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새책 9권] 모리스, 여자의 '몸'을 샅샅이 훑다

<벌거벗은 여자> <캐테 콜비츠> <소년의 눈물> 등 출간

등록 2004.09.17 15:19수정 2004.09.17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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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와 편견의 대상을 '이해의 대상'으로
- 데스몬드 모리스의 <벌거벗은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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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먼앤북스

인간의 몸을 인류학적이고, 사회학적으로 고찰한, 그러면서도 '재미'라는 키워드를 잃지 않은 책 <털 없는 원숭이>를 기억할 독자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몸을 오해의 대상이 아닌 이해의 대상으로 인식전환케 해준 영국의 동물학자 데스몬드 모리스가 새 책을 냈다. 이번엔 여자의 '몸'이 그의 탐구대상이 됐다. 영국과 한국에서 동시 출간된 <벌거벗은 여자>(휴먼앤북스).

사실 이제까지 '여자의 몸'이란 편견과 왜곡의 대상이었던 게 사실이다. 괜한 환상과 유추를 통해 여성의 몸은 지나치게 신비화되거나 폄하되어 왔다. 그것은 남성의 몸 또한 별반 차이가 없었다. 하기야 이성의 정신과 육체를 완벽히 이해한다는 것은 세계를 해석하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

모리스는 자신의 전공을 십분 발휘, 여성의 몸이 가진 메커니즘과 특성, 진화의 과정과 인체 각 부분이 보내오는 육체적 신호 등을 철저하고 명확하게 해부한다. 보다 정밀한 접근을 위해 모리스는 여성의 신체를 눈과 입술, 손과 입, 가슴과 성기, 엉덩이와 음모처럼 미시적으로 나눠 분석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요사이는 일상적으로 입술에 칠하는 립스틱이 17세기에는 '매춘부의 표식'이었다는 사실, 가슴이 반구 모양으로 진화한 것은 기능과 무관한 성적 신호와 연관성이 있다는 지식들을 만나는 것은 단지 관능적인 느낌만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기쁨을 준다.

저자인 데스몬드 모리스는 1928년 영국에서 태어났으며, 버밍엄 대학에서 동물학을 전공했다. 런던동물원에서 포유류 담당자로 오래 일했고, 7권의 저서와 50여 편의 전공논문을 발표할 정도로 나이를 뛰어넘는 정력적인 저술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번 책은 <유전자 인류학>을 번역한 이경식과 2003 동계올림픽 IOC 수행위원 통역을 담당한 서지원이 공역했다.


위대한 독일 판화가의 일기와 만나다
- 전옥례 역 <캐테 콜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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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디네

프랑스의 극작가 로망 롤랑은 이렇게 말했다. "그녀의 작품은 가난에 찌든 자들과 민중의 고통과 슬픔을 밝게 비쳐주고 있다.…마치 자비스런 어머니처럼 그들의 아픔과 슬픔을 포옹하고 있다." 중국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노신(魯迅)은 또 이렇게 말한다. "보면 볼수록 점점 우리의 심금을 휘어잡고 흔들어대는 힘을 느끼게 한다."

동·서양을 넘나드는 두 명의 예술가에게 극찬 받은 이 사람은 누굴까? '직조공의 봉기' 연작과 '더 이상 전쟁은 없다'라는 판화로 유명한 캐테 콜비츠(1867∼1945). 평생을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이자 동지로, 전쟁과 파시즘을 반대하는 전사로 살아온, 하여 '미술계의 로자 룩셈부르크'로 불리는 콜비츠의 일기가 출판사 운디네에 의해 독자들과 만났다.

그녀가 41살이던 시절부터 죽을 때까지 기록한 일상의 세세하고 미묘한 그림자들을 만나는 기쁨은 각별하다. 17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콜비츠의 일기가 세상의 빛을 보게된 것은 아들 한스 콜비츠의 공이 컸다. 그는 어머니의 육필원고를 주제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일기와 함께 수록된 그녀의 판화, '죽은 아이를 데리고 있는 여자', '어머니들', '노동자' 등에서는 아직도 민중의 서늘한 슬픔과 뜨거운 분노가 그대로 전해진다. 그렇다. 명작은 시간을 뛰어넘는 법.

