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철사로 낚시 만들어 냇가에 드리우다

밥풀, 파리, 지렁이로 피라미 낚시 하던 시절 이야기

등록 2004.08.18 11:46수정 2004.08.18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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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 바늘 만들기
낚시 바늘 만들기김용철
어른들이 "호랭이 장가 간갑다"며 반긴 비는 다소 양이 많다. '호랑이 장가간다'는 이 비는 환하던 대낮에 갑자기 앞이 캄캄하도록 장대비가 한참 쏟아지다가 '내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쨍하고 개는 걸 말한다. 개벽의 환희가 이런 건가? 하늘이 열리는 감격이랄까.


시쳇말로 로또를 맞은 기분이다. 잠깐 갰다가 다시 비가 와도 무방하다. 그 때마다 어린 나는 호랑이가 왜 시집은 가지 않는지 궁금했다. 언제나 우리 골짜기에선 백아산 마당바위에서 호랑이가 장가를 갔다.

여우비는 조금 다르다. 여우 꼬리에 냇물을 묻혀 자는 사람 얼굴에 휘익 뿌리며 장난질하고 유유히 도망치듯 맑은 하늘에 감질나게 흩어 뿌리고 지나가는 비다. 영화 야외촬영에서 살수차가 뿌리는 것보다 양이 작은 이 비는 차라리 분무기로 잘게 뿌리며 스르륵 살갗에 이슬이 스치듯 지나가니 청량하다. 기특한 비라고 하자.

이렇듯 호랑이 장가가는 비와 여우비는 8월의 변화무쌍한 날씨를 표현하는 데 아무 손색이 없다. 소나기, 소내기, 소낙비 그리고 구름과 해의 겨룸 앞에 가끔은 수채화를 보는 듯 수묵화를 감상하는 듯 한 기분이 들 수도 있다. 도랑물이 조금 불어나 있으면 또 어찌나 반갑던지….

입추를 넘긴 매미는 막바지 힘을 다해 연신 미루나무 느티나무 감나무 배나무 가리지 않고 울어대지, 선풍기 하나 없이 지낸 지난날 어른들이라도 옆에서 부채를 부쳐주면 단잠을 꿀맛으로 알고 옹골지게 한번 자보겠지만 녹록치 않다.

재래식 변소와 외양간, 돼지우리에서 부지기수로 생산된 파리 떼에 속수무책인 이 철에는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밤에는 모기마저 우글거리니 마당에 매캐한 모깃불을 피우고 모기장 안에 들어가 자는 수밖에 없다.


낮잠 한번 늘어지게 자려고 잠을 청하지만 파리들이 빨판을 날름거리며 쉼 없이 얼굴을 더듬으며 간질이는 통에 긴 잠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애초 무리다. 끈끈이를 천장에 붙인들, 인피리스를 뿌리고 잔들, 밥알에 알갱이를 개서 접시에 놓고 잔들 낮 시간의 수면 훼방꾼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환경이 이렇다고 아이들 불만이 쌓인 적은 없다. 그 집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환경 탓을 하지도 않았다. 그냥 있으면 있는 대로 좋고, 없으면 없는 대로 좋다. 그냥 그대로 즐기기에 여념이 없었던 아이들이었다.


"탁!"
"탁탁!"

파리채를 잡고 명중하면 내장마저 터지기도 하고 잠시 기절한 파리도 있다. 최고의 낚시 미끼는 두엄자리에 드글드글 했던 빠알간 실지렁이였지만 냇가에서 낚시를 즐기던 아이들에겐 보리밥 한 숟갈에 된장을 묻혀 한 개씩 끼워 사용하기도 하고 파리를 먹잇감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동물성에 만지기 좋은 파리가 애용되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지렁이가 그 시절 나에게는 징그러웠기 때문이다.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상상해보라. 지렁이가 '나중에 커서 뱀이 된다'는 형들의 가르침과 만지면 끈끈한 점액질의 감촉이 이상야릇한 기분이 들도록 하니 지천인들 쉽게 손이 가지 않고 대신 형들 낚싯밥이나 대줄 때 호미로 긁어주기만 했다. 그러면 건빵이나 뽀빠이 한 봉지 나왔던가.

한 마리 두 마리 잡아 놓으면 살아서 도망치는 놈들도 있다. 열댓 마리쯤 되면 초조하도록 바빠진다. 벌써 친구들은 도랑 가에 엉덩이를 깔고 물고기 몇 마리는 잡았음직한 시간이 지났을 테니까.

