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산대놀이 107

폭동

등록 2004.08.27 17:11수정 2004.08.27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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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 땡추가 보니 훤칠한 키에 준수한 용모를 가진 청년이었다. 옴 땡추는 유배생활을 하면서 그간 멀리했던 책을 읽으며 새로이 마음에 드는 문장을 외우기도 한 적이 있어 문득 호기심이 일었다.

"대체 무슨 시를 외웠기에 그리 정황이 없었는지 궁금하구먼."


그 말에 청년은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시를 암송했다.

이 해 저 해 해가 가고 끝없이 가네. (年年年去無窮去 년년년거무궁거)
이 날 저 날 날은 오고 끝없이 오네. (日日日來不盡來 일일일래부진래)
해가 가고 날이 와서 왔다가는 또 가니 (年去月來來又去 년거월래래우거)
천시(天時)와 인사(人事)가 이 가운데 이뤄지네. (天時人事此中催 천시인사차중최)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이 꼭 옳진 않고 (是是非非非是是 시시비비비시시)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해도 옳지 않은 건 아닐세. (是非非是非非是 시비비시비비시)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함, 이것이 그른 것은 아니고 (是非非是是非非 시비비시시비비)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 이것이 시비일세. (是是非非是是非 시시비비시시비)

(주(主) : 이 한시는 방랑시인 김삿갓의 작품이다.)

어찌 보면 우스꽝스러운 시를 암송한 청년은 약간 쑥스럽다는 듯 인사를 하고선 제 갈 길을 가버렸다. 옴 땡추는 외우고 다니느라 한 눈을 팔았다는 출처불명의 시가 웃기기도 하거니와 왠지 이상한 느낌에 한참동안 청년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분명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인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였다.

'아마 내가 알던 다른 사람과 닮은 모양이지 뭐.'


옴 땡추는 서둘러 발길을 여객으로 돌렸고 멀리서 청년은 슬그머니 뒤를 돌아보더니 옴 땡추의 뒤를 조심스레 밟아 쫓아갔다.

"아니 엊그제만 해도 쌀 한말에 닷푼이었는데 한 냥을 달라니 그게 무슨 소리요?"


싸전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의 불만에 어린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고 있었고 상인들은 느긋하게 같은 소리를 되풀이 할 뿐이었다.

"팔 곡식이 적으니 값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오? 망설이다가는 내일 또 값이 오를 터이니 미리 사가시구려."

쌀뿐만이 아니라 보리 등 잡곡의 가격도 크게 앙등했고 당장 먹을 곡식이 없는 이들은 급한 대로 서너 홉을 사가고서는 집으로 돌아가며 욕을 퍼부었다.

"아니 요즘은 어찌 된 것이 흉년이 드나 풍년이 드나 쌀이 모자란 다고 하니 어찌 살라는 말이야! 내 소작농 때려치우고 한양으로 올라와 살지만 나아지는 건 없으니 에휴…"

쌀값이 갑자기 오르는 일은 경강상인들의 농간으로 비일비재했지만 그 해에는 그 정도가 심해진 감이 없지 않았다. 나라에서 주는 녹을 먹는 백위길은 이런 실정을 잘 느낄 수는 없었지만 싸전을 드나드는 이들의 말로 인해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도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형님! 백포교 형님!"

기찰을 돌고 있는 백위길을 부르며 뛰어오는 자는 푸줏간의 반촌인 박팔득이었다. 백위길은 웃으며 그를 반겼다.

"아니 이 사람아 무슨 일이기에 그리 급한가?"
"지금 다방골 감나무 주막에 반가운 사람이 와 있습니다. 형님을 뵙고 싶다고 하길래 제가 냉큼 찾아다녔죠."

백위길은 누군지 궁금했지만 박팔득은 그 자리에서 얘기해 버리면 반가움이 덜해진다며 빠른 걸음으로 앞서 나갔다. 백위길은 같이 기찰을 돌던 포졸들을 돌려보낸 후 박팔득을 쫓아 주막으로 향했다.

"자, 놀라지나 마십시오."

백위길이 박팔득의 손길을 좇아 자세히 주막 안을 보니 한 남자가 여인과 함께 있었는데 남자는 바로 끔적이었다. 근 십 년만의 해후에 백위길은 반가운 마음을 안고 냉큼 달려갔고 끔적이도 자리에서 일어나 백위길의 내민 손을 덥석 마주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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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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