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 보면, 다시 걷고 싶은 수렴동 숲길

백담사에서 오세암까지

등록 2004.08.26 12:16수정 2004.08.26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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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암으로 오르는 마지막 관문 깔딱(?) 고개에 막 올라, 바라본 설악의 암릉들 ⓒ 장권호

불현듯, 어머니의 손때 결은 고향집 툇마루가 사무치게 그리운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나는 속수무책이 된다. 내 몸의 역마살이 목까지 차 올라 임계점에 이른 뜨거운 여름 날, 여름 설악을 향해 배낭을 꾸린다. 백담사에서 영시암을 거쳐 오세암과 봉정암에 이르는 내설악의 저 깊숙한 속살을 따라, 자장율사와 만해선사의 숨결을 더듬어 3년 결사로 봉정암 성지 순례길에 나선 광주교사불자회를 따라 길을 나선다.

남도 땅 광주에서 7시간의 긴 여정 끝에 46명의 순례단을 태운 버스는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백담사에 도착했다. 백담사는 647년 자장율사가 한계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이래 1783년까지 무려 일곱 차례에 걸쳐 화재를 만나, 그때마다 터를 옮기고 이름을 바꿨다. 그러고도 업이 끝나지 않았던지 1915년의 큰 화재와 6.25의 참화를 겪으며 초토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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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설악의 본격적 여정이 시작되는 백담계곡의 시원한 여름 풍경 ⓒ 장권호

이렇듯 파란의 세월을 겪은 백담사는 한국 근현대사에 걸출한 업적을 남긴 만해 한용운이 20대의 젊은 나이에 머리를 깎은, 유서 깊은 사찰이기도 하다. 님이 사라진 절망의 시대에 만해는 이곳에서 불멸의 시집 <님의 침묵>을 구상하며 집필한다. 만해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백담사 측은 경내에 만해 시비와 흉상을 건립하고 97년에는 만해 기념관을 개관하여 각종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90년대 초반, 정확하게 전두환씨가 이곳에 유배되면서 세인의 관심이 집중되고 대형 불사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백담사는 비만 오면 넘치는 징검다리와 채마밭을 지나 쇠락한 건물 몇 채만 겨우 버티고 서 있는 산중의 작은 절집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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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씨가 머물렀던 극락보전과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기구한 운명의 만해기념관 ⓒ 장권호

그렇지만 오늘 찾아간 백담사는 이제 그런 절집이 아니다. 백담사를 기억하는 분들에 의하면 예전의 소담스럽던 그 백담사가 더 좋았다고 한다. 전두환씨가 머물렀던 <극락보전>의 편액이 전두환씨 글씨다. 그가 남긴 편액과 만해 기념관이 절 마당을 사이에 두고 서로 건너다보고 있는 기구한 운명이 오늘의 백담사다.

<님의 침묵>의 산실, 수렴동 숲길

백담사에서 잠깐 숨을 고른 후 조별로 짐을 점검하고 오세암으로 오른다. 백담사에서 수렴동을 타고 오세암과 봉정암에 이르는 이 숲길은 예사로운 길이 아니다. 1400여 년 전, 문수보살로부터 진신사리를 전해 받고 귀국한 자장율사가 진신사리를 모실 만한 길지(吉地)를 찾아 나선 구도의 길이었다. 또한 3.1 독립운동마저 실패로 끝나고 민족 전체가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었던 1920년 대 중반, 만해가 사색과 명상으로 마음을 다스리며 <님의 침묵>을 잉태시킨 유서 깊은 그 숲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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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망경대에 올라 내려다 본 가야동계곡의 수려한 경관 ⓒ 장권호

찌는 듯한 도시의 더위와 먼지가 깨끗이 씻겨 내린 숲은 깊고 그윽하다. 사람은 많을수록 소란스러워지는데, 나무는 많을수록 고요해지는가 보다. 숲이 깊어질수록 내 몸의 세포 하나 하나가 열리기 시작한다. 호흡이 깊어지고 눈이 맑아지면서 내 몸은 어느새 한 줄기 바람이 된다. 위대한 선각자들이 거닐었던 수렴동 계곡길은 유수하기가 그지없다.

수렴동을 따라 영시암까지 이어지는 완만한 숲길은 등산로라기보다는 차라리 산책로에 가깝다. 하늘까지 치솟은 미끈한 아름드리 금강송과 늠름한 전나무가 우거진 완만한 숲길은 영시암까지 계속된다. 영시암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며 회장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 저녁 공양 전에 오세암에 도착해 짐도 풀고 샤워도 끝내야 하기 때문에 조금 서둘러 달라는 부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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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암에서 바라본, 저녁햇살이 곱게 내려앉은 설악의 능선 ⓒ 장권호

계곡길을 버리고 좌측 오세암으로 오르는 산길로 접어든다. 이내 산길은 경사가 가팔라진다.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숨이 턱까지 차 오른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걸음 자체가 고행길이다. 한 등성이 힘겹게 오르고 나면 내리막이고, 내리막이 다하면 다시 오르막이 기다리는 것이 흡사 우리네 인생길이다.

