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들에게 먹이 줄 수 없어 안타까워"

'경비원 아저씨는 고양이를 좋아해' 보도 그후

등록 2004.09.20 03:45수정 2004.09.20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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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새끼 고양이들이 아파트 지하실에서만 지내다 드디어 어미 고양이를 따라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새끼 고양이들이 아파트 지하실에서만 지내다 드디어 어미 고양이를 따라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 정연우

지날 7월 31일 '경비원 아저씨는 고양이를 좋아해'라는 기사를 쓴 적이 있다. 기사의 주된 내용은 부산 수영구 남천동 B아파트의 경비원 아저씨 김진도(64)씨가 버려진 고양이 19마리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고양이 사랑'을 무려 10년 동안이나 실천해왔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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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 경비원 아저씨는 고양이를 좋아해

기사가 나간 후 B아파트 고양이들에게 많은 변화가 생겼다. 물론 좋은 변화도 있었지만 안타까운 변화도 있어 오늘 소개하려 한다. 우선 좋은 소식은 고양이들에게 새 식구가 눈에 띄게 늘었다는 것. 첫 기사를 쓸 때 새끼 고양이들은 아파트 지하실에서 살고 있어 그동안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이후 조금씩 아파트 모습을 익히기 위해 어미 고양이를 따라 아파트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새끼 고양이들은 아직 사람들을 경계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많이 적응했는지 조금씩 혼자서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까운 소식은 이제 경비원 아저씨가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경비원 아저씨 김진도씨에 따르면 <오마이뉴스>를 통해 기사가 나간 뒤 방송국 2곳에서 아파트에서 고양이 이야기를 촬영해 갔는데, 방송 후 아파트 측에서 더 이상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마도 방송을 통해 B아파트에 버려진 고양이들이 생활한다는 것이 소개됨으로써 아파트 이미지가 나빠질 것을 우려해 내린 주민들의 결정인 것 같았다.

대신 전에 집에서 키우다 버려진 고양이만은 경비 아저씨가 경비실에서 키우기로 허락받았다고 한다. 이유는 아직 그 고양이는 밖에서 직접 먹이를 구할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경비아저씨가 맡아 키우기로 한 것이다.


a 전에 집에서 버려진 고양이는 요즘 경비실 내에서 살고 있다. 이 고양이는 항상 여유로운 자세로 누워있다.

전에 집에서 버려진 고양이는 요즘 경비실 내에서 살고 있다. 이 고양이는 항상 여유로운 자세로 누워있다. ⓒ 정연우

하지만 나머지 고양이 18마리를 경비원 아저씨가 모른 척 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경비실 내에 먹이를 놓아두고 배고픈 고양이들이 있을 때 고양이들이 스스로 먹이를 찾아 경비실 안으로 들어와 먹고 가곤 한다고.

경비원 김진도씨는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기사를 보거나 방송을 보고 나를 알아보기 시작했지만, 이제 고양이들에게 떳떳하게 먹이를 주지 못하는 형편이라 안타깝다”고 했다.


경비원 아저씨로부터 이 이야기를 들은 기자는 고양이들에게 미안해 고양이들을 위해 먹이를 주기로 결심했다. 내가 소시지 몇 개를 사 들고 고양이에게로 가자 고양이들은 금세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고양이들 중에는 어미를 꼭 닮은 새끼고양이들도 함께 있었다. 먹이를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고자 소시지를 여러 조각 내 한 마리도 빠짐없이 먹이를 던져주었다.

이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던 아이들 2명도 금세 고양이들이 귀여운지 소시지를 사와 나와 함께 먹이 주는 일에 동참했다.

a 어미 고양이가 잠시 자리를 비우자 새끼 고양이들은 자동차 밑에서 숨어 주위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 왼쪽에 있는 새끼 고양이는 코를 다쳤는지 흉터가 있다.

어미 고양이가 잠시 자리를 비우자 새끼 고양이들은 자동차 밑에서 숨어 주위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 왼쪽에 있는 새끼 고양이는 코를 다쳤는지 흉터가 있다. ⓒ 정연우

고양이들은 오랜만에 맛있는 먹이를 발견했다는 듯이 재빨리 소시지를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역시 그동안 고생을 많이 해선지 예전처럼 사람이 가까이 오는 것은 두려워했다. 그리고 고양이들 중에는 상처를 입은 고양이들도 꽤 있었다.

새끼 고양이 한 마리는 코를 다쳤고 어미 고양이 한 머리는 한쪽 눈을 다쳤는지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 먹이를 다 먹은 고양이들은 다시 자기들끼리 모여 자동차 밑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아까 경비실 안에 있던 집 고양이는 역시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아파트 주차장 바닥에 편안하게 누워 몸의 털을 다듬지만 버려진 고양이 18마리는 자동차 밑으로 숨어 있는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a 자동차 옆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고양이들. 앞으로 경비아저씨가 먹이를 줄 수 없어 고양이들이 직접 먹이를 구해야 한다

자동차 옆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고양이들. 앞으로 경비아저씨가 먹이를 줄 수 없어 고양이들이 직접 먹이를 구해야 한다 ⓒ 정연우

이제 경비원 아저씨가 제대로 돌보지 못할 고양이들을 위해 대신 내가 당분간 먹이를 계속 줄 생각이다. 하지만 나뿐만 아니라 앞으로 동네 아이들도 먹이를 준다고 했고 그동안 고양이들에게 생선뼈를 주던 동네 주민들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가볍게 느껴졌다.

세상의 인심이 각박해져가는 요즘, 조금씩 마음을 나누고 살아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는데 난 그 첫 번째로 버려진 고양이를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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