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 운악산 자락에서 발견한 소태나무 한 그루김규환
아버지는 나무줄기를 잘게 쪼개 잎과 함께 삼태기에 담아 소죽솥에 물을 가득 붓고 불을 땐다. 한번 팔팔 끓자 나무를 건져내고 불을 줄여서 고아나간다. 몇 시간을 졸였을까 뽀글뽀글 거품이 생기더니 진한 갱엿보다 더 까맣게 굳어져 간다. 양은 대병 서너 병 가량으로 줄었다.
타지 않게 불을 끄집어내고 식혀서 가보1호 소에게 절반, 나머지는 아버지 온몸에 골고루 바르셨다. 소태나무 곤 물이 피부에서 말라비틀어지자 아버지는 영락없는 깡마른 갈색의 '엉클 톰' 아저씨다.
하루에도 두세 번 바르고 또 발라 덕지덕지 엉겨 붙은 그 약은 너덜너덜 붙어 있다. 자식인 내가 보기에도 사람 형상이라고 하기에 무리가 있을 정도였다.
그것으로도 쉬 낫지 않았다. 그러기를 1년을 풀쩍 넘겼다. 'PM'을 들이붓듯 바르고 소태나무를 달여서 발라도 별 효험이 없었다. 그렇게 그냥 뒀다가는 아버지 창자에도 버짐이 옮을 거란 이야기까지 돌았다. 다른 수를 쓰지 않으면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번엔 평소 홍어채나 오이냉국을 할 때 쓰던 강력한 순도 99%의 식초-빙초산 병을 사 날랐다. 코로 맡기도 힘들고 손에 한 방울이라도 떨어졌다가는 껍닥(껍질)을 확 벗겨버리고 마는 맹독성 식초. 몇 초도 안 되어 홍어 뼈도 녹이고 색깔도 변색시키는 빙초산의 짜릿한 신맛을 아는 사람은 그걸 버린 지 오래다.
그런데 아버지는 식초병을 한쪽에 두고 나뭇가지로 찍어 손, 발, 사타구니, 겨드랑이, 목, 얼굴에 질질 흐르도록 바르셨다. 옆에서 그 고약한 냄새를 맡으면 숨쉬기도 쉽지 않다. 그걸 참아가며 발라가는 당사자의 고통은 어떠했을까?
웬만한 피부는 PM만 발라도 껍질이 몇 번이고 벗겨질 텐데 그보다 독성이 열배, 아니 백배는 더한 빙초산을 녹여서 물도 섞지 않고 바르니 아버지 피부는 족족 벗겨져 흉측하게 변해갔다. 몽골족 특유의 뽀얗고 노란색은 온데간데없고 딸기우윳빛에 가깝도록 핏줄과 뼈가 훤히 드러나 보였다.
화상(火傷)도 이 정도면 3도가 넘을 것이다. 평소 자식들 앞에서 아프단 말씀을 하지 않으셨던 아버지가 "으~" 하시면서도 또 바르시면 "아부지, 며칠 있다가 바르셔요" 그러면 "뿌리를 뽑아야 헝께 어쩔 수 없다"며 마치 자신을 학대하는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