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자동차를 타고 행복까지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헨리 포드 자동차 박물관에서.홍은택
자동차의 수도인 디트로이트에는 자동차와 관련된 기록들이 많다. 제리 헤론(Jerry Herron)이 정리한 연대표에 따르면 세계에서 처음으로 1901년 콘크리트 포장 도로가 생긴 곳도 디트로이트고, 도로에 중앙선이 처음 그어진 곳도 1911년 디트로이트 근방의 리버 로드(River Road)다. 좋은 기록은 아니지만 세계 최초의 자동차 사망 사고도 디트로이트에서 일어났다. 1902년 교차로에서 조지 비셀(George W. Bissel)이라는 사람이 마차에 타고 있다가 자동차에 받혀 숨졌다고 한다.
그러니 교통 신호등이 디트로이트에서 처음 생긴 것은 당연한 이치. 1915년의 일이다. 1942년에는 세계 최초의 도시 내부 고속도로인 데이비슨(Davison)이 생겨 났고 지금도 그 위를 자동차들이 달리고 있다. 동전 잡아 먹는 기계인 자동차 주차 미터기가 생긴 곳도 디트로이트 거리들이다.
자동차로 쇠퇴한 디트로이트
그러나 묘하게도 디트로이트 몰락을 재촉한 원인들 중 하나도 자동차였다. 백인 중산층은 더 넓고 크고 '안전한' 집을 찾아 교외로 빠져 나갔다. 자동차가 있으니 통근 거리가 늘어나도 무방했다. 1950년대 185만명까지 올라갔던 인구는 2003년 91만명(인구통계국의 평가치)으로 절반 이하로 줄었다.
결정적인 사건은 미국에서 1967년 '12번가의 폭동(The 12th Street Riot)'이라고 불리는 백인 경찰과 흑인 주민의 충돌이었다. 7월 23일 디트로이트 시내 12번가에 있는 술집에서는 월남전에서 무사 귀환한 이웃 두 명에 대한 흑인들의 축하 파티가 새벽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평소 흑인을 못살게 구는 것으로 악명 높은 태크반(Tac Squad) 소속의 경찰 4명이 무허가 술집 단속을 이유로 파티 현장을 덮쳤다. 그리고 82명에 달하는 손님 전원을 체포해 술집 앞에 세워 뒀다. 그러자 그 곳으로 지나가는 흑인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체포된 흑인을 태운 마지막 경찰차가 현장을 떠나자 누군가가 인근 옷 가게의 유리창을 깨뜨렸다. 그게 봉기의 신호였다. 닷새 동안 모두 43명이 사망하고 1189명이 다쳤으며 7000명이 체포되는, 당시로서는 최악의 폭동이 일어났다. 건물 1400채가 불탔고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8000명의 군 병력이 투입됐다.
폭동은 진압됐지만 후유증은 컸다. '하얀 탈출(white flight)'이 잇따랐다. 백인들은 앞다퉈 도시를 빠져 나갔다. 꼭 폭동의 여파는 아니지만 자동차 공장도 교외로, 남부로, 그리고 해외로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