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 안전하십니까?

[참언론 참소리 - 지하철 파업 다시 보기 ③]

등록 2004.08.18 00:34수정 2004.08.22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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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하철의 파업이 한 달이 다 돼 간다. 실마리가 보이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답답해 한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그만 두랄 수도 없다. 이번 파업이 합법이고 ‘안전’ 문제까지 걸려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무조건 파업을 철회한 서울지하철노조와 도시철도노조의 경우 교섭은 둘째치고 조합원 징계 문제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내몰려 있는 상황이고 보면 노조가 ‘선복귀 후교섭’을 선택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급할수록 돌아간다고 이번 기회에 파업의 쟁점에 대해 좀 꼼꼼히 따져 보는 것은 어떨까?

뭐니 뭐니 해도 이번 대구지하철 파업의 쟁점은 ‘안전’이다. 비록 언론이 이를 외면해서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핵심은 역시 ‘안전’이다.

지난해 4월 감사원과 한국산업안전공단이 공동으로 실시한 <도시철도 안전에 관한 국민 의식 조사>에서도 조사 대상 승객의 69.2%와 도시철도 직원의 86.0%가 ‘안전’을 향후 도시철도의 기본 운영 방향으로 제시한 바 있다. 아마도 ‘안전’ 지하철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여기는 참사를 겪은 대구에서 더 말해 무엇하랴.

역무원을 감축해도 안전한가

파업 이후 사고가 몇 차례 있었다. 그런데 지난 8월 10일의 사고는 참으로 아찔했다. 전동차가 정차 지점을 10m 지나 굴속으로 들어간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기관사가 반대쪽 기관실로 가서 전동차를 후진시켜 승객들을 승하차 시키는 동안 해당 역인 명덕역의 역무원들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무도 CCTV를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날 명덕역에는 파업으로 인해 평소의 절반인 2명의 역무원이 있었다. 한 명은 표를 팔고 있었고, 또 한 명은 시설을 감독하기 위해 역무실을 비웠다.


그런데 문제는 대구지하철공사의 조직개편안에 따르면 1개 역사의 인원이 현재의 12명에서 9명으로 줄어 취약 시간대인 밤10시부터 다음날 아침7시 30분까지는 사고 때와 같은 2명만이 근무한다는 것이다. 이는 안전에 큰 구멍이 아닐 수 없다.

또 대구지하철은 2003년 감사원에서 조사한 ‘도시철도의 승차권 종류별 이용 현황’에서도 교통카드와 정액권 이용률이 37.7%로 꼴찌였다. 전국 평균은 60.5%다. 이는 상대적으로 역사 인력이 승차권 판매 업무에 치중해 CCTV 등 감시 제어 설비의 집중 감시와 순찰 업무에 소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공사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무인 매표소를 설치한다고 한다. 하지만 100% 무인 매표소를 설치했다가 다시 역무원을 투입한 광주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실성이 부족한 장치이다. 무인 매표소에서는 우대권, 소인권 지급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발매기로 대체 지급해야 한다. 또 승강장 안전요원인 공익요원을 부정 승차를 방지하기 위해 동원해야 하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공사는 경비 절감을 위해 역무원을 1호선에서만 115명을 감축한다고 한다. 과연 우리는 안전할까?

역사의 민간위탁은 안전한가

공사의 조직개편안에 따르면 내년 9월에 개통하는 2호선 26개 역사 가운데 12개를 민간에 완전 위탁한다. 인건비 절감이 이유다. 하지만 민간위탁은 약간의 인건비 절감은 가능할지 모르나 다음과 같은 결과를 초래해 승객들의 안전을 위협할 수도 있다.

