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석
이렇듯 제작과정에 품이 많이 들고 보관이 용이치 않은 각궁인지라 성능이 좋다고 하여 아무 때나, 누구나 쓸 수 없었다. 그래서 삼국시대부터 각궁이 만들어지고 쓰였으나 조선시대까지도 지휘관 등 일부 사람들만이 각궁을 사용했을 뿐, 대부분의 병사들이 사용한 활은 산뽕나무 등을 재료로 해서 만든 목궁이었다고 한다.
화살 또한 만드는 과정이 까다롭기는 매 한가지인데 시누대를 주 재료로 하지만 종류에 따라서는 광대싸리나무를 쓰기도 했다. 화살은 무게와 용도에 따라 많은 종류로 나뉜다.
무과의 시험에 사용되었던 나무로 만든 목전(木箭), 화살이 매우 작으며 촉의 끝이 길고 날카로워 갑옷도 관통한다고 하는 편전(片箭, 속칭 애기살), 세조 10년에 발행한 '팔방통보'라는 화폐를 전시에는 화살촉으로 쓴 유엽전 등 수십 여종이 있다.
조선시대의 <경국대전>에 의하면 공조의 공장부에 장인들을 두어 활과 화살을 만들게 했다고 전한다. 그 장인들을 'OO장'이라 부르지 않고 궁인(弓人), 시인(矢人)이라 하여 보통의 장인들과 다르게 예우할 만큼 각별히 여겼다. 지금은 그들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궁시장(弓矢匠)'이라 한다.
전남 광양에는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2호 김기(65) 선생이 전통 활의 맥을 잇고 있다. 그의 어린 시절 광양에는 활 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정작 화살 만드는 사람이 없어서 외부에서 장인을 초빙해다가 겨우 수요를 맞췄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김 선생은 화살 만드는 장인의 눈에 들어 심부름을 하게 되었고, 이것 저것 얻어 먹는 재미에 학교도 빼먹으며 장인을 따라 다니기 시작한 것이 벌써 45년 전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