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없는 제주의 바람, 둥근 마음씨처럼

[사람&사람] 제주의 젊은 농부 임인철씨

등록 2004.09.06 13:54수정 2004.09.06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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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의 땅, 제주. 그 아름다운 자연에서 농사를 짓는 제주의 농부들은 참 복받은 사람들이다. 그 땅에서 열심히 땀을 흘리다 고개를 들면 마음 한 자락 편히 쉴 수 있는 멋진 자연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제주는 둥글다. 제주 사람들은 얼굴 생김새와 더불어 마음까지 둥글다. 보고 듣는 것들이 모난 것들이 없어서 그런지 핍박받은 역사를 가슴에 안고도 언제나 희망의 푯대를 잃지 않는다. 섬이라 농토면적이 적다고 생각하면 큰 코 다친다. 한 농가당 농사면적은 꽤 넓다.

둥글둥글한 마음씨를 가진 임인철씨(38)도 부부 농에 의지해 7500평이라는 큰 면적에서 농사를 짓는다. 그는 소량다품목으로 몸은 고달프지만 직거래로 소득이 안정되어, 이제야 농사짓는 맛을 느낀다고 한다.

아름다운 제주에서 둥근 마음씨 하나로 둥글둥글 농사짓고 있는 제주 젊은 농부와 바닷가에서 오랜 시간 함께 했다.

a 임인철씨가 제주 바닷가를 배경으로 웃고 있다.

임인철씨가 제주 바닷가를 배경으로 웃고 있다. ⓒ 이우성

올해 날씨는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꽤 변덕스럽게 비친다. 제주도에도 두 달 가까이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아 밭에 물을 대느라 농부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제주 농부들은 여름 일기가 워낙 변화무쌍하여 악천 후에 언제나 준비되어 있다. 육지 같으면 속이 다 타들어갔을 법한데…. 그들은 하늘에 기댄 농사라 하늘 바라보며 참고 기다리는 법에 익숙한 듯하다.

임인철씨도 곧 올라온다는 태풍 소식이 한편으로 고맙기만 하다. 그는 깻잎, 오이, 상추 농사짓는 시설하우스 600평과 마늘, 양파밭 1500평, 임대한 감자, 당근밭 4000평, 단감류 심은 과수밭 등 모두 7500평 농사를 부부 노동력에만 의지해 농사짓는다.


처음에는 2만평 규모에 더덕 농사를 짓기도 했었다. 그러나 넓은 땅에서 농사짓는 것은 약탈농사인 것 같아 규모를 많이 줄였다. 그가 사는 구좌읍은 밭농사 중심으로 농사짓는데 화산토지역이라 감자, 당근, 마늘, 양파농사가 잘 된다.

그가 농사 지은 지 벌써 12년째. 제주대 농업경제학과를 나와 학생 때 학생운동하던 친구 6명과 함께 제주농민회가 핵심 멤버로 농사에 뛰어들었다. 농사짓는다고 하니까 집안의 반대도 심했고, 주위의 시선도 따가웠다. 그러나 그는 의지에 따라 사는 자신인지라 농사하다가 실패하면 다른 것들은 뭐든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현재 그는 구좌읍 마을에서 제일 어리다. 작년까지 무농약인증을 받았다가 올해 전환기유기인증(농약과 화학비료를 1년 이상 전혀 하지 않고 재배하는 농사방법)을 신청했다. 작년까지는 인증을 받았어도 일반농산물로 팔아서 마음이 아팠는데, 올해부터는 생드르영농조합에서 흙살림 회원의 농산물을 모아 하나로마트에 납품한다. 그러면서 고정적인 수입도 나오게 되었다.

결혼 후 몇 년간 농사를 짓는다니까 부인은 갈등이 많았다고 했다. 그러나 곧 농사는 혼자 짓는 것이 아니라는 걸 느꼈는지, 그녀는 자신의 예능 특기활동을 접고 농사일을 도와주고 있다. 특히 요즘은 하우스 한 동을 부인 혼자 농사지어 보겠다고까지 한다고….

그는 제주 토박이다. 초등학교 4학년 아들과 3년 아래 딸이 하나 있다. 주로 예체능 학원만 다니게 하는데, 가끔은 무당벌레잡기나 농장일도 도와준다. 이들 부부는 아이들에게 자연공부 저절로 시키는 것이 제일 기쁘다고 한다.

그들은 인증 농산물로 차별되어 팔리지 않은 유통도 문제지만 친환경 농사를 지으면서 풀에 대한 생각이 주위 사람들과 달라 많이 고민했었다고 한다.

제주도는 밭에 풀 한 줌도 허락하지 않는 풍토여서 자신의 밭에 풀이 많은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처음 그가 농사를 지을 때도 자신의 땅을 풀 천지를 만든다고 하여 사람들은 그에게는 땅을 잘 안 빌려주었다고 한다.

그를 지금까지 계속 농사짓도록 한 중심은 바로 그의 의지였다. 농사 망치면 다시 파종하면 된다는 신념이 오늘을 있게 한 것. 그는 비로소 고생한 보람을 찾는 것 같다고 흐뭇해 한다. 먹을거리 생산하는 사람에게 신념은 필수사항. 그래서 더욱 안전한 먹을거리, 우리의 먹을거리를 남의 손에 맡길 수는 없다고 입술에 힘을 준다.