판화가 이철수는 추천의 말을 통해 "역사와 현실 앞에 정직했던 한 예술가가 생애를 통틀어 이루어낼 수 있는 예술적 성취가 어떠한 것인지 알고 싶다면 콜비츠를 보시라 권하고 싶다"라며 이 위대한 예술가에게 경의를 표했다.


'느리게' 사는 삶의 아름다움을 읽다
- 김주연 에세이 <헤르만 헤세와 임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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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저자의 이름만으로 신뢰를 주는 책들이 가끔 있다. 그가 살아온 방식과 이룩한 문학적 성과에 대한 의심을 가질 필요가 없는 사람들. 문학평론가이자 숙명여대 독문과 교수인 김주연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다.

김환태평론문학상·팔봉비평상 등을 수상한 바 있는, 그런 까닭에 어렵고 딱딱한 평론만을 써왔다는 터무니없는 오해를 받고있는 김주연이 '말랑말랑한' 에세이를 출간했다. "세상을 느리게 살아 보라, 진리는 그 느릿느릿한 걸음 속에서 발견될 것이다"라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책 <헤르만 헤세와 임어당>(작가)이다.

'논란과 충격만이 횡행하는 종말의 시대에 던지는 눈밝은 작가의 날카로운 해법'이란 출판사의 헤드카피처럼, 책에서는 지금 '이곳'의 고통과 절망을 극복하고 보다 아름다운 '저곳'으로 가기 위한 지도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부자로 살 필요 없는 이유'와 제목과 동명인 에세이 '헤르만 헤세와 임어당'은 수록된 19편의 글 중 백미다.

"얼마나 자주 우리는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끊임없이 입을 열고 있는가"라는 김주연의 세상을 향한 질책은 기자 또한 아프게 한다. 우리, 무엇을 알려 노력하고, 무엇을 알았을 때 진정 알았다고 말할 것이며, 대체 무엇을 알아야 할 것인가. 의문은 이어진다. 그 의문에 대한 답도 책 속에 숨어있을까?

한 줄 이상의 의미로 읽는 신간들
책... 나무... 시인... 그리고 문학과 만화

ⓒ돌베개
서경식의 독서일기 <소년의 눈물>(돌베개)
인간을 키우는 절반의 힘은 독서다. 책을 읽지 않는 자가 어찌 세상사 온갖 이치에 눈뜰 수 있을 것인가. 재일 미술평론가 서경식의 유년시절을 지배한 책은 어떤 것들이었을까.

친구들과 뛰노는 것보다 책읽기를 좋아했으며, 꾀병을 부리고 학교까지 빠지며 토마스 만과 니콜라이 바이코프를 읽던 조숙한 독서광의 진솔한 기록이 독자들을 매혹한다. 전작 <나의 서양 미술순례>를 읽은 것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남효창의 <나는 매일 숲으로 출근한다>(청림출판)
나무와 숲의 생리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는 사람. 청청한 푸른빛 애정으로 가득한 숲전문가 남효창의 따뜻한 글과 더 따뜻한 사진이 보기에 참 좋다.

김진경 시집 <지구의 시간>(실천문학사)
<슬픔의 힘> 이후 4년만에 재회하는 기쁨. 통렬한 풍자와 직격으로 점철됐던 젊은 날을 지나 이제 지천명을 훌쩍 넘긴 시인. 그는 또 어떤 노래로 우리를 웃기고 울릴 것인가?

김태형 시집 <히말라야시다는 저의 괴로움과 마주한다>(문학동네)
뜨거운 열정과 차가운 고독 사이를 오가는 젊은 시인의 정신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들과 만나다. 우리는 왜 세상을 사막으로밖에 인식할 수 없는 것인가.

계간 <대산문화> 가을호
임철우와 강석경, 이순원과 이승우가 진단하는 '우리 세대의 문학'이 특집으로 실렸다. 원로 극작가 오태석과 후배 장성희가 진행한 대담도 눈길을 끈다.

마정원 만화 <나른한 오후>(샘터)
이것을 리얼리즘이라고 불러야 하나? 초현실주의라고 지칭해야 하나? 200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만화부분 당선자인 신예 마정원이 그의 방식대로 세상과 인간을 읽어냈다.

벌거벗은 여자 - 여자 몸에 대한 연구

데즈먼드 모리스 지음, 이경식 외 옮김,
휴먼앤북스(Human&Books),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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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에 대해 알고 싶은 22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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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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