수익성 확보를 위한 저가 계약과 이에 따르는 비정규 노동자의 열악한 근로조건 형성→ 비정규직 처우 문제로 인한 높은 이직률→ 잦은 이직 때문에 지속적인 안전교육 불가능→ 각종 비상상황에 대한 대응력 부족→ 승객 안전 위협

실제로 민간 위탁을 먼저 시행하고 있는 부산의 경우 2003년 12월 국가인권위의 비정규노동자 실태조사에서 비인간적인 노동조건으로 인한 잦은 이직 때문에 안전관리능력이 현저하게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또 지난 3월 서울지하철의 민간위탁역인 한남역에서는 기관사에게 연락이 되지 않아서, 사고를 조사하던 경찰 1명이 죽고 서울지검 검사보 1명이 전동차에 치여 중상을 입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사고는 경찰의 사전 통보를 운전 취급이나 무전 연락을 할 권한이 없는 민간위탁역인 한남역에서 직영역인 왕십리역을 통해 연락을 취하려다 기관사와 통화가 이뤄지지 않아서 일어났다.

그런데도 공사는 120여명 규모의 민간위탁을 고집하고 있다. 경비 절감을 위해 다른 지하철에서도 이미 시행하고 있다는 논리다. 과연 우리는 안전할까?

전동차 중정비의 외주 용역은 안전한가

전동차의 중정비란 3년마다 전동차를 완전 분해해서 정비하고 다시 조립하는 중요한 일이다. 정비가 잘못되면 자칫 큰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높은 기술력과 책임 검수는 지하철 안전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그런데 외주용역이 이런 필요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을까?

국가인권위는 2003년 12월의 비정규직 실태조사에서 ‘부산지하철의 중정비 용역은 월 급여 100만원도 안 되는 열악한 임금과 비인간적인 노동조건으로 이직율이 높고, 정비 또한 전문적이지 못해 지하철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실제로 부산지하철의 경우 2000년 용역을 시행한 뒤 120%의 이직율을 기록했고 임금도 군필 직원의 경우 연봉 1000만원 정도로 열악하다. 또 도시철도공사의 경우도 용역직원들의 이직율이 65%로 상당히 높다. 이런 상황에서 높은 질의 정비와 책임 검수를 바란다는 것은 솔직히 무리다.

대구지하철에서는 지난 3년간 운행 중 전동차 중대 고장이 140여건이나 발생했다. 만일 이런 상황에서 외주 용역을 현실화하면 더 잦은 고장과 이로 인한 사고의 증가는 불을 보듯 뻔할 것이다. 그런데도 공사에서는 외주 용역과 검수 주기 조정 따위로 1호선 차량 인원을 87명 감축한다고 한다. 과연 우리는 안전할까?

안전 교육ㆍ훈련은 안전한가

감사원은 2003년 보고서에서 대구지하철은 ‘1999년 구조조정 과정에서 연수원을 폐쇄한 뒤 실질적인 안전 교육이나 훈련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를 대체한 직장 내 교육과 훈련도 공문 회람이나 문서제공 따위의 형식적 교육에 그쳤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렇다면 참사를 겪은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달마다 민방위의 날에 승객 안전 훈련을 실시하고 비상대비 모의 훈련도 실시하는 등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교육은 여전히 공문 회람이나 문서 제공에 의존하는 등 형식적 요소가 강하게 남아 있고, 비상대비 모의 훈련도 미리 소방서에 연락을 취해 놓는 등 비상 상황과는 거리가 먼 훈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공사는 실질적인 교육과 훈련을 위해 필요한 ‘교육원’ 설치를 요구하는 조합원 70여명을 징계 조치했다. 교육원 설치를 요구하며 (형식적) 교육을 기피했다는 이유다.

또 공사는 조직개편안에서 경영 조직의 핵심인 경영관리부는 기획경영처와 지원협력처로 나누어 4개 팀을 8개 팀으로 확장한 반면 시민 안전과 서비스 능력 확대 등과 직결되는 ‘교육원’은 지원협력처 산하의 일개 교육훈련팀으로 축소했다.

이외에도 안전이 문제되는 것으로는 1인 기관사 제도와 기관사 1일 승차 시간 확대 그리고 지도요원의 축소와 도착 점검 폐지들이 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다 말할 수는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대구시가 약속한 ‘시민중재위원회’ 등에서 전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안전문제를 외면한 지역신문

매일신문  7월 29일, 30일
매일신문 7월 29일, 30일매일신문
파업을 한 지 한 달째다. 지역 신문의 관련 기사도 엄청나게 많다. 하지만 안전을 집중적으로 다룬 기사는 찾기 어렵다. 대부분이 ‘시민 불편’과 ‘노사교섭 중계’로 채워졌다.

