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농민연대 대표로 비아 깜페시나 사무총장(대표)으로 선출된 헨리 사라기(Henry Saragih)씨.오마이뉴스 권우성
오후 3시 50분께 본대회가 시작된 이후 발언에 나선 김혜경 민주노동당 대표는 "이제 우리 농민은 WTO,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거센 공격 앞에서 단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다"며 고 이경해씨가 마지막 남긴 유언인 "WTO가 농민을 죽인다"는 구호를 힘껏 외쳤다.
이어 박민웅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은 어제(10일) 많은 농민이 부상을 당한 9·10 시군대회 보고를 통해 "정부가 정읍농민대회를 무력으로 진압한 것은 '쌀시장 개방이 옳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라며 "그래도 개방을 강행하겠다면 350만 농민이 논을 갈아엎고 출하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정부의 쌀시장 개방정책에 대한 강경 투쟁 방침을 천명했다.
이날 집회에는 국제 농민운동 조직인 '비아깜페시나' 관계자들이 참석해 농업시장 개방문제에 대한 국제연대의 의지를 표명했다.
헨리 사라기 비아캄페시나 사무총장은 대표발언을 통해 "WTO는 결코 농민의 이익이 될 수 없다"라며 "전세계 농민이 연대해서 WTO가 없어질 때까지 함께 싸우자"고 제안했다. 그는 참가자들과 함께 "DOWN DOWN WTO(해체! 해체! WTO)"를 외치기도 했다.
행사가 진행될수록 빗줄기가 강해지면서 주최 측은 당초 준비했던 미국벼이삭을 태우는 상징의식을 진행하지 못하고 미국 쌀자루를 밟는 것으로 대체했다. 직전에 진행된 노래패 '우리나라' 공연 때에는 참가자들 다수가 비옷과 우산을 받쳐 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농민가'를 부르기도 했다.
문경식 전국농민총연맹 의장은 "노무현 정부는 쌀개방에 대한 진위를 밝히지 않고 미국이 시키는 대로, WTO가 시키는 대로 개방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우리 주권인 쌀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나서겠다"고 쌀 개방 저지투쟁의 의지를 불태웠다.
"농민 국제 연대 통해 WTO 체제 깨부술 것"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날 집회에서 노동자들의 연대 의지를 밝히기 위해 나선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그동안 농민이 겪은 아픔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못한 점을 우선 사과드린다"며 "WTO라는 이름의 세계경제전쟁을 이겨내기 위해 빈민, 노동자, 농민, 학생, 전문직 모두 힘을 모아 식량주권을 사수하자"고 참가자들을 독려했다.
본 대회 말미에 발표된 결의문에서 국민행동본부는 "1994년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이후 10년 만에 우리농업은 파탄지경에 이르렀다"면서 "WTO가 앞세운 농산물시장개방 압력은 오직 농업선진국들의 부른 배를 더욱 불리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국민행동본부는 "정부는 지난 '한-칠레 FTA'에서처럼 농업부분의 피해는 다소 있겠지만 공산품 수출증가로 국가적으로 이익이 될 것이라고 국민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며 "체결 이후 칠레와의 무역적자가 더욱 증가했다"고 정부의 시장개방 논리를 반박했다.
오후 4시30분께 상징의식과 결의문 낭독을 끝낸 참가자들은 각자의 손에 벼이삭을 움켜진 채 종로 탑골공원으로의 행진을 시작했다. 행렬 앞쪽에는 관모양의 나무상자 위에 '근조'라고 씌어진 천을 늘여놓아 한국농업의 위기상황을 시민들에게 알렸다.
탑골공원까지 행진을 마친 참가자들은 10여 분간 정리집회를 가진 후 5시30분경 경찰과의 별 충돌 없이 순조롭게 해산했다. 이날 경찰은 33개 중대 4000여명을 투입해 집회현장과 도로를 통제했다.
| | 농민단체, 쌀시장 개방 왜 반대하나 | | | "쌀시장 개방 전제로 한 정부 대책 신뢰할 수 없어" | | | | 93년 말에 타결된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상에서 한국은 '쌀 관세화'를 10년 유예 받았다. 유예기간이 끝나는 2004년. 한국 정부는 미국·중국·태국 등 각국과의 쌀 협상을 마무리 지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있다.
정부는 현재 '쌀 관세화' 유예를 협상 목표로 세우고 있다. 하지만 쌀 관세화 유예를 위해서는 쌀 의무수입(MMA) 물량 확대라는 상당한 대가를 쌀 수출국에 치러야 하기 때문에 협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는 국내적으로 쌀 시장 개방에 대비하기 위해 추곡수매제를 포기하고, 농지법을 개정하는 등 농업 부문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조조정'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전농 등 주요 농민단체들은 쌀시장 개방을 전제로 한 정부의 농업정책과 협상태도는 이미 파탄지경에 이른 농업에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과 다름없다며 쌀시장 개방 저지를 위한 총력 투쟁에 나서겠다고 반발하고 있다.
농민단체들이 쌀시장 개방에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전체농가의 75%가 벼농사에 종사하고 있는 현실에서 저가의 외국산 쌀이 수입된다면 한국농업 전체의 붕괴는 '불 보듯 뻔하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정부는 벼농사의 규모화를 통해 농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하지만, 농민단체들은 "미국의 경우 평균 경지면적이 190ha에 이르는데 (정부가 추진하는) 6ha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현실성이 없다"며 정부의 논리에 반박하고 있다.
또 정부는 벼농사를 짓는 농민에게 연간 5300만원의 소득을 보장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농민단체들은 "정작 농가소득의 절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수매제를 폐지하고 있다"며 "과연 어떤 방식으로 소득을 보장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스럽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농민단체들은 현재 자급률 26.9%에 그치고 있는 국내 식량사정을 감안해 볼 때, 우리 민족의 생존과 주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쌀시장만이라도 개방을 저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현재 스위스·스웨덴 등에서 채택하고 있는 '식량자급률 법제화'를 통해 식량생산의 안정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농민단체들은 요구하고 있다. 직접지불제를 통한 농가소득 보전과 국산 농산물 사용 의무화 규정을 통해 농민과 농업을 보호하는 정책도 도입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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