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문인 작품은 무조건 배격?

[반론] '친일 문인의 작품을 읽고 대통령상 받으라고?'에 대해

등록 2004.08.13 05:06수정 2004.08.13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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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 문인의 작품을 읽고 대통령상 받으라고?

지난 8월 12일자 '친일 문인의 작품을 읽고 대통령상 받으라고?'라는 기사를 읽고 한국 문학을 사랑하고, 공부하는 자로서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친일 문인의 작품을 읽고 대통령상 받으라고?'에서 이윤석 기자는 '한 백일장 대회의 도서 목록에 이광수의 <무정(無情)>이 포함되어 있다'고 지적하며 그 문제점을 주장했다. 해당 기사에는 "작품에는 작가의 사상이나 감정이 담겨 있게 마련이다"는 한 고교생의 인터뷰도 실렸다.

이윤석 기자와 인터뷰에 응한 고교생이 맹목적으로 문학 작품을 받아들이지 않고 작가의 친일 여부까지 파악하고 있다는 점은 퍽 다행스럽다. 그러나 작가의 친일 때문에 <무정>이 대상 작품에서 제외되거나 비판을 받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작가들의 친일 문제는 그간 많은 단체들과 개인에 의해 친일진상 규명을 위한 노력이 있어 왔다. 한국 문학의 경우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이광수, 주요한, 최재서 등의 친일 문인의 행보를 찾아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한 인물의 친일 행적으로 인해 그의 업적을 전부 매도해서는 안 된다. 친일 행적을 빌미로 모든 업적을 부정하려 한다면 우리의 역사와 학문은 너무 빈약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무정>은 한국 문학의 첫 근대 장편소설

필자는 <무정>을 작가 춘원 이광수를 배제한 채 객관적인 입장에서 살펴보았다. 작품을 평가할 때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겠지만 이 작품의 주요 내용은 '자율적·근대적 자아의 확립과 계몽사상'으로 '근대성 탐구'에 대한 작가의 고뇌가 담겨 있다.


'한국 문학의 첫 근대 장편소설'이라는 중요한 평가를 받는 이 작품에는 이형식, 박영채, 김선형이라는 세 인물이 등장한다. 이들 3인 가운데 가장 주동적 인물은 이형식으로 그는 당대의 봉건적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으며 자기 의식이 매우 투철하다. 그러나 그는 박영채와 김선형이라는 두 여성에 대한 시각 만큼은 주체적이지 못하다.

이것은 시대적 불안정, 근대의 첫 작품이라는 과도기적 성향에서 기인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 내에서 불완전한 인간, 변화무쌍한 인물의 전형인 이형식은 기생이 되어 자기 앞에 나타난 박영채를 보고 그녀의 순결에 대해 고민에 빠지면서도, 그녀에게 끌리는 감정 또한 거부하지 못한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선형의 지위와 용모에 호감을 갖는다.


이러한 이형식의 불완전성은 박영채가 봉건적 가치관의 소유자인데 비해 김선형은 근대적 교양의 소유자라는 대립 구조이기에 의미가 있다. 이러한 대비 속에서 이형식은 명쾌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데 이것은 당시 우리 지식인들의 고민으로 여겨진다.

또 다른 작중 인물 병욱을 살펴보자. 병욱의 가치관은 자율적인 판단과 행동에 의해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것은 봉건적 사회에서 벗어나 자신의 꿈과 삶을 구현해 나가야함을 말한다. 바로 이 점이 작품의 근대성을 말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바다.

춘원의 친일 행보는 1937년 이후 시작

춘원 이광수는 1919년 2·8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는 등 단순한 문인이 아닌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다. 춘원 이광수의 친일 행보는 1937년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풀려난 뒤부터 시작되었고, 1940년에는 '이광수'에서 '가야마 미츠오(香山光郞)'로 창씨개명을 한다.

그의 친일 문학은 1939년 2월 <동양지광>에 발표한 시 '가끔씩 부른 노래'부터 시작되어 해방을 맞기 전까지 약 100여편의 친일 시, 소설, 논설을 기고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춘원 이광수는 일본 점령기에 친일문학작품을 가장 많이 남긴 문인으로 그의 친일 행보는 비난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무정>은 그의 친일 행보가 시작되기 훨씬 이전인 1917년 1월에서 6월까지 <매일신보>에 연재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친일 행보가 시작되기 20여년 전 완성된 작품으로 비판 대상이 될 수 없다.

우리 역사에서 1940년대는 고된 시절이었고 그 시기는 '문학의 암흑기'라 칭할 만하다. 그러나 그 문학의 암흑기를 전후한 시점에서 변절한 작가의 작품이라 하여 무조건적으로 배격하는 것은 옳지 않다.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많은 작가들이 친일에 가세했고, 그들의 친일 이전의 작품을 제외한다면 한국 문학사의 많은 부분은 여백으로 비워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학 작품을 읽을 때는 가능한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작품을 읽어 내려갈 때 작가의 친일 의지가 보인다면 마땅히 배격해야 하겠지만, 작가의 친일과 동떨어진 시기의 작품 혹은 친일 의지가 나타나지 않는 작품까지 배격할 필요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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