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의 유산은 인간이 평범하게 살 권리마저도 빼앗아가 버렸다. 지구촌나눔운동은 지난 2001년 베트남 북부 꽝닌성에서 분쟁 피해자들에게 의료보조기를 지원했다.지구촌나눔운동
지구촌나눔운동의 활동 가운데는 분쟁이 있었던 지역의 피해자들에게 의수·의족·휠체어를 지원하는 지구촌 의지ㆍ보조기 지원 사업이 있다. 그래서 베트남을 방문해 피해자들을 조사한다. 그럴 때마다 전투의 직접적 피해나 고엽제 후유증 등 분쟁으로 인해 피해를 겪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고엽제 피해자는 베트남 정부의 발표만으로도 62만 명에 이른다. 그런데 이들 중 심각한 경우는 분쟁 당시의 직접적인 피해자보다 하떠이성 남매처럼 선천적인 고엽제 피해자들이다. 남매의 경우처럼 고엽제 피해는 당사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후대에 소아마비, 언어장애, 정신적 장애로 이어진다.
베트남에서 만난 분쟁의 희생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현재의 모습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살고 있다. 폭격으로 인해 어린 나이에 발목을 잃고 의족으로 재봉틀을 돌리며 생계를 꾸려가는 여인부터, 월맹군으로 참가하여 월남군과 전투 중 다리를 잃고 살아가는 노인까지…. 그러나 그런 삶은 분쟁이 강요한 선택일 뿐인 것이다.
어쩌지 못하는 현실에서 달리 아무런 희망이 없지만, 그럼에도 인간으로서 살고자 하는 '묵묵함'인 것이다. 그런 삶을 대할 때마다 분쟁의 이면을 보는 듯하다. 분쟁은 이른바 '승자'에게 정치적 승리를 가져다주었을지는 모르지만, 그 분쟁에 참여한 인간에게는 깊은 상처를 주었다. 특히 그 분쟁의 유산은 인간이 평범하게 살 권리마저도 앗아가 버렸다.
2000년 짧은 기간 동안 방문했던 캄보디아에서 만난 밝고 순박한 사람들. 그러나 그런 모습 이면에 자리잡은, 과거로부터 전해져 미래를 억누르는 분쟁 유산을 확인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프놈펜의 전상자 치료 병원을 방문했을 때였다. 불과 10년 전까지 진행되었던 크메르 루주와의 전투와 치열한 권력다툼으로 인해 생겨난 상이군경과 그 가족들을 만났다. 지저분한 병원 안에서 그들은 여전히 긴장된 상태로 붉게 충혈된 눈으로 이방인들을 경계하는 듯했다.
전투 당시 10대 후반의 나이에 붉은 수건을 목에 두르고 광기와 술과 마약에 취해 마음껏 살육하던 크메르 루즈 전사들은, 40대 중반이 되었는데도 불안에 떨다가 과거의 행적이 발각돼 거리에서 돌에 맞아 숨지기도 한다고 한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분쟁을 종식하고 평화를 이루러 들어온 유엔군과 관리들이다. 그들 중 일부는 밤마다 거리에서 성매매를 벌이곤 했다. 그 결과로 발생한 AIDS는 새로운 안보 위협요소가 돼 버렸다. 분쟁과 빈곤이 또 다른 악으로 변형돼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 아부그라이브에서의 치욕적인 고문을 당한 이라크 병사들, 그리고 지난 4월 이라크 난민구호 활동 중 나시리아에서 억류된 나를 총을 든 채 감시하던 어린 10대 메흐디 민병대원, 절규와 비명을 남기고 사라져 간 김선일 씨…. 모두 분쟁의 희생자들이다. 모두 평범한 삶 속에서 친구로 만나 어울리고 음식을 나누며 이웃이 될 수 있었던 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