의지하고 믿을 수 있는 것은 힘겹게 내딛는 보폭 25cm 내외의 나의 작은 발걸음밖에 없다. 누구에게도 예외는 없다. 그래서 산행은 또 다른 수행의 모습이다. 60이 넘은 연세에도 젊은이들과 함께 이번 순례길에 나선 노보살님의 모습을 뵈면 차마 힘든 내색을 할 수 없다. 젖 먹던 힘을 다해 마지막 깔딱 고개를 넘어서니, 마침내 오늘의 목적지 오세암이다.

생애 한 번이라도, 오세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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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경대에서 바라본 오세암 전경, 전쟁의 상처로 현존 건물은 근래에 복원된 것이다 ⓒ 장권호

오세 동자의 성불 이야기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오세암은 우리나라 5대 관음 성지 중의 하나로, 인연 있는 중생이 아니면 발길이 닿지 못하는 불교성지라고 한다. 그래서 많은 불자들이 생애 한번이라도 찾고자 간절히 서원(誓願)하는 곳이기도 하다.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이들에게 구고구난(九苦九難)의 온갖 고통과 어려움을 해결해주신다는 대자대비의 관음보살님은 그래서 속세의 중생들에겐 가장 친숙한 이름이기도 하다. 주지스님에 의하면 오세암 관음보살이 나라 안에서 가장 잘생기셨다(?)고 한다.

서둘러 방 배정 받고, 얼음보다 차가운 물로 샤워를 끝내고 절 마당에 서니 내설악의 수려한 영봉들과 산자락에 걸린 저녁 햇살이 그림처럼 곱다. 샤워를 마친 맨살 위로 불어오는 바람 끝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고된 산행의 흔적이 말끔히 지워진 개운한 기분으로 미역국과 오이무침으로 저녁 공양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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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암 오르는 길목에서 바라본 깎아지른 듯한 용아장성의 장관 ⓒ 장권호

산이 높고 계곡이 깊어서인지 저녁이 빨리 찾아든다. 숙소의 문을 닫았지만 머리맡까지 도란도란 들려오는 물소리에 젖어 잠이 들었나 보다. 저녁 예불에 참석하신 분들이 돌아오는 것도 모른 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가 다시 깬 것은 새벽 4시.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1925년 8월 29일 새벽, 만해가 <님의 침묵>을 탈고했던 바로 그 새벽 미명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법당엔 불 밝힌 지 오래인 듯하고, 바람소리·물소리·새소리가 어우러진 산사의 새벽 공기는 소쇄(瀟灑)하다. 만해가 새벽종을 기다리면서 붓을 던졌던 오세암의 새벽이 조금씩 밝아 온다. 6.25의 전란 속에서 철저히 파괴된 오세암에는 그 어디에도 만해의 흔적을 찾을 길 없다. 다만 천세 전부터 오세암을 연꽃 마냥 감싸안은 관음봉, 나한봉, 사자봉 망경대로 이어지는 내설악의 연봉들만이 옛 내력을 간직하고 있을 뿐.

아침 공양 후 주지스님의 안내로 망경대에 올랐다. 해발 922m의 망경대는 동서남북 내설악의 모든 능선들이 한눈에 조망되는, 내설악에서 가장 조망이 좋은 곳이다. 파노라마처럼 밀려드는 설악의 암릉들 앞에 모두들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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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망경대에 올라 바라본 설악의 장관, 멀리 보이는 뾰죽뾰죽 보이는 능선이 공룡능선이다 ⓒ 장권호

아침 빛살 사이로 아스라이 잡히는 건 마등령과 공룡능선이고, 시선을 돌리면 기기묘묘한 용아장성 너머로 소청 중청이 이어지며, 발 밑으론 수려한 가야동계곡이 끝없이 이어진다. 이 장엄하고 거룩한 절대 아름다움 앞에, 나는 다만 언어의 빈곤에 절망할 뿐이다. 사무치는 그리움과 감동으로 하산 길 내내 가슴이 저려왔다.

여행의 마무리

지면상 봉정암에서 1박 후 소청·중청·대청을 거쳐 천불동 계곡으로 하산했던 나머지 일정은 생략한다. 하지만 8월의 뜨거운 햇살마저 무색케 한, 숨막히도록 아름다웠던 천불동 계곡의 비경은 살아가는 내내 잊지 못할 것이다. 끝으로 이번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한 교사불자회 관계자 분들께 지면을 빌어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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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교사신문에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2년째 광주교사신문 12면에 주제가 있는 여행 꼭지를 맡아 집필하고 있다. 또한 광주과학고등학교에서 국어를 담당하고 있으면서 학교도서관 운동에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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