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안에는 우물이 있었는데 이 우물 맛이 좋아서 닥터 페퍼가 맛있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한다홍은택
그러나 최근 들어 거센 도전에 휘말리고 있다. 그 원료의 이름은 HFCS(High Fructose Corn Syrup). HFCS는 말 그대로 과당(fructose)이 많은 옥수수 시럽이다. 미 탄산음료업계는 80년대 설탕 대신 HFCS를 쓰기 시작했다.
이것은 70년대 옥수수 증산을 허용한 미국 농산정책의 유산이다. 옥수수가 남아도니까 옥수수를 활용하는 여러 방법들이 나왔는데 그 중에 미 식생활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이 HFCS의 개발이다.
‘Fat Land’의 저자 그레그 크릿처(Greg Critzer)에 따르면, 71년 일본 식품과학자들이 옥수수 전분에서 낮은 가격에 HFCS를 화학적으로 추출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 처음엔 꿈의 개발이었다.
단지 값싸게 설탕을 대신할 수 있는 것 외에도 HFCS를 냉동식품에 첨가하면 동결 변색을 막을 수 있고 자동판매기계 같은 곳에 넣어두는 식품에 첨가하면 오랫동안 맛을 보존할 수 있었다. 크릿처는 “비스킷이나 롤 케이크 같은 과자에 HFCS를 쓰면 마치 지금 오븐에서 구워낸 것처럼 향과 색깔을 보존한다”고 말했다.
문제가 되는 것은 HFCS 안에 있는 과당(fructose)이다. 과당은 섭취하면 인체의 다른 곳에서는 분해되지 않고 간에까지 도착한다. 거기서 인체에 나쁜 중성지방(triglyceride)을 만들어내는 역기능을 한다.
2000년 토론토대학의 연구자들이 사람과 지방 대사 과정이 비슷한 햄스터들에게 과당이 많이 들어간 음식을 먹인 결과 햄스터들은 높은 중성지방 지수와 인슐린에 대한 저항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인슐린은 영양분이 근육조직 안에 들어가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인슐린에 대한 저항이 발생하면 영양분이 혈관에 남아있어 2종 당뇨병의 원인이 된다.
2001년 미네소타 대학의 존 밴틀(John Bantle) 교수는 과당을 당분으로 많이 섭취한 사람들이 자당(sucrose)을 당분으로 많이 섭취한 사람에 비해 32%나 높은 중성지방 증가율을 보였다고 발표했다.
보스턴에 있는 아동병원에서는 탄산음료를 많이 마시는 어린이들과 그렇지 않은 어린이들의 체중을 19개월간 관찰한 결과 하루에 탄산음료를 한 병 더 마실 경우 비만에 걸릴 확률이 60%나 높아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올해 4월 루이지애나대학의 조지 브레이 박사팀은 '미국임상영양학회지(American Journal of Clinical Nutrition)'에 발표한 논문에서 아예 미국인 사이에서 급증한 비만은 주로 탄산음료에서 섭취한 HFCS 소비의 급증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미 옥수수 가공협회(Corn Refiners Association)와 전국음료협회(National Soft Drink Association)가 발끈 하고 나섰다. 논지는 과거에 쓰던 설탕이나 HFCS의 과당 비율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
설탕은 과당 한 분자에 포도당 한 분자로 구성된 이당류다. HFCS는 HFCS-42와 HFCS-52 두 종류가 쓰이는데 각각 과당의 비율이 42%, 52%라는 것을 뜻한다. 나머지 성분은 포도당이니까 설탕이나 HFCS 모두 절반쯤은 과당이라는 얘기다.
버지니아 공대의 식품영양정책 연구소도 7월 13일 세미나 결과를 발표하면서 HFCS가 특별히 비만에 기여했다고 할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HFCS가 설탕보다 비만과 당뇨에 더 안 좋은지는 아직 의학적으로 합의가 안 돼 있는 상태다.
하지만 과당이 나쁜 데는 어느 쪽이든 이의가 없다. 한국에서는 불과 몇 년 전까지도 당뇨에 좋은 것으로 선전됐던 그 과당이다. 한국에서는 설탕이 당뇨에 안 좋은 것으로만 돼 있어 무설탕이라는 상표로 과당을 듬뿍 넣은 제품을 팔곤 했다.
비만의 피해자는 소수인종과 저소득층
HFCS가 설탕과 비슷한 만큼의 과당을 함유하고 있다고 해서 책임을 면하는 것은 아니다. HFCS는 여전히 과당 섭취를 늘린 주원인이다. 탄산음료 업계는 1980년대 설탕에서 값싼 HFCS로 당분을 바꾸면서 20% 이상 비용을 절약했다. 그 절약된 비용으로 판촉을 강화했고 패스트푸드점에서는 파는 탄산음료의 양을 두세 배로 늘렸다.
‘Fast Food Nation’의 저자 에릭 슐로서(Eric Schlosser)에 따르면 패스트푸드 회사들은 코카콜라 시럽을 한 갤런(3.78리터) 당 4달러 25센트에 구입한다. 그런 뒤 1달러 29센트에 파는 중간 크기의 코카콜라 한 컵에 9센트 어치의 콜라 시럽을 넣는다. 시럽 외의 나머지는 설탕물이다.
콜라 큰 컵은 1달러 49센트를 받고 파는데 콜라 시럽은 3센트 어치만 더 들어간다. 3센트를 넣고 20센트를 더 받을 수 있으니까 17센트가 이득이다. 기를 쓰고 큰 컵을 팔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비자들의 관점에서는 부피가 중에서 대로 두 배 느는데 가격은 20센트만 더 비싸니까 대자를 사는 게 더 경제적인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컵이 커지기 시작해 미국에 와서 가장 놀란 발견 중 하나인 말구유만한 컵이 탄생한다. 이 컵으로 무엇을 담아 마시든 비만해질 수밖에 없다.
89년에 연간 34.7갤런의 탄산음료를 마시던 미국인은 지금은 50갤런을 마신다. 한 사람당 600캔 꼴이다. 옥수수 증산과 HFCS 혁명으로 이제는 값싼 칼로리가 널리고 널린 시대가 된 것이다. 그것을 풍요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