낚시를 미리 만들어 두지 않아 그 자리에서 만들었다. 안방과 부엌 사이에 있는 연장이 놓인 벽장에 둥글게 사려진 녹이 슬어가는 철사 줄이 20여 미터 있었다. 문고리에 매달려 철사를 간신히 아래로 끌어내렸다. 힘에 겨워 다시 올라가 빠루(망치의 일종이지만 못을 뺄 때 쓰는 연장이며 일본말)는 그대로 두고 날이 달린 짜구(나무를 파낼 수 있게 만든 망치의 일종. 자귀의 고향 말)를 꺼냈다.

철사를 풀지 않고 뚤방(토방)으로 가져갔다. 낚시로 쓰기에는 두껍지만 우리에겐 동네 형들이 쓰던 코 달린 낚시 살 돈을 마련하기 힘들었고 그나마 여기에 길들여졌으니 해마다 여름이면 철사로 낚시를 만들어 요긴하게 썼다.

맨 먼저 끝 부분을 잡고 돌 위에 쓱쓱 문지른다. 자꾸 문지르자 돌은 조금씩 쇳가루가 떨어져 색깔이 변한다. 철사를 잡고 있는 손가락이 뜨거워졌다. 쇠뿔은 단김에 뽑으라 했으니 열 받았을 때 계속 문질러댔다. 끝이 조금 날카롭게 되자 "퉤-"하고 침을 한번 뱉어 갈았다. 숫돌물처럼 잿빛색깔과 거품 있는 침이 뒤섞여 더 잘 갈린다. 또 침을 뱉어 갈았다.

쓸만한가 확인해보았다.

'그래! 됐구만….'

나무를 찾았다. 나뭇가지가 없으면 낚시 모양을 낼 수 없다. 감나무도 아니요 배나무, 앵두나무 가지 두께도 아닌 싸리나무나 조릿대 굵기의 가는 젓가락 길이의 나무를 찾는 건 역시나 정지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눈썰미가 있다지만 '그려, 요만하면 되겠지?'하며 막상 철사에 대보면 너무 굵어 못쓸 때가 더러 있었다. 더 가느다란 걸 하나 더 가져갔다.

철사에 나뭇가지를 감아 둥그렇게 돌리자 갈고리가 만들어진다. 뾰쪽한 낚시 바늘 끝부터 나무에 감긴 부분만 둥글게 되고 나머지는 그대로 직선이다. 이때 펜치 하나 없던 연장통을 나무랄 수도 없으니 망치 모난 부분을 활용해 한두 번 돌 위에다 치면 낚시 하나 간단하게 만들어졌다.

더 지체하면 아마 아이들은 각자 지네들 집으로 들어갈지 모른다. 급한 김에 한쪽 신발만 벗고 마룻바닥에서부터 깨금발로 종종 뛰어 안방 벽장까지 갔다. 반짇고리에 들어 있는 명주실꾸러미를 찾았다. 둘둘 감긴 실을 마구 풀었다. 길게 늘어뜨려 밖으로 나와서는 납작하게 넓어진 부분에 실을 여러 번 홀쳐 매달았다.

허겁지겁 낚싯대로 특품인 시누대를 찾아보지만 있을 리가 없다. 대신 가느다란 대를 찾지만 없다. 빨랫줄에 괴어 놓은 막대기는 너무 굵다. 사방팔방 쓸고 다니며 찾느라 정신이 없다.

'이상허네. 작년까지는 저릅대도 있었는디…. 그냥 작대기에 매달아 불까? 에잇 그래도 강태공 자존심이 있지.'

그 해부터 대마를 재배하지 않았다. 삼 껍질을 벗기지 않으니 겨릅대가 있을 리야. 높이가 조금 낮은 행랑채 돼지우리 담장 위를 타고 올랐다. 화장실이다. 거기에는 삼년 묵은 겨릅대가 나뭇가지와 흙이 뒤섞인 층과 맨 위층 마람(마름)이 켜켜이 돌려진 중간에 한줌씩 묶여 있다. 남부지방의 천연 단열재로 쓰였으나 지붕 개량 후 사라진 명물이다.

대롱대롱 매달려 두세 개를 한꺼번에 잡고 옆으로 뽑아나갔다. 땀을 뻘뻘 흘리며 바깥쪽을 향해 밀어내자 조금씩 뽑혀진다. 이러기를 2~3분 지속했다. 막바지에 이르러 아래쪽으로 뛰며 힘껏 뽑아 아래로 풀쩍 뛰었다.

"툭!"
"읔!"

무릎이 조금 까졌지만 겨릅대 세 개를 질질 끌고 마당으로 갔다. 파리가 든 종이를 주머니에 조심히 넣고 낚싯대와 낚싯줄을 묶어 밖으로 나가려다 깜박 잊은 게 있다는 걸 알았다. 다름 아닌 찌다. 오색이 찬연한 선수용 찌가 아니다. 그냥 찌로 쓸만한 건 깡깡 잘 마른 억새나 갈대 줄기면 된다.

