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밥통'을 멍청이라 말하는가

전기밥솥(밥통) 예찬론자들과 즐거운 '번개'

등록 2004.08.19 17:01수정 2004.08.20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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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의 어울림은 언제나 즐겁다. 공통된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정보를 교류하고, 가끔씩은 사회생활로 찌든 스트레스를 함께 풀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진다.


서로 살아가는 방식과 직업이 다른 이유로 자주는 만날 수 없지만 가끔 뜻 있는 사람들끼리 소위 '번개'라는 모임을 통해 친목과 우의를 다지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하는데 어제(18일)의 모임도 그랬다.

a 인터넷을 통한 사진 블로그 모임을 함께하는 친구들의 '번개'

인터넷을 통한 사진 블로그 모임을 함께하는 친구들의 '번개' ⓒ 이인우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에게는 '그 동안 무엇을 하면서 지냈는지?'가 궁금하고 동호회를 통해 만난 커플들에게서는 '어디까지 진도가 나갔는지'도 궁금해진다. 자연스럽게 대화 내용은 우리들의 사는 이야기에서 시작되어 결국 공통의 관심사인 '사진'과 '카메라', '촬영지'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렇게 오랜만의 번개는 분위기가 무르익어갔다.

그렇게 다양한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던 우리는 우연히 '밥통(전기밥솥)'에 얽힌 이야기로 주제를 옮겨가게 되었는데 동호회 회원들의 밥통에 어린 흥미진진한 몇 가지 이야기를 소개한다.

a 자취생활 6년의 '전기밥솥' 활용 노하우를 밝히는 '보리차'님

자취생활 6년의 '전기밥솥' 활용 노하우를 밝히는 '보리차'님 ⓒ 이인우

"밥솥은 만능기계다" "밥솥 없이는 못 살아"

'보리차'라는 아이디를 쓰는 회원의 '밥솥' 예찬은 이렇게 시작됐다.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데우거나 할 때 주로 전자레인지를 이용하지만 자신은 전기밥솥을 애용한다는 것이다. 특히 먹다 남은 피자를 데울 때와 냉동만두를 조리할 때 전기밥솥은 전자레인지를 능가한다는 것이다.


우선 수분증발이 전자레인지보다 상대적으로 적어서 원래 음식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맛을 그대로 보존할 수 있으며 특히 밀가루 반죽 부분의 쫀득쫀득한 맛이 살아 있도록 음식을 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음식을 데우는 데 전자레인지만큼 편리한 것은 없지만 전기밥솥을 이용하는 작은 수고만으로 더욱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자취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레토르트식품을 데울 때, 냉동식품을 조리할 때, 조금의 수고만으로 집에서 먹는 음식과 같은 제대로 된 음식 맛을 볼 수 있다는 자취경력 6년의 노하우를 역설한다.


이어지는 '밥통'을 이용한 '보리차' 회원 자신만의 독특한 요리법은 '반숙달걀' 만들기였다. 자취를 하다보면 아침을 거르기 쉬운데 전날 저녁 전기밥솥의 쌀 위에 겉 표면을 깨끗이 닦은 생 달걀을 꽂아놓으면 아침에 반쯤 익은 반숙달걀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 전 반숙 달걀을 숟가락으로 퍼먹는 맛이란 자취생만의 또 다른 노하우라고 자랑한다.

'보리차'의 밥통 예찬이 이어지자 바로 옆에 있던 '철잎'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친구 역시 자취경력 10년 동안의 전기밥솥과 관련한 수많은 추억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전자레인지와 전기밥솥의 구조적 기능의 차이점에서부터 냉동음식을 비롯한 각종 음식들의 특성을 조목조목 이야기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식품공학'이 전공이란다.

a 식품공학 전공자 답게 전문가 입장에서 '전기밥솥'을 예찬하는 '철잎'님

식품공학 전공자 답게 전문가 입장에서 '전기밥솥'을 예찬하는 '철잎'님 ⓒ 이인우

'철잎'은 특히 우리네 어머니들이 집에서 '식혜'를 만들 때 전기밥솥을 이용하는 이유에 대해서 전문적인 입장에서 이야기했는데 '밥알의 공질화 문제', 온도 변화의 검출과 온도조정 등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바이메탈'이라는 단어 등을 섞어가며 현명하신 우리 어머니들의 '전기밥솥' 이용에 관한 이야기로 열변을 토했다.

요즘이야 일정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전기밥솥이 있어서 맛있는 '식혜'를 만들 수 있지만 예전 우리 할머니 세대에서는 장작불로 '식혜'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전문가 수준의 조리 방식이었다고 감탄하기도 했다.

'철잎'의 전기밥솥 이용 노하우는 냉동식품의 구입에도 철저하게 반영되고 있었는데, 보통 냉동만두를 살 때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밥솥의 크기를 고려해 적당한 포장 단위를 산다는 것이다. 밥솥의 크기를 고려하지 않고 너무 싸다고 해서 필요 이상 많은 양이 들어 있는 제품을 구입하면 봉지 채로 조리하기에 불편하다는 이유에서란다. 오랜 자취생활의 경험이 묻어나는 지론이다.

요즈음 생산되는 밥솥은 대부분 압력 기능이 있는 것들로 단순한 전기밥솥의 그것과는 기능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압력밥솥으로도 전자레인지의 기능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는데 방법은 간단하다. 밥솥 위의 수증기 배출 꼭지를 젖혀놓기만 하면 된다.

전기밥솥으로 할 수 있는 요리는 밥 짓기뿐 아니라 위에 언급한 것처럼 식혜, 만두 등 냉동식품의 조리, 피자 등의 식품 데우기, 계란찜하기, 레토르트식품 데우기, 라면 끓이기, 떠먹는 요구르트 만들기, 약식 만들기 등 다양하다. 특히 전자레인지 대용으로 '밥통'을 이용하는 지혜는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더 맛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일석이조의 역할을 하게 된다.

'보리차'와 '철잎' 두 친구의 전기밥솥 예찬론이 절정에 이르자 '애니'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또 한 친구는 콘도로 여행을 갔을 때의 경험담을 들려줬는데 전기밥솥으로 라면을 끓이면 한 번에 많이 끓일 수 있고 더욱 맛있다는 주장이다. 대부분 콘도에는 라면을 여러 개 끓일 만한 냄비가 충분하지 않은데 그럴 때 전기밥솥을 이용해 라면을 끓이면 훌륭하다는 것이다.

a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답게 사진찍기는 일상이다.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답게 사진찍기는 일상이다. ⓒ 이인우

자취생활을 한번쯤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가지 이상 가지고 있을 법한 '전기밥솥'의 추억과 나만의 '밥통' 활용 노하우에 대한 이야기로 오랜만에 만난 동호회 사람들과의 비오는 날 '삼겹살 번개'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아주 가끔씩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공통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그 속에서 삶의 활력을 찾고 새로운 정보를 얻으며 나도 모르고 있던 내 안의 새로운 모습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행운을 가질 수 있는 동호회 활동이 즐겁다.

온라인을 통해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관계를 부정하거나 아직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그러한 편견을 오히려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며 새로운 정보를 취득하는 긍정적인 기회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온라인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올바른 모습일 것이다. 이러한 사고의 전환은 곧 '밥통'을 멍청이가 아닌 훌륭한 '요술램프'로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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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그리고 조선중후기 시대사를 관심있어하고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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