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안대소하는 박창욱 교수박도
박 교수님의 말씀 내용은 우리 민족지도자들의 만주로 건너온 경위와 이주 초기의 활동, 추가가, 경학사, 신흥무관학교, 백서농장, 부민회, 서로군정서, 봉오동전투, 청산리전투, 참의부, 정의부, 신민부, 조선혁명군, 대종교, 동북항일연군 등 독립운동사의 전편으로 막힘없이 이어졌다.
상해 임시정부 대목에서는 초대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을사오적'보다 더 나쁘다고 혹평을 하셨다. 그 이유인즉, (임시정부)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제 스스로 미국에 위탁 통치를 부탁하고, 동포들이 모아준 독립자금을 유용한 혐의로 탄핵을 당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해방 후 그런 사람이 다시 대통령이 되어서 친일파 처단은커녕, 오히려 그들을 등용하여 민족정기에 먹칠을 한 인물이라고 아주 가혹하게 매도하셨다.
1931년 만주사변 후 일제는 동북에다 만주국을 세우고 관동군 70만을 풀어서 독립군들을 빗질 토벌하는 바람에 대부분 민족주의 진영은 상해로 국내로 잠입 탈출하였고, 동북에는 동북항일연군이 항일 명맥을 유지하였다면서, 언젠가는 남과 북의 독립운동사를 통합해서 객관적으로 다시 써야 할 것이라고 하셨다.
요즘 젊은이들이 역사를 잘 알아야 할 텐데 경제만 중시한다면서, 이러다 보니 정의감은 사라지고 별별 해괴한 일도 다 벌어진다고 걱정하셨다. 독립운동가 후손은 풍비박산이 되고 친일파 후손은 떵떵거리며 사는 세상에 누가 애국하겠느냐고, 정의가 사라진 세태를 한탄하시고는 '민족의 얼'을 세워야 민족도 나라도 산다고 역설하면서 긴 말씀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