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소설] 호랑이 이야기 67

나비동자들의 연꽃호수 2

등록 2004.08.30 06:09수정 2004.08.30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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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님은 손으로 도포자락을 뒤로 제치고는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습니다. 그리고 진달래 선녀도 동자님 얼굴을 바라보며 다소곳하게 자세를 고치고 앉았습니다.

그 곳은 이 세상의 착한 마음을 심어주는 동자님들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어린아이들처럼 작고 어리게만 보이지만, 그 곳의 동자님들은 이 세상에 사악한 마음이 스며들지 않도록 관리하는 일을 수 천년동안 맡아서 하고 있었습니다.


이세상의 선한 마음은 전부 그 호수 물로 흘러들었습니다. 연꽃은 그 물을 마시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고, 동자님들도 그 연꽃의 향기를 받아 마시면서, 사람들이 착한 일을 하면 할 수록 더욱더 젊어지기만 했습니다.

울긋불긋한 도포를 입은 동자님이 말했습니다.

“이 세상엔 아직도 착한 기운이 많습니다. 아무리 나쁜 기운이 세상을 차지하려든들, 이 호수에 가득 넘치도록 흐르는 착한 기운은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것을 아직도 몸 속 가득히 느낄 수 있습니다.”

동자님의 맑은 목소리는 호수에 파장을 일으키며 아름답게 울렸습니다. 동자님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 모양인지, 아름다운 잉어가 고개를 물 밖으로 내밀고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진달래 선녀가 말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사랑하시는 동자님이 계셔서 이 호수의 연꽃이 언제나 아름답게 피어있는 거겠지요.”


“이 세상의 착한 사람들이 있는 한 이곳의 연꽃들은 영원히 시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이 연꽃들을 시들지 않게 하는 것이 이전보다 더 어려워 보입니다. 흘러 들어온 물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을때가 많습니다. ”

“착한 마음은 언제나 사악한 것을 이깁니다. 그 흘러드는 물길을 돌려서 그 사악한 것을 착한 마음으로 만들어주시는 동자님들을 언제나 사랑합니다.”


그리고는 동자님과 진달래 선녀는 맞절을 하였습니다.

동자님은 고개를 쳐들고는 나비들이 날고 있는 하늘을 보고 말했습니다.

“준비는 많이 하였습니다. 이제 저도 저 어리신 분들과 함께 날아갈 준비가 다 되어있습니다.”

진달래는 약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하였습니다.

“그도 본래는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물이 필요한 자에게 물을 주기도 하고, 비가 필요한 벌판에 비를 뿌려주기도 했었습니다. 바다 속에 수장되었다가 다시 부활하여 그는 이미 착한 성심이 어디에도 들어찰 구석이 없어 보입니다.”

동자님은 여전히 미소를 띤 얼굴로 말했습니다.

“바리 아가씨가 호종단을 만나러 가고 있는 중이지요? 바리 아가씨가 깊은 곳에 숨어있던 맑은 마음을 꺼내어 가지고 가고 있다지요? 그 맑은 마음을 땅에 심어 커다란 물줄기로 살아나면 선한 마음이 그 물줄기를 타고 흘러서 호종단의 마음속에서 꽃을 피울 것입니다. 제가 그 꽃을 피우도록 하겠습니다”

“알고 계십니까?”

진달래가 묻고 있는 말이 무언인지 이해하고 있는 모양인지, 동자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습니다. 진달래 선녀가 물었습니다.

“그는 본디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한반도의 물을 빼앗기 위해 송나라에서 건너왔을 당시에도 호종단은 착한 농부에게 물을 나눠주었습니다. 끝내 물길을 다 막지 못하고 바다를 건너다가 바다에 수장되어 바다영혼이 되기는 했지만, 그 마음 속 어딘가 에서 착한 마음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동자님이 말했습니다.

“저는 호종단이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난 때부터 그의 마음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순간 순간 필요할 때마다 나타나서 그에게 착한 마음을 심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가본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납니다. 바다에 수장된 이후 그냥 영원히 호종단을 만나지 못할 것이라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를 다시 만나게 되다니 마냥 기쁠 따름입니다.”

진달래 선녀는 그냥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동자님이 다시 물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잠시 생각하더니, 진달래 선녀가 말했습니다.

“곧 백호와 바리가 가는 방향으로 호종단이 올 것입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릅니다. 바리는 천주떡도 가지고 있고 백호는 하느님들이 주신 놀라운 물건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자님의 도움이 더욱 필요합니다.”
동자님은 자리에서 가만히 일어나 진달래 선녀에게 큰절을 하였습니다. 진달래 선녀는 일어나지 않고 고개를 숙여 큰절에 화답하였습니다.

“준비는 다 되었습니다. 이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동자님이 이 말을 마치자 울긋불긋한 도포 뒤로 나비의 날개가 갑자기 반짝하고 펼쳐졌습니다. 그 연꽃나라 위를 날고 있던 것은 나비들이 아니라, 나비의 날개를 달고 너울너울 날고 있던 동자님들이었던 것입니다. 호수 위를 비추던 햇살을 받아 그 날개는 금빛으로 빛났습니다.

진달래 선녀가 말했습니다.

“그 어여쁜 날개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셔요. 저도 가끔은 이런 날개옷 대신 그렇게 예쁜 날개가 있기를 바란 적이 있답니다.”

진달래 선녀는 미소를 띄우며 말했습니다.

“돌아오실 때까지 기도하고 있겠습니다.”

그리고는 진달래 선녀도 동자님에게 큰절을 올렸습니다.

동자님은 날개는 잠시 퍼덕이더니 하늘도 훨훨 날아올랐습니다. 연꽃 위에는 나비의 날개를 단 다른 동자님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도포를 입은 동자, 도령복을 입은 동자, 색동저고리를 입은 동자, 모두들 날개를 퍼덕이며 어디론가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기도 했고, 또 어딘가에서 바쁘게 날아오기도 했습니다.

진달래 선녀의 인사를 받은 동자님을 보고는 색동저고리를 입은 동자님이 날아와 말했습니다.

“저는 함평의 성진 님을 만나고 금방 돌아왔습니다. 안녕히 잘 다녀오세요.”

파란 도령복을 입고 있던 동자님이 옷색깔처럼 푸른 날개를 펄럭이며 또 인사했습니다.

“저는 원산의 혜진이를 만나러 가는 중이랍니다. 염려 마세요, 동자님. 착한 마음은 언제나 이깁니다.”

또 다른 동자님이 말했습니다.

“호종단의 착한 마음이 저 호수 안에서 빛나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무사히 잘 다녀오세요.”

울긋불긋한 도포의 동자님은 아름다운 날개를 펄럭이며 그 많은 친구들의 주변을 한바퀴 크게 돌며 인사한 후 다시 한번 하늘로 높게 날아올랐습니다. 그리고는 그 파란 하늘에 밝은 별자국을 남기며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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