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어떤 짐을 지고 가는가?

아무리 힘들어도 나 혼자 지고 가야 할 짐이 있다

등록 2004.08.31 05:35수정 2004.08.3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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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기 몫의 짐을 지고 가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몫의 짐을 지고 가야 한다.박인오
사람이 어디를 가든지 꼭 따라 다니는 게 있다. 짐이다. 짐은 귀찮은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짐 없이는 살 수 없다. 하루하루의 삶을 유지시키기 위해 우리 주변에는 많은 짐들이 있다. 평소에는 잘 모르고 살지만 이사 한 번 하려면 그 엄청난 짐이 구석구석에서 쏟아져 나온다.


단 며칠간의 여행을 위해서도 제법 큰 가방을 한두 개 채워가야 한다. 어쩌다 공항에 누굴 마중 나가기 위해 가보면 사람들마다 바퀴가 달린 가방을 끌고 다닌다.

10여년 전, 약 20여 일 유럽 배낭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처음 가게 되는 외국여행이라 마음이 설렜다. 큼직한 배낭을 하나 사서 많은 걸 채워 넣었다. 고추장, 된장, 소금, 고춧가루, 라면, 쌀, 취사도구, 담요, 옷, 성경책, 카메라 등등…. 이 무거운 짐 보따리를 매고 20여일을 다니는데 죽을 고생을 했다. 나중에는 관광이고 여행이고 다 집어치우고 빨리 집에 가고만 싶었다.

산에 가는 것을 나는 참 좋아한다. 등산을 곧 나의 취미이자 삶의 부분처럼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에 산에 갈 때엔 이것저것 마구 챙겨 넣었다. 온갖 잡동사니를 그렇게 쑤셔 넣고 산을 오르면 그 짐이 얼마나 무거운지 죽을 고생이다. 등산 그 자체가 버겁고 힘겹다. 산을 감상하고 그 맛을 음미하는 것이 아니라, 등짝에 짊어진 짐을 힘겹게 나르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요즘 시골에서는 지게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시골에도 집집마다 차가 있고, 트랙터나 경운기가 있다. 강원도 정선에 살 때 지게를 몇 번 져보았다. 20kg짜리 비료를 몇 포대 지고 가다가 동네 사람들 보는 앞에서 뒤로 발랑 넘어졌다. 나는 창피해서 죽겠는데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좋아한다.

무거운 짐도 웃으며 지고 가는 사람도 있다.
무거운 짐도 웃으며 지고 가는 사람도 있다.박인오
우리네 인생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짐 보따리와 함께 한다.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뿐, 누구에게나 짐은 예외일 수가 없다. 그것 없이는 인생의 여행 자체가 불가능하다. 삶의 짐을 내려놓는 날은 생을 마감하는 날이다. 인생은 짐이다. 어찌 보면 우리의 몸도 짐이다.


삶의 짐은 피할 길이 없다. 우리는 그것을 짊어지고 가야 한다. 고통과 불행의 짐이 우리를 무겁게 내리 누를 때, 의무와 책임의 짐이 우리를 내리 누를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 그 무게가 결정된다. 농사일을 하면서 내가 누구 때문에 허구한 날 이 고생인가, 하고 생각하면 사는 게 죽을 맛이다.

가정주부의 하루 일과는 매일 되풀이된다. 내가 왜 아무개 집에 시집와서 만날 솥뚜껑 운전사 노릇이나 하고 빨래하고 청소나 한단 말인가, 하고 생각하면 남편이 원수로 보인다.


어떤 일이든지 억지로 하면 괴롭다. 짐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에 대처하는 자세에 따라 짐의 무게가 달라진다. 어떤 이들은 인생의 짐 때문에 불평불만을 하며 그 짐을 지고 간다.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괴로움을 준다.

어떤 이들은 엄청난 영혼의 고뇌와 함께 무거운 짐을 지고 간다. 심한 경우 반항하며 저주하며 마지못해 짐을 끌고 간다. 그래봐야 전혀 소용없는 짓이다. 짐에서 도망칠 수가 없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자신들에게 닥친 무거운 짐을 달게 여기면서 묵묵히 짐을 지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을 무섭게 찌르는 가시 같은 고통을 오히려 영광스럽게 받는 사람들도 있다.

짐은 내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무게가 달라진다.
짐은 내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무게가 달라진다.박인오
여행자들의 짐처럼 삶의 짐도 각양각색이다. 어떤 이는 매우 무겁고 큰 짐을 지고 가고, 어떤 이는 아이들 소풍 가듯이 작고 가벼운 짐을 지고 간다. 어떤 이들은 누구나 볼 수 있는 짐을 지고 가고, 어떤 이는 자신과 하느님밖에 모르는 짐을 지고 간다. 겉으로는 멀쩡하게 살아가는데 실은 남모르는 걱정과 불안이 있다. 웃고 있는 얼굴 뒤에는 깨어진 마음이 있다.

배낭은 군인들에게는 필수적인 짐이다. 잘 훈련받은 군인은 자기 몫의 배낭을 두 어깨에 묵묵히 지고 행군하는 사람이다. 어떤 강행군 속에서도 절대로 벗어던지면 안 된다. 배낭은 군인의 생명과 같다. 거기에 전투에 필요한 모든 게 들어 있다. 무겁다고 버리면 안 된다.

아무리 힘들어도 나 혼자 지고 가야 할 짐이 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그가 해야 할 일은 대신해 주어서는 안 된다. 삶을 쉽게 살게 해 주는 것이 사랑이 아니다. 자녀가 숙제가 힘들다고 부모가 대신 숙제를 해주어서는 안 된다. 그 아이를 망치지 않기 위해 학교 숙제는 자녀가 해결해야 한다. 내가 혼자 져야 할 짐은 아무리 그것이 무거울지라도 자기 혼자 지고 가야 한다.

우리네 인생도 바닥짐이 필요하다. 배가 폭풍우를 잘 견디고 항해하기 위해선 배 밑창에 무거운 짐을 실어야 한다. 비행기도 역시 바닥짐이 없으면 균형을 잡을 수 없다. 잘은 모르지만 엔진이 바닥짐 역할을 할 것이다. 오뚝이 같이 바닥짐이 있어야 넘어졌다가도 얼른 일어날 수 있다. 인생에도 바닥짐이 있어야 저력이 있다. 젊었을 때 고생은 돈 주고도 못 산다. 그 고생을 통해 바닥짐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내 몫의 짐은 당당하게 지고 가야 한다.
내 몫의 짐은 당당하게 지고 가야 한다.박철
물론 버려야 할 짐도 있다. 아무 쓸데없는 짐을 낑낑거리며 지고 가는 사람들도 있다. 교만, 허영심, 이기심, 저급한 생각, 못된 습관, 중상모략…. 이런 짐들은 다 쓸데없는 짐들이다. 일찌감치 내버려야 한다. 그런 시시한 짐을 애인처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대단히 어리석은 사람이다.

지금 나는 어떤 짐을 지고 가는가?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을 남에게 떠맡기거나 피해 달아나지는 않았는가? 계절은 가을 들머리에 접어들었다. 단단히 신발 끈을 묶고 일어서자. 내 몫의 짐은 당당하게 지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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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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