비가림 하우스는 이중으로 비닐을 쳐서 여러 동을 이어 만든 것으로 가온(겨울철 온도를 높이기 위해 난방장치를 하는 것)을 전혀 하지 않는다. 농한기에는 콩과작물을 키우고, 겨울에는 깻잎, 상추 따위를 연중 재배한다. 균 배양체 퇴비인 생드르1호를 1평당 1kg을 기비(작물을 심기 위해 기초를 다지는 기본 퇴비)로 쓴다. 영양상태가 떨어지면 균 배양체 액비와 맥반석, 유산균, 어분액비(생선을 6개월 이상 부식시켜 만든 영향제)를 추비 시기에 600평에 200말을 준다. 질소질 보충을 위해 엽면으로는 1주일에 한번씩 어분액비를 꼭 준다.

병충해는 주로 잎살림 2, 3호와 마늘목초액, 제충국 추출액을 쓴다. 제충국 추출은 6월에 한다. 제충국에 꽃이 피면 꽃대를 15일 동안 말려서 에틸알코올에 넣어 숙성시켜 물을 우려서 쓴다. 나방, 진딧물, 응애는 바이오님과 파라핀유 500배를 쓴다. 깻잎 진딧물은 무당벌레를 100평당 150마리를 잡아넣어 해결한다. 노린재는 천적이 새로 생긴 것 같아 다행이다.

작물을 건강히 키우는 것이 병해를 이기는 지름길이다. 깻잎 녹병은 쉽게 잡히는 것 같다. 곰팡이병은 주위를 습하지 않게 하고, 광합성균을 관주해서 해결한다. 병은 한 번 걸리면 치료하기 힘들어 예방 위주로 한다. 하우스 환경을 과습, 과온 되지 않도록 항상 주의한다.

마늘 녹병은 마늘목초액과 석회유황합제를 쓴다. 지금까지 균핵병은 없었다. 양파 노균병도 예방 위주로 관리한다. 나방류가 더러 보이지만 내가 다 먹지 말고 벌레와도 나누어 먹자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고벌레를 보는 마음도 달라졌다.

노지 밭작물도 제초에 손이 많이 가긴 하지만 비대기(식물 성장이 최고조에 달할 때)에 어분액비를 엽면살포하여 톡톡히 효과를 얻고 있다. 역시 제주에 풍부한 생선이 농자재로 활용되어 엽채류에 눈에 띄게 효과를 보고 있다고 전한다. 어분액비는 생선부산물에 유산균, 당밀을 섞어 오랫동안 잘 숙성시켜 만든다. 제주 농부들은 집에서 거의 자가로 생선액비를 만들고 있단다.

흙살림제주연합회 조직인 생드르영농조합은 10년 전 만들어질 때부터 참여했다. 3년 전부터 감사를 맡고 있다. 생드르에서 회원 농가 물량을 수매해서 공동으로 출하하고 있다. 회원들 사이에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독특한 자가영양제 제조법도 공유할 수 있어 든든한 의지처가 된다.

"5년 내에 농사지을 젊은 사람이 없어 버려지는 땅이 많을 겁니다. 농사짓는 사람이라면 얼마 안가 임대할 수 있는 땅이 많이 나올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는 농사를 열심히 지을 수 있는 풍토가 아쉽다고 털어놓았다. 영농자금이나 후계자자금도 단기자금으로 빌려줄 것이 아니라 장기 저리로 빌려주면 농민들에게 부담이 덜할 것이라고 정책을 질타한다.

한번 농사에 실패하면 1억 이상 빚지는 것은 예사다. 수확물 등 현물을 담보로 대출받을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고 덧붙인다. 돌아오는 농촌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본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교육, 의료문제가 제일 시급한 문제라고 것. 농사짓기 위해 시골마을로 들어왔는데 교육 등 기본 인프라가 없어 다시 도시로 나간다.

a 임인철씨 하우스에서 자라고 있는 오이.

임인철씨 하우스에서 자라고 있는 오이. ⓒ 이우성

그도 1억 이상 빚이 있는데 모두 시설을 지을 때 들어간 돈이다. 또 99년에 태풍으로 농작물이 다 쓰러져서 부채가 늘었다. 그렇지만 올해는 농사지으면서 참 기분이 좋다고 말한다. 카드 빚을 내서 인건비를 댈 정도로 힘이 들지만 올해는 농사짓는 자신감이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친환경농업은 젊은 사람에게는 매력덩어리라고 말한다. 환경에 대한 철학만 있으면 서로가 상생하는 환경농업이 자신이 신념을 갖고 가야할 제 길이라는 인식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생산자 단체들도 유통문제에 각별히 대처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야 수입유기농산물을 막아낼 수 있을 것으로 그는 믿고 있다. 그래서 한국농업의 미래 완결구조가 친환경농업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한국 농업의 희망을 찾는 운동의 방법으로 친환경농업이 있는 것이므로 우선은 자신의 대문부터 잘 만들어놓고 가야 한다고 덧붙인다. 또한 정부도 제발 현장농민의 목소리를 좀 들어달라고….

농사만 지어서 먹고 살 수 있는 때를 위해 오늘도 땀방울을 쉼 없이 흘리는 그는 제주 사람 특유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에게는 때때로 불어오는 바닷가의 매운바람이 자신을 채찍질하고, 흔들어 깨우는 친구같은 자양분이기도 하다.

때마침 시원스레 불어주는 제주의 바람에 욕심 없이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그의 체취가 자연스럽게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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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한그루 심는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얼마나 큰 축복일까요? 세월이 지날수록 자신의 품을 넓혀 넓게 드리워진 그늘로 세상을 안을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낌없이 자신을 다 드러내 보여주는 나무의 철학을 닮고 싶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또 세상은 얼마나 따뜻해 질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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