<매일신문> 7월 29일치 30면에 실린 <대구지하철 홀로파업 왜 ②조직개편안 ‘안전’ 논란>이 안전을 집중적으로 다룬 유일한 기사일 것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민간 운영 전문성에 의문 비상사태 제때 대응 못”한다는 노조의 주장과 “종합사령실 등 기능 보강 안전관리체계 문제 없”다고 하는 공사의 주장을 병렬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영남일보>는 이마저도 없었고 여기저기 곁들인 기사가 조금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위에서 살핀 70여명의 조합원 징계 문제는 <매일신문> 7월 30일치 26면 <대구지하철 홀로파업 왜 ③노조원 징계 문제>란 기사와 <영남일보> 7월 29일치 3면 <실마리 못찾는 대구지하철 파업>이란 기사에서 징계 사실만 짧게 언급했을 뿐, ‘교육원’ 설치를 둘러싼 징계 사유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다.

또 지난 8월 10일 일어난 사고에 대해서도 <매일신문> 8월 11일치 31면 <지하철 또 운행 실수>란 기사와 <영남일보> 8월 11일치 27면 <지하철 겁난다>란 기사에서 사고 사실만 언급했을 뿐이었고, 사고 역의 역무원들이 알지 못한 사실과 이런 일이 공사의 조직개편안에 따르면 구조적인 문제라는 지적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두 신문은 파업 기간 중에 일어난 사고를 보도하면서 안전에 대한 근시안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노동자들이 파업에 참가한 특수한 상황에서 일어난 사고로 한정했다.

영남일보  7월 29일, 8월 11일
영남일보 7월 29일, 8월 11일영남일보
<영남일보>는 7월 27일치 27면 <지하철정비 거의 ‘스톱’>이란 기사에서 “관련 인력 228명 중 198명이 파업 참가 기관사도 피로누적…안전운행 빨간불”이라고 보도했고 또 8월 2일치 27면 <운행중 전동차서 연기…탄 내>란 기사에서 “파업 13일째…‘피로누적’ 지하철 또 사고”라고 보도했다. 그리고 <매일신문>도 8월 3일치 1면 <대처능력 떨어져 ‘안전위협’>이란 기사에서 “지하철 파업 장기화…주정비공장도 폐쇄 검수 인력 평소 4분의1 불과”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공사의 조직 개편안이 실시되면 1호선에서만 차량 인력의 35%가 줄고, 기관사도 23명 줄어 실제 승차 시간이 증가하는 등 “안정운행(에) 빨간불”이 일상화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보도가 없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역 신문들은 안전 문제를 보도하는 데 소홀했다. 이번 파업의 주요 사항인 안전 문제가 부각되지 못한 것도 언론의 이런 보도 태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끝으로

대구지하철공사는 조직개편안을 통해 약 48억5천만원을 절감할 수 있다고 한다. 연간 운영 적자의 10% 수준이니 적지 않은 돈이다. 또 정부에서 지하철 부채 상환 지원은 지자체의 중장기 부채상환 및 경영개선계획의 연차별 이행여부에 상응하여 시행한다고 하니 시와 공사로서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민들의 안전을 소홀히 하기에는 턱없이 적은 돈이 아닐까. 1년 전을 생각해 보자. 2ㆍ18참사로 현장 복구비만 516억원이 쓰였다. 또 직ㆍ간접적 피해를 고려하면 그 규모가 7천억원이 넘는다는 주장도 있다. 그렇지만 희생자와 가족들 그리고 대구 시민이 받은 고통은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아직도 우리는 지하철 타기가 겁이 난다. 작은 사고에도 새가슴이 돼 조바심을 친다. 대구시민의 이런 불안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적자도 안전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대구시와 공사는 이런 점을 감안해 새로운 대안을 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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