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외교부, 시골 교사의 북핵해법 참고

10일자 중국 언론, "공중 외교의 성과"

등록 2004.08.11 13:53수정 2004.08.11 15:07
0
원고료로 응원
리자오싱 중국 외교부장이 시골학교 어문교사의 북핵해법을 참고하기로 했다고 중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10일자 관영 신화통신(인터넷판)는, 후난성의 향촌에 사는 올해 39살 된 중학교 어문교사 텐페이빈이 최근 리자오싱 외교부장에게 북핵해법을 건의해 리자오싱 부장이 관계 부서에 참고를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신화통신 보도는 신문만보(新聞晩報) 기사를 전재한 것이다. 신화통신은 이 기사를 상당히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데, 이 보도는 11일 오전 10시 40분 현재까지도 신화통신 인터넷판 1면 주요뉴스로 남아 있다. 참고로, 후난성은 홍콩을 끼고 있는 광둥성의 바로 위에 있는 남부지역이다.

'북핵문제해결방략'(解決朝核問題的方略)이라는 제목의 3000자도 안 되는 이 글은, 북핵해법을 "안전보장, 취소핵무, 화평해결"(安全保障, 取消核武, 和平解決)이라는 12자로 압축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언급했다.

여기서 '취소핵무(取消核武)'라는 표현과 관련하여, 상해국제문제연구소 아시아·태평양 런샤오 주임은 이것이 한반도 비핵화와 동의어라고 설명했다. 그러므로 위 12자를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안전보장, 북핵포기, 평화해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8년간 국제관계를 독학했다는 텐페이빈은 지난해 이라크전쟁 발발 이후 북핵연구에 착수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라크전쟁 발발 후 미국의 관심이 아시아 특히 북핵문제에 맞춰지고 있다는 판단 하에, 4개월 정도의 시간을 들여 도서관과 신화서점을 다니면서 자료분석을 했다고 텐페이빈은 중국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는 지난 6월 22일 제3차 6자회담과 때를 같이하여 이 방략을 완성했으며, 이를 최근 리자오싱 외교부장에게 건의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중국에서는 이러한 경우를 헌책(獻策)이라고 표현한다.


신문에 따르면, 리자오싱 외교부장은 이 건의서를 검토한 뒤 관계 부서에 참고를 지시했으며, 당사자인 텐페이빈에게 감사의 서신을 보냈다. 서신의 주요 내용은 이러하다.

"조국의 외교에 대한 귀하의 관심과 귀중한 의견에 감사를 드립니다. 귀하 같은 인민들의 관심과 지지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우리의 사업은 반드시 더 많은 성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서신을 받아든 텐페이빈은 "국가 외교부에서 일개 시골 선생의 의견을 중시할 줄은 몰랐다"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와 관련하여, 런샤오 주임은 "아마추어 국제전문가인 텐페이빈의 분석에는 가치가 있으며, 머리를 많이 쓴 글"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평소 텐페이빈을 잘 알고 지내온 중국국제문제연구소 아시아·태평양 진린보 주임은 "관점이 독특한 글"이라고 평가했다.

텐페이빈의 방략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보도문상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중국외교부에서는 방략의 내용보다는 그 효과에 더 관심이 있는 듯하다.

글의 분량이 3000자 미만이라고 했는데, 한국어로 번역하면 아마 원고지 50장(A4 기준 5장 정도) 정도가 될 것이다. 복잡한 북핵문제에 대한 구체적 분석과 대책이 원고지 50장 안에 들어가기란 쉽지 않다.

다만, 진린보 주임의 말처럼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관점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런샤오 주임의 말이 나타내는 뉘앙스를 볼 때, 그다지 전문적인 글은 아닌 듯하다. 만약 외교부가 북핵해법으로 채택할 만한 글이었다면, 이처럼 언론에 공개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볼 때,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텐페이빈의 방략이 아니라, 중국외교부가 의도하는 효과일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관련하여, 외교부 판공청의 한 간부는 이번 일을 외교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중외교(公衆外交)의 성과라고 평가했다.

신문에 따르면, 공중외교라 함은, 특히 중요한 외교사안에서 외교부문과 공중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외교정책에 대한 국민적 이해 및 지지를 얻기 위한 것으로, 미국 등 서구 여러 나라에서는 이미 외교정책상의 주요부분으로 자리잡았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신문은 미국의 경우 공중외교 전담 차관이 있으며, 이 사업을 위해 1년에 10억 달러를 투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내용들을 종합해 볼 때, 이번에 중국외교부가 텐페이빈이라는 스타를 창출한 것은, 북핵문제와 관련하여 공중외교방식을 도입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주요 안보문제인 북핵문제에 대한 중국민들의 이해와 지지를 이끌어내려는 것이 그 일차적 목적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중국처럼 언로(言路)가 제한된 사회에서 이것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중국 정부나 언론의 기존 태도를 놓고 볼 때, 중국은 앞으로 북한이나 미국을 상대로 직접 꺼내기 힘든 발언이 있을 때 이러한 공중외교의 형식을 빌릴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다른 시각에서 중국이 국민적 의견을 수렴하면서 북핵문제를 풀어가겠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북핵문제를 장기전 양상으로 이끌고 나가겠다는 의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북핵위기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겠다는 생각도 담긴 것이다.

중국이 이런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은, 미국이 현재 대선 국면에 있고, 민주당이든지 공화당이든지 간에 새로운 정권이 내년 상반기까지는 지금의 북핵기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 기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무튼, 한반도 문제의 일차적 당사자는 남한과 북한인데, 오히려 미국과 중국 등의 주변 국가가 이처럼 북핵문제를 위해 분주히 뛰고 있는 것을 지켜보면서, 북핵문제의 진정한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겠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2. 2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3. 3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4. 4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5. 5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