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
요즘 은빈이가 주로 입는 옷은 짧은 미니 스커트에 배꼽티, 아니면 시원한 원피스입니다. 그 옷이 자기한테 제일 잘 어울린다고 말합니다. 여름 방학 내내 마당에 나가서 하루 종일 놀다 보니 얼굴이고 몸이고 깜둥이가 되었습니다. 전에는 은빈이 얼굴 사진을 찍으면 잡티 하나 없었는데 얼굴에 주근깨도 생기고, 모기에 물린 자국도 있고, 자기가 생각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입니다.
어제 저녁은 저녁밥을 일찌감치 먹고 현관 앞에 탁자를 놓고 의자에 앉아 분위기 있게 아내와 차를 마시고 있는데 은빈이가 대화에 끼어들었습니다.
"엄마, 요즘 제가 밖에서만 놀다보니 피부가 엉망이 되었어요. 개학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피부 관리를 좀 해야겠어요."
"은빈아! 네 피부 관리가 문제가 아니라 몸매 관리를 좀 해야겠다. 너 밥을 너무 많이 먹어서 뚱보가 되었잖아. 요즘 네 얼굴 사진을 찍으면 각이 안 나와. 다이어트 할 생각은 없니?"
"아빠는 제가 뭐가 뚱뚱하다고 그래요. 보통이지. 그리고 저는 다이어트는 죽어도 못해요."
은빈이는 아내에게 피부 관리를 위해서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꼬치꼬치 캐묻습니다. 나는 아내와 은빈이의 싱거운 대화에서 빠져나와 저녁 달리기에 나섰습니다. 집에서 출발해서 경지 정리가 된 논길을 따라 무학리까지 갔다 오는 것입니다. 날씨가 많이 선선해졌더군요.
그렇게 1시간 30분 동안 땀에 흠뻑 젖어서 헐떡이며 집에 들어왔더니 거실에 웬 조그만 아이가 대자로 누워 있는 것이었습니다. 가만 보니 은빈인데 얼굴에 오이 썰은 것을 잔뜩 붙이고 누운 채로 나를 보고 히죽히죽 웃는 것이었습니다.
"야, 너 지금 뭐하는 거냐?"
"아빠는 보면 몰라요? 오이 마사지 하는 거예요."
옆에서 아내는 은빈이에게 말도 시키지 말고, 웃기지도 말라고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면서 연신 '쉬쉬'합니다.
욕실을 들어 가서 샤워를 하고 나왔더니 은빈이는 얼굴에 오이 조각을 붙인 채로 잠이 들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데굴데굴 굴러다니면서 잠을 잘 정도로 잠버릇이 고약한데 반듯하게 누워서 잠을 자고 있는 모습이 기특해 보였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짜리가 다 큰 처녀처럼 보이대요. 그렇게 두어 시간 잠을 자고 일어난 은빈이에게 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