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도 그런 거지가 없다, 완전 땅거지네"

아내와 넝쿨이까지 총동원된 텃밭 풀과의 전쟁

등록 2004.08.17 21:42수정 2004.08.18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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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하루 종일 풀과의 전쟁을 치렀습니다. 지난 번 감자를 캐고 나서 텃밭에 아무 것도 심지 않고 놔 두었더니 밭고랑 사이로 풀이 얼마나 자랐던지 완전 풀숲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배추, 무씨를 심을 때가 되어 더 이상 미루다간 올해 김장 김치도 못 담글 것 같아 어떻게 하든지 풀을 다 뽑아 내기로 했습니다.


얼치기 농사꾼의 밭이 그런 거라고 그렇게 자위도 해 보지만 너무했다 싶습니다. 텃밭은 완전히 풀에 점령을 당한 꼴이었습니다. 아내가 먼저 용감하게 호미를 들고 밭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풀을 어느 세월에 다 뽑아낼 것인가 처음에는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

a 하루 종일 텃밭에서 풀과 씨름을 했습니다.

하루 종일 텃밭에서 풀과 씨름을 했습니다. ⓒ 박철

그래도 아내는 입을 꾹 다물고 호미질을 하며 어린이 키만한 풀을 뽑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어제 비가 넉넉하게 와서 땅이 물러 풀이 잘 뽑혔습니다. 머릿속으로는 눈을 질끈 감고 제초제를 뿌리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을, 이 고생인가 하는 생각이 슬며시 들기도 했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밭 중간에 옥수수를 세 고랑을 심었는데, 옥수수대를 뽑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옥수수를 다 따내고 옥수수대를 뽑는 데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옥수수대를 잡고 이렁이렁 흔들다가 뿌리채 뽑는데 흙이 뿌리에 잔뜩 따라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흙을 털어주어야 합니다. 수백 대가 넘는 옥수수대를 뽑는데 얼마나 용을 쓰면서 뽑았는지 기운이 쪽 빠져 일어서지도 못할 정도였습니다. 공연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습니다.

"당신이 옥수수를 심자고 해서 잔뜩 심어 놓고 옥수수는 까치가 다 따먹고… 옥수수대 뽑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알아? 누구 고생시키려고 그래 옥수수를 심자고 했어?"
"지금 와서 그런 소리하면 무슨 소용 있어요?"

내가 자꾸 툴툴거리니까 아내도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가 봅니다.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풀만 뽑는 것이었습니다.


"내년에 옥수수 심자고 그러기만 해 봐라."

젖 먹던 힘을 다해 옥수수대를 다 뽑았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집에 있는 넝쿨이를 불렀습니다. 그랬더니 은빈이까지 긴 소매 옷을 입고 나타났습니다.


"은빈아, 너 왜 밭에 왔냐?"
"엄마 아빠 일 도와 주려고요."
"그런데 밭일을 하러 온 애가 그렇게 옷을 쫙 빼입고 왔냐? 아빠는 네가 선 보러 가는 줄 알았다."

넝쿨이는 풀과 옥수수대를 한아름 안아다가 밭 한쪽으로 쌓는 일을 하는데, 일을 안 해 봐서 서투르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도 한결 도움이 됩니다. 은빈이가 자기도 돕겠다고 자꾸 얼찐거리니까 넝쿨이가 소리를 지릅니다.

a 진흙밭에서 뒹굴다 나온 아내와 넝쿨이. 환하게 웃으니 보기 좋습니다.

진흙밭에서 뒹굴다 나온 아내와 넝쿨이. 환하게 웃으니 보기 좋습니다. ⓒ 박철

"야! 너 빨리 집에 가!"
"오빠는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네가 집에 가는 게 일 도와 주는 거야."

은빈이는 뿔이 잔뜩 나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아침 7시부터 아침 밥도 먹지 않고 몇 시간 밭에서 씨름을 했더니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습니다. 도대체 지금이 몇 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 배가 고파 먹는 타령만 합니다.

마침 텃밭 귀퉁이에 심어 놓은 토마토 몇 개가 잘 익어서 먹을 만했습니다. 그러나 손이고 몸이고 진흙 밭에서 씨름을 하다 보니 엉망진창인지라 하는 수 없이 토마토 줄기채 꺾어서 흙을 묻히지 않고 요령껏 먹었습니다.

넝쿨이는 평소 토마토를 잘 안 먹는 녀석인데 배가 얼마나 고팠던지 허겁지겁 먹다가 토마토가 밭고랑 사이 진흙 바닥에 떨어졌는데도 그걸 바지에 쓱 문지르더니 먹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이랬습니다.

"엄마! 제가 세상에 태어나서 토마토가 이렇게 맛있는 줄 오늘 처음 알았어요."
"야! 거지도 그런 거지가 없다야. 완전 땅거지로구나!"

너무 허기져서 일을 할 수도 없어 일단 일을 중단하고 밥부터 먹고 다시 하기로 하고 집으로 올라왔습니다. 집에 왔더니 은빈이가 거실을 완전 잡동사니로 쑥대밭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은빈아! 너는 엄마 아빠가 밭에서 힘들게 일하는 걸 알면서 도와 줄 생각은 안 하고 집을 이렇게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냐? 너무 한다고 생각하지 않니?"
"아빠! 아까 작은 오빠가요. 너는 집에 가는 게 도와 주는 거라고 해서 집에 왔어요. 집에 가는 게 도와 주는 거래요."

시간을 보니 오후 12시 30분이 훌쩍 넘었습니다. 대충 얼굴하고 손만 씻고 대룡리 식당에 가서 국밥을 사먹기로 했습니다. 아내가 제일 좋아합니다. 승합차를 타고 대룡리 국밥집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꽉 찼습니다. 다른 식당으로 갔더니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대룡리 시장을 뺑뺑 돌았습니다. 마침 오늘 농협에서 농민 교육이 있었는데 점심 시간이라 교동 사람들이 집으로 안 가고 모두 식당에 몰려 식당마다 만원이었습니다.

"아빠! 방금 제 뱃속에서 쪼르륵 소리가 두 번 났어요."
"엄마도 지금 배가 고파 돌아가시기 직전이다."

오후 1시 30분이 지났습니다. 하는 수 없이 중국집에 갔습니다. 각자 취향대로 자장면, 짬뽕을 시켜먹는데 시장이 반찬이라고 누구 하나 국수 가락 하나 남기지 않고 다 먹어치웠습니다. 정말 살벌하대요.

a 먹음직스러운 토마토.

먹음직스러운 토마토. ⓒ 박철

점심을 먹고 다시 밭에 들어가 오후 4시가 되어서 풀과의 전쟁에서 마침내 이기고 말았습니다. 은근과 끈기의 결과였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저녁 8시 조금 넘은 시간 아내는 파김치가 되어 골아 떨어졌습니다. 자고 있는 아내를 보면서 내가 참 용렬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옥수수는 내가 제일 좋아합니다. 아내가 옥수수를 많이 심은 것은 모두 나를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누구 고생 시키려고 옥수수를 심었냐고 아내에게 타박을 했으니 참으로 못난 남편입니다.

이제 텃밭을 경운기로 쟁기질 하고 밭고랑을 만들어 배추와 무씨를 심을 계획입니다. 오늘은 참 고단한 하루였지만 그래도 그 많던 풀을 다 잡았으니 그래도 얼치기 농사꾼이 밥값은 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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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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