘하기는 힘들다고 본다"는데 동감을 표시했다. 다만 불가피하게 정책을 집행할 것이라면 재정지출확대 보다는 감세정책을 택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법인세 인하에 초점을 맞출 것을 조언하면서 "법인세를 깎아주면 투자가 조금더 활성화될 여지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고 전망했다.

곽 교수는 재정확대정책에 대해 "재정지출을 늘리는 것은 지금 상황에서 효과가 없다는 것은 이미 검증이 된 것으로 세금 부담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되도록 지양할 것을 당부했다. 게다가 재정지출의 비효율적 집행 등으로 인해 '재정낭비'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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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경제연구소


보수 "참여정부 급진성 버려야" - 진보 '소비확대정책', '산업구조조정' 등 제시

[소비·투자위축 어떻게 극복하나] 각각의 성향에 따라 대안은 엇갈렸다. 보수성향의 학자들은 참여정부의 좌 편향적 '정책기조'를 교정해 기업들의 불안심리를 거둬내 줘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진보성향 학자 및 전문가들은 소비 확대정책, 산업구조 전환 정책 등을 주문했다.

조하현 연세대 교수는 "정부가 정책을 확 바꾸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며 갑갑함 심경을 토로했다. 조 교수는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기업들이 왜 한국을 떠나는지 파악해 그 부분을 고쳐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그는 참여정부가 "반미 정책을 쓸 때가 아니다"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대통령은 한국을 떠나는 기업 불러모아서 왜 떠나는지, 어떻게 하면 돌아올 것인지 물어보고 그에 상응하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을 향해서도 정체성 논쟁, 국보법 폐지 논쟁 등은 그만두고 민생부터 챙겨라고 충고했다.

곽태원 서강대 교수가 제시한 대안도 다르지 않았다. 곽 교수는 "개혁을 강조하는 정부의 이념성향 때문에 국민들과 경제주체들이 위축돼 있다"고 참여정부의 좌편향성을 거론했다. 이러한 정책경향으로부터 초래된 불확실성을 정부가 말끔히 해소시켜줘야 한다고 했다. 그는 "기업들이 투자를 안하고 자본도피를 한다고 하지 않느냐"며 "이런 상황에서 재정정책을 써서 돈을 넣어줘 봐야 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외투기자본 통제해 경영자 불안감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도

반면, 진보성향의 전문가들은 각각 다른 수단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이선근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본부장은 소비확대정책과 생산적 투자 정책을 유철규 성공회대 교수는 해외투기자본에 대한 감시강화와 산업구조의 개편 등을 강조했다.

이 본부장은 "노동시간의 단축과 최저임금인상, 이자부담 경감 등의 소비확대정책을 통해 내수를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또 금융시장 중심정책을 산업정책 위주로 전환해, 생산적 투자활동이 살아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가계의 소비여력을 키워주면서, 산업활동을 정부가 뒤에서 지원하는 경제정책을 시급하다는 것이다.

유철규 교수는 우선 해외투기자본의 주식시장 장악을 감시해, 기업 경영자들의 경제불안감을 해소시켜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해외 투기성자본이 한국의 느슨한 감시망을 피해 국내 기업 경영자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상황을 정부가 차단해야 줘야 한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또 한국 산업의 구조조정이 절실한데 질적 전환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며 산업 구조조정과 관련한 비전을 정부쪽이 제시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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