낚싯줄을 잡고 밖으로 나가는 그 폼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한 손엔 낚시와 실, 또 한 손엔 행여 부러질까 두려워 겨릅대를 하늘 높이 올리고 고샅길을 따라 동네 밖 도랑으로 나갔다.

낚시를 들고 도랑으로 뛰었다.
낚시를 들고 도랑으로 뛰었다.김용철


"잘 잽히냐?"
"아직…."
"글도 많이들 잡았구만…."
"맨 필랑구(피라미)다."
"얌마 그라믄 메기라도 잽힐 꺼라 생각헌 겨?"

바닥이 다 들여다보이는 마을 앞 냇가엔 세상에 있는 물고기는 다 있었다. 가루, 피리, 앞뒤로 하얀 모자때기, 배통아지가 까만 중보때기는 기본이요, 채기사리, 알록달록한 모래무지에 부멍치가 기러기 떼 지어 날 듯 유유히 떠다녔다. 여자 아이들은 작대기에 줄을 묶어 나왔다.

"뭣땀시 인차 왔냐?"
"그냥."

그냥 그렇게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바로 하던 일에 몰두했다. 찌가 너무 뜰까봐 잘록하고 자그마한 돌을 하나 주워 매달았다. 파리 하나를 끼워 낚싯줄을 드리웠다. 겨릅대를 한 손으로 잡고 한 손엔 실과 낚시를 잡고 조심히 내리고 나서 한참을 기다렸다. 이제나 저제나 하며 물을 쳐다보고 있었다.

"까딱 까딱!"
"야 물었는갑다."
"야 색꺄 내꺼 다 도망강께 살살 야그혀."
"알았썸마 지미."

큰 놈이 와서 물었는지 억새로 만든 찌가 자지러진다. 정말이지 그 환희의 순간을 보지 않은 이는 낚시의 묘미를 모른다. 까딱거리다가 이내 안으로 쭉 채가서는 쑤욱 끌고 들어가는 힘! 그 힘을 어린 내가 당해낼 수 있었을까?

"야야 기어들어간다. 얼렁 땅겨라."
"다 보고 있어야."

겨릅대가 끊어질 듯 휘었다. 속으로 끊어질까 두려워 '어… 어… 어….' 소리를 내며 벌떡 일어섰다. 순간, 나는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서서히 낚싯대를 끌어당겼다. 쉽지 않다. 끌려오질 않는다. 잠시 늦춰주었다. 한참 내가 질질 이끌려갔다. 몇 번이나 실랑이를 벌였을까. 고기가 힘이 부칠 때가 되었는지 "촥촥촥" 연을 채듯 줄을 당겨줬더니 별 저항 없이 순순히 따라온다.

"잡았다!"

잡힌 고기는 가로다. 가로는 위쪽에서 보아 날렵하지만 양 옆에서 보면 매끈한 배가 온통 무지갯빛이다. 친구들은 제들 낚싯대에 머리통만한 돌을 올려놓고 내 주위로 몰려들었다.

"야 근디 규환이 니는 포리(파리)로도 잘 잡는다잉?"
"얌마 씨잘데기 없는 소리 말고 가만히 지달려(기다려) 봐. 다 때가 되면 잽힌당께."

늦게 나온 내가 쉽게 잡자 심술이 났을까? 그도 잠시였다. 이내 동화가 되었다. 곧 서로 간 정보를 교환하며 낚시를 했다. 주로 날피리였지만 한 마리 한 마리 건져 올리는 재미는 이태백이 부럽지 않았다.

"야 뭐해?"
"아따 오줌 좀 싸자."

우린 광주 놈들이 우리 오줌을 받아먹든 말든 관심사항이 아니었다. 가다가 정화될 것 아닌가.

몇 마리 잡아봐야 민물고기조림 한 그릇 나오지 않으니 냇가에 그냥 풀어주거나 닭이나 돼지 먹이로 주고 말았어도 그 때 그 시절의 낚시는 낚시에 푹 빠진 형들에게 견줘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야 밥이 떨어져 부렀다."

낚싯밥이 모자라니 밥을 더 들고 나오거나 파리를 잡으러 가는 아이들 발길이 분주하다. 입질을 하지 않은 아이들은 지렁이를 가져와 지루한 여름을 즐겼다. 비릿한 냄새가 몸에 절었다. 해가 질 무렵 폴짝폴짝 뛰어오르는 고기가 많은 걸 보면 오늘밤 비가 올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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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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