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과 이간질로 수구세력의 피를 끓게하라'

조선일보가 제목 뽑는 법

등록 2004.09.08 02:45수정 2004.09.10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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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조중동 삼두사(三頭蛇)의 대가리에 해당하는 신문. 아니 꼬리격인 한나라당까지 합한 ‘조중동한’이라는 이름을 가진 뱀의 대가리다. 말하자면 조선대사(朝鮮大蛇)다. 그 조선대사의 제목 뽑는 법은 ‘중동’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수가 한참 위다.

9월 6일자 조선일보 1면 톱기사 PDF 화면.
9월 6일자 조선일보 1면 톱기사 PDF 화면.
노 대통령의 문화방송과의 대담이 방영된 다음날인 9월 6일자 조선대사 1면 머리 제목은 “노 대통령, 국보법 폐지해야” 그리고 그 밑에 엄청 굵은 고딕체의 “청와대, 사법부 정면충돌”이었다. 그리고 그 오른쪽 아래로 “北, 국보법 없어야 대화“라는 소제목의 1단 기사를 살짝 끼워 넣었다. 독자들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명백하지 않은가.

삼두사의 다른 두 대가리, 중동이가 붙인 제목은 “노대통령, 국가보안법 폐지해야”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거기에 조선대사는 “청와대 사법부 정면충돌”이라는 제목을 덧붙인 것이다. 청와대와 사법부 사이에 싸움을 붙이고 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청와대와 사법부간 큰 충돌이나 일어날(난) 것 같은 불안감이 들 것이다. 선동과 이간질의 악의가 보이지 않는가.

3면에는 1면에서와 마찬가지로 큰 고딕체의 “대통령까지 가세…온 나라가 국보법 소용돌이”라는 제목이 지면을 관통하고, 그 밑에 “여론 양분, 북한도 폐지 거들기”,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北, 국보법 찬성자는 북에 발 못 들여놔”라고 되어 있다.

국보법으로 온 나라가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되었으며 조선대사에 의해 그 주범으로 대통령이 ‘임명’되었다. ‘대통령까지’ 가세했으니 말이다. 거기에 ‘북한도 폐지 거들기’라는 문구를 끼어 넣음으로써 마치 노 대통령이 북한에 동조해서 그러는 양 보도하며 수구세력의 흥분을 유도하고 있다.

기막힌 배치 아닌가. 1면을 거쳐 3, 4면까지 읽다보면 어느새 뇌리엔 노 대통령의 국가보안법 폐지 발언으로 국가기관이 충돌하고 있고 나라가 혼란에 빠져들고 있으며 ‘그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그리고 ’대통령이 북한과의 대화를 성사시키기 위해 북한의 비위를 맞추려 그러는 것이‘라고 각인될 것이다. 결국 노린 것이 그런 것 아니겠는가. 또 수구세력이 벌떼같이 일어나 삿대질을 하게 생겼다.

아니나 다를까, 대가리가 그렇게 운을 띄우자 꼬리가 맹렬히 흔들고 나섰다. 의원총회를 한다, 호들갑을 떨더니 ‘탄핵’ 얘기도 다시 꺼낸다. 北의 비위를 맞추자는 것이냐는 얘기도 나온다.


그렇지, 안 나오면 이상한 거다. 대가리가 그렇게 얘기할 때부터 예견되었던 꼬리의 움직임이다. 그러라고 친절하게 “北, 국보법 없애야 대화”라든지 “북한도 폐지 거들기”라는 문구를 넌지시 넣어준 것 아니겠는가. 그것도 못 알아들으면 삼두사의 꼬리가 될 자격이 없는 것이다.

이런 기막힌 편집으로 재미 본 것이 어디 한두 번 뿐이랴. 최근 조선일보가 이런 편집으로 재미를 본 것은 지난 7월 16일이었다. 전날 중앙일보가 보도한 내용을 재탕하며 제목을 <의문사위 간첩 사노맹 출신 조사관/ 군사령관 전 국방 등 수십명 조사>라고 달았다. 누구나 이런 제목을 보면 피가 끓지 않겠는가. 한차례 폭풍을 예고하는 그런 제목달기였다.


