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 어허...... 어찌 이런 일이! 그래서 주상전하께서는 어찌 하신다고 했느냐?"
포도청 종사관 한상원의 보고를 들은 형조판서 정만석은 혀를 끌끌 찼다.
"그것이, 소식을 들은 궁중에서 죄인들을 내몰아 보내었기에 포도청에 갇혀 있사온데 더 이상의 말씀은 없사옵니다. 궁중의 사람들이라 함부로 형을 집행하기도 난감하여 포도대장이 절 이리로 보내 대감의 말씀을 듣고자 한 것이옵니다."
"알겠네. 이는 포도청뿐만 아니라 형조까지도 모독한 행위니 주상께 상소를 올리겠네."
정만석은 서리를 불러 난동을 부린 별감과 하속들을 엄히 징계할 것을 촉구하는 상소문을 쓰도록 명했다. 내용인즉 난동을 부린 궁중의 별감과 하속들을 변방으로 귀양을 보내란 내용이었다.
"제 아무리 간이 부었기로서니 어찌 별감과 하속 따위가 포도청을 범한단 말인가? 내 생각하기에 필히 뒤에 누군가가 있을 것이네."
서영보는 종사관들과 포교, 행정을 맡아보는 서리 및 말단 나졸들까지 모아 놓고서는 그들을 하나하나 둘러보았다.
"더욱 한심한 것은 비록 공초에는 빠졌지만 이 포도청 안에도 역적과 구린 거래를 한 이들이 있다는 것이네! 뭔가 여의치 않자 별감과 하속들이 포도청을 친 것이 아니겠나!"
서영보는 역적의 수급을 가지고 와 용케 무단으로 포도청에서 이탈한 죄를 사면 받은 종사관 심지일을 노려보았다. 심지일은 그저 고개를 푹 숙인 채 다른 포교들의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 서영보는 크게 호령했다.
"이번 일은 포도청이 정신차리고 파 해쳐 보아야 할 것이네! 내가 포도대장으로 있는 한 포도청의 썩은 이들을 모조리 몰아내고 말 것이네!"
퇴청 후 백위길은 애향이의 집으로 향했다. 기방의 일을 잠시 쉬고 있는 애향이는 이제는 사실 백위길과 혼례를 한 것과 마찬가지였지만 백위길의 집이 협소해 서로간에 오고가는 처지였다.
"오시었소."
백위길은 장모에게 인사를 올린 후 애향이가 지은 저녁상을 받았다.
"얼굴이 좋아 보이지 않사옵니다."
밥 한 그릇을 힘겹게 비운 백위길은 걱정하는 애향이의 말에 포도청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행여 포도대장에게 일의 전말을 얘기할 생각은 마옵소서. 포도청의 종사관과 포교들이 어떻게 엮이어 있는 지 이젠 아실 터 아니옵니까?"
애향이는 이미 뭔가 망설이는 백위길의 속을 꿰뚫고 있는 듯 했다. 백위길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땡추질을 하는 한량이 역적질을 했는데도 참수되지 않은 것도 이상하고 포도청은 포도청대로 이렇게 된 거 유리한 쪽으로 행동하자는 기색일세. 포도대장께서 이 일에 눈을 떼지 않을 때 뿌리를 뽑아야 함이 옮을 지도 모르네."
애향이는 백위길의 손을 잡으며 타이르듯 말했다.
"아녀자의 말이라 무시하지 말고 깊이 새겨들으십시오. 기방에 있으며 많은 이들이 나누는 얘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사온데 그들의 뿌리는 넓고 깊사옵니다. 혼자 어찌 할 일이 아니옵니다."
"허허"
백위길의 입에서 '모든 것을 밝혀낸 뒤 포교일을 그만 두어야겠소.' 란 말이 맴돌았다.
다음날,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한 백위길은 포도청으로 나와 포도대장이 기거하는 곳에서 서성거렸다. 그간 있었던 일을 어찌 정리해 말해야 하는 지 자신도 없었으며 말한 다 해도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때 누군가가 백위길의 뒤에서 크게 소리쳤다.
"포도대장 서영보는 어서 나와 어명(御命)을 받으라!"
깜짝 놀란 백위길은 자리에서 엎드렸고 의관을 차려입은 서영보가 어명을 전해온 궁중 서리 앞에 뛰어나와 꿇어앉았다.
"우포도대장 서영보는 들어라. 일전에 모반과 관련되어 포도청의 초기(草記)를 흘려 보고서 윤허했다가 궁중의 하인들을 하였다가 놓아 보낸 바 있다. 다시 생각해 보니 포도청 초기의 말은 너무나도 살피지 못한 것이니 그 대장 서영보(徐榮輔)를 파직힌다. 더불어 궁중의 하인들은 이미 그 죄를 받은 바 있으니 모두 놓아 보내도록 하라."
서영보는 땅에 엎드린 채 뜻밖의 어명이 너무나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백위길은 그런 서영보를 보며 맥이 풀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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