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8월 16일자 5면.조선일보 PDF
조선일보를 정면으로 겨냥한 그의 강도 높은 비판은 계속됐다. 황씨는 조선일보를 '파시즘'에 비유하기도 했다. 황씨는 <한겨레> 기고로 문화계 언론계 등이 술렁이던 같은 달 24일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보수진영 내부에서 보수를 비판할 수 있어야 진정한 보수인데 조선일보는 진정한 보수우익 신문이 아니다"며 "조선일보를 파시즘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주장했다.
황씨의 조선일보 인터뷰 거부선언은 한창 일기 시작한 '안티조선' 운동의 신호탄이 됐다. 그해 8월 7일 진보적 지식인 154명은 '조선일보 기고·인터뷰 거부'를 선언하며 한국언론 역사상 처음으로 특정신문사 반대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듬해까지 모두 1600명의 진보적 지식인이 안티조선에 동참했다.
단연 학계와 문화예술계가 주축이 된 이들은 "개혁적인 또는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더 이상 '조선일보 상술'에 기여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조선일보 거부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지식인들의 조선거부 운동에는 기고·인터뷰와 구독 거부는 물론 절독 권유까지 포함됐다.
황씨는 2001년 언론사 세무조사 당시 소설가 이문열씨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신문없는 정부 원하나」, 「홍위병이 판친다」라는 칼럼을 기고했을 때도 보수신문에 다시한번 쓴소리를 던졌다. 황씨는 그해 7월 10일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최근 문인들의 정치적 발언은 언론권력과 문학권력이 적극 결합한 현상"이라며 "현 정권의 성패는 언론개혁 여부에 달려있다"고까지 역설했다.
이어 7월 17일 <한겨레>에 기고한 「침묵이 지겹다」는 칼럼을 통해 조선일보 등 족벌언론의 횡포를 보고도 무기력하게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지식인을 힐난했다. 황씨는 신군부와 밀월을 통해 성장한 언론을 향해 "호랑이를 뒤에 세운 여우처럼 독재권력의 뒷받침에 의하여 생겨난 권력"이라며 "일제의 헌병보조원 같은 유사기관원"에 비유했다.
황씨와 조선일보의 악연은 지난 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황씨는 당시 3월 정부 허가없이 북한을 방문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즉시 귀국하지 못하고 해외에서 생활한 뒤 93년 귀국, 5년간 복역했다. 평화운동 차원에서 감행된 그의 방북은 조선일보 등 보수신문의 '반북 이데올로기' 이념공세에 상당 기간 시달렸다.
그때 황씨가 입은 상처는 지난해 9월 29일과 10월 8일 <한겨레>에 기고한 「송두율을 위한 변명」, 「송두율을 위한 변병 그후…」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는 당국 조사를 앞둔 송 교수에 대한 선처를 바라는 두 글에서 반공이데올로기 문제와 공안정국을 이용한 언론의 얄팍한 상업주의를 지적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황씨 연락이 닿지 않아
황씨는 지난해 <중앙일보>의 '황석영·이문열 시대를 논하다'(10월 24∼30일) 대담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 소통의 계기를 찾고자 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기대만큼 성과는 크지 않았던 듯하다. 황씨는 지난해 11월 27일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대화를 통해 서로 조금씩 다가갔으면 하는 생각이었지만 쉽지 않다는 걸 느꼈다"며 "이런 자리에는 다시 나가지 않을 생각"이라고 후일담을 털어놓았다.
89년 방북 이래 보수신문, 특히 조선일보에 대해 비판적 자세를 견지했던 그가 갑자기 조선일보 지면을 장식하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황씨는 조선일보로부터 여러 차례 '구애'의 손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경 황씨는 조선일보 고위급 인사가 만나자는 요청을 놓고 측근들과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그러나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고, 황씨 역시 매우 신중한 모습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던 그가 비록 임권택 감독과 마주한 형태이지만 돌연 조선일보에 모습을 드러냈다.
무엇이 그의 마음을 돌려놓았는지 입장을 듣고자 연락을 시도했으나 13일 밤부터 15일 밤까지 연락이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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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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