그때도 수구세력이 총궐기했다. 벌건 페인트가 난무했다. 한나라당 대표의 입에서도, 의원들 입에서도 그리고 거리로 나선 군복 입은 아저씨들 입에서도 한결같이 같은 말이 쏟아져 나왔다. “간첩이 군 장성을 조사했다”고. 그리고 의문사위와 조사관 그리고 정부는 엄청난 곤경에 부딪쳤다. 그리고 한동안 우리사회에 벌건 광풍이 지나갔다.

그렇게 중앙일보가 제공한 ‘꺼리’를 잘 가공해 엄청난 재미를 본 것은 왜곡술이 뛰어난 조선일보였다. 조선대사의 누구의 머리에서 그런 잔머리가 나올까.

청와대와 사법부가 또는 그 수장들이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그리고 그 의견을 발표할 수 있다. 이번의 경우 헌재와 대법원이 먼저 국보법 폐지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힌 후 대통령이 폐지에 찬성하는 입장을 발표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먼저 발표한 헌재와 대법원의 입장을 무시하고 헌법질서를 무너뜨리려는 것이냐는 비난을 대통령에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또 굳이 어떤 쪽이 무리를 했는지를 따지자면, 사법부 쪽이라 할 수 있다. 청와대나 행정부는 무엇인가 발표를 하는 것이 일상 업무이다. 이를테면 정국운영에 대한 입장을 전 국민에게 밝히는 것은 우리가 늘 볼 수 있는 장면 아닌가.

그러나 사법부는 스스로 말하듯, ‘판결’로 말한다. ‘국보법을 폐지해서는 안 된다’라든지 거기에 더 나아가 ‘입법과정에 반영해야 한다’는 이번 대법원의 ‘말씀’은 이례적이고, 행정부와 입법부의 권한을 위축시키려는 (비록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쁜 시도이다. 사법부 스스로 삼권분립을 위반하는 것이다.

사법부는 법이 만들어지면 그에 따라 심판을 하면 된다. 사법부에서 법을 만드는 것이 아니며 이런 저런 법을 어떻게 만들라고 주문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또 대통령도 그의 소견을 발표할 수 있다. 아니, 지금과 같이 국보법폐지를 둘러싸고 이견과 혼란이 있을 때 오히려 의견개진을 하지 않는 것은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 볼 수 있지 않은가.

더군다나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질문이 나온 상황에서 사법부가 그런 발표를 했다고 해서 의견개진을 못 한다면 그 또한 보기 좋은 모양은 아니다. 그러니 제대로 된 신문이라면 사법부의 월권을 지적하고 대통령의 의견을 사실보도하면 되는 것이다. 여론을 만들어 내려는 수고로운 생각을 하지 말고.

국가보안법, 이젠 지겹지도 않은가. 국가보안법이 무엇을 ‘보안’하기 위해 사용되어왔는지,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조작으로 고문당해 다치고 죽어갔는지, 그 법이 국가보안법이 아니라 ‘정권보안법’이었다는 것을 이제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어두운 시절에 ‘조중동한’이 그 어둠의 편에 서서 사회를 더욱 어렵게 한 전력도 알고 있다. 그러니 이젠 좀 그 냄새나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그나마 남아있는 양심을 보전하는 길 아닌가.

그리고 국보법이 폐지되었을 때 대체할 형법이 없다면 모르되 처벌할 수 있는 법이 멀쩡히 있고, 그것이 모자란다면 형법을 개정해서 보완하겠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무엇이 그토록 자신 없고 두려워서 이렇게 오두방정 난리법석을 떨고 있단 말인가. 국보법이 폐지되면 정말 나라의 안보가 무너진다고 믿어서 그러는 것인가.

고마해라, 마이 써 뭇다 아이가. 이제는 정말이지 ‘조중동한’이라는 희한한 냉전괴물의 발호를 좀 그만 보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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