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데어에 있는 세계 최초의 달리는 열차 강도 현장 기념비. 비문에는 겸손하게 '서부에서 일어난 첫 열차강도'라고 적혀 있는데 주민들은 세계 최초라고 믿고 있다.홍은택
애데어는 세계 최초로 달리는 열차가 털린 ‘역사적’ 현장이다. 달리는 열차를 세우고 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때는 달리는 열차보다 더 빠른 자동차도 나오기 전이다. 창조적이면서 대담한 범행이었다. 다음은 그 사건의 개요다.
1873년 제시 제임스 일당은 네브래스카 주 오마하(Omaha)에서 출발하는 기차가 7만5000달러의 금괴를 싣고 디모인(Des Moines)으로 향한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첩보를 확인하기 위해 제시 제임스의 형인 프랭크 제임스(Frank James)와 콜 영거(Cole Younger)는 오마하까지 가서 열차의 구체적인 출발시각과 애데어 통과시각을 알아냈다.
애데어를 범행 현장으로 선택한 이유는 근처에 인가가 없고 고지이며 길이 구부러져서 열차가 서행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수법은 치밀했다. 먼저 두 줄기 선로를 5미터 가량 양쪽으로 자르고 북쪽 선로의 끝에 끈을 매달았다. 그 끈은 남쪽 선로 밑을 통과해서 미리 파놓은 구덩이로 이어졌다. 이 구덩이에 대기하고 있던 제임스 일당은 이 끈의 끝을 붙잡고 있었다.
해가 채 저물지 않았던 오후 8시, 오마하를 출발한 기차가 오는 것이 보였다. 열차 기관사는 선로가 그 자리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절단돼 있는 것을 알 수가 없었다. 열차가 다가오자 구덩이 속에 있던 제임스 일당은 힘차게 끈을 끌어당겼다. 그러자 잘라놓은 선로가 이탈하면서 기차는 탈선해 둑에 처박혔다. 모두 4량이었는데 기관차와 화물차 한 량은 옆으로 넘어져 기관사가 즉사하고 화부는 부상을 입어 나중에 사망했다. 다행히 승객을 태운 객차들은 넘어지지 않았다. 제임스 일당은 바로 총을 쏘면서 기차에 접근, 차장을 위협해 금고를 열도록 했다.
당시의 지역신문인 <데일리 아이오와 스테이트 레지스터(Daily Iowa State Register)>는 “흠잡을 데 없이 치밀한 계획에 따라 이뤄진 훌륭한 작전 수행이었다”면서 “한가지 흠이라면 전보의 통신선로를 끊지 않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흠은 딴 데 있었다. 금고를 열자 찬란하게 빛나는 금괴는 간데없고 불과 1700달러만 들어있었다. 7만5천 달러의 금괴를 실은 열차는 이미 지나간 뒤였다. 강도들의 정보 수집력 한계였다.
그들의 분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몇날며칠을 준비하고 도상연습한 뒤 잠복해서(철로를 절단한다는 게 쉬운 일인가) 위험을 무릅쓰고 돌진했는데 꿈에 그리던 금괴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자 7명의 무장강도들은 체면도 없이 갑자기 좀도둑으로 바뀐다. 승객들을 협박해서 몇 달러씩 코 묻은 돈을 털었다. 모두 3000달러. 그것을 7명이 나눠야 한다. 그들은 15분만에 작전을 끝낸 뒤 근처에 매달아 놓은 말을 타고 남쪽으로 떠났다. 말 위에서 그들이 나눴을 ‘이거 인건비도 안 나오는구먼’ 이라는 푸념 소리가 지금도 귀에 들려오는 듯하다.
중국은 정말 인구가 많다. 어딜 가든 중국 사람이 없는 데가 없지만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그들의 많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데일리 아이오와 스테이트 레지스터>에 따르면 승객들 중에는 30명의 중국인이 있었다. 상류 출신의 이 학생들은 미국의 동북부인 뉴 잉글랜드(New England)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와 동서 횡단 열차를 타고 가던 중이었다. 그들은 혼돈의 와중에서 내내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고 한다.
그들이 제임스 일당에게 여비를 보태줬는지는 기록에 나오지 않는다. 사건이 수습되고 새벽 1시에야 인근 마을에 들어간 그들은 ‘미국은 지옥 같은 나라(Hell country)’라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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