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NPO전야의 이사로도 활동중인 서경식 교수는 "재외 동포들의 참정권 문제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 한국전쟁 중에 태어나 분단 속에서 성장했다. 일본에 살면서 이런 조국의 현실을 외면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나.
"당연히, 나도 혼란스러운 나라를 못 본 체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게 아니다. 옥중에 계셨던 두 형님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조국의 현실을 외면하지 못했던 것은 재일 조선인들에게 일본은 좋은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재일 조선인으로서 태어난 곳이기도 하고, 안락한 사회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아니었다."
- 일본사회에 대해 가장 크게 느낀 문제점은 무엇인가.
"해방 뒤, 일본이 과거의 식민지배를 평가하고 책임지는 사회였다면 긍정적으로 일본사회에서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일본사회가 역사적 책임을 부정하는 마당에 그 나라의 일원이 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두 번째는 내면적인 이유가 있다. 열 다섯의 나이에, 1966년 나는 처음으로 한국에 왔다. 그때 경험이 결정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재일교포 하계휴가학교였는데, 주로 반공교육과 우리말교육을 하는 '섬머프로그램'이었다. 이때 처음 받은 인상은 한국사회의 경제적 비참함이었다.
일본에서 넉넉하게 산 편은 아니었지만, 껌 파는 아이들과 구두 닦는 아이들을 보는 것은 충격적이었다. 내가 만일 인도나 에티오피아처럼 여행자의 마음으로 조국을 방문했더라면 크게 문제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돈 좀 주세요!' 하는 소년은 나 자신이나 마찬가지였다.
해방 뒤 사촌 할아버지가 귀국해 어렵게 살고 있었다. 우리 아버지는 일본에 남아 한국으로 귀향한 친척들의 생활비를 보탰다. 아버지가 그들처럼 귀향했다면 나도 그 소년들과 똑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 북한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졌나.
"당시 나는 반공교육의 일환으로 전방에 갔었다. 망원경을 통해 북한군을 바라보았고, 그때 우리들은 이 북한군이 언제 남한을 칠 지 모른다는 '교육 아닌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북한 쪽에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살고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와 함께 일본에 살던 동포들이 저편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으로 간 사람들은 대부분 일본에서 받는 차별을 피하기 위해서 북송선을 탔다. 그들은 조만간 남북통일이 되어 곧 만난다는 기대를 가지고 북으로 갔던 것이다. 북으로 간 사람들이 분단을 원했던 것은 아니다.
만일, 나의 아버지가 반공주의자가 아니었다면 나도 북한에 갔을 지 모른다. 또, 경제적으로 가난했다면 북으로 갔을 지 모른다. 내가 원하는 민족통일은 선진조국의 건설을 바라는 게 아니다. 식민지 시대이래 분열된 자신의 여러 모습들을 통일하는 것을 바라고 있다. 민족통일은 각기 떨어져 있는 자신의 분신을 자유롭게 만나고, 교류하는 과정 속에서 통일을 이루는 것이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은 북한, 중국 등 전세계에 퍼져있는 우리 민족들이 서로 만나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해외동포법도 마찬가지다. 조선적을 가지고 있는 10만 명의 해외동포들은 이 법의 대상자가 아니다. 이 법의 목적은 재미동포들의 투자를 촉진하는 데 있다고 들었다. 이 법은 남북대립 상태를 해결하지 않은 채,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세력만을 강화시킬 뿐이다."
"재일동포들은 한국, 일본, 북한 모두에서 단 한번도 투표해본 일이 없다"
- 현재 해외동포들은 선거권이 없다. 따라서 참정권이 금지돼 있다고 봐야 하는데, 어떤 도움이 필요한가.
"놀라운 일이겠지만, 재일 동포들은 한국, 일본, 북한 모두에 단 한번도 투표해본 일이 없다. 우리는 투표권이 없다. 본국에 대한 투표권과 일본 정치에 대한 참정권 문제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
우선, 국내문제를 먼저 말하겠다. 대통령선거와 국민투표의 경우에는 반드시 투표권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한국정부가 어떤 정부냐는 재외동포들에게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1965년 박정희 대통령과 일본정부가 한일협정을 체결하면서 과거사에 대해 애매하게 넘어갔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당시 상황과 지금의 정치의식은 굉장히 다르다. 지금의 정치의식은 매우 성장해 있다. 당시 한국정부가 일본정부에게 재일 동포들의 참정권문제를 지적하지 않은 것은 문제다."
- 재일동포들은 국내선거에 관심없다는 주장이 있다.
"국내에서는 재일 동포들이 이기적이다, 정치의식이 없다, 무관심하다고 비판하겠지만, 그것도 이유가 있다. 정치행위를 해본 일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 한일협정 체결당시 일본사회도 매우 시끄러웠다. 그때 재일조선인들이 일본인들과 똑같이 평등선거를 치렀다면 우리는 그 협정에 반대했을 것이다. 한일협정은 결코 재일 조선인에게 유리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 일본에서는 어떤가.
"일본의 경우, 일본국적을 가진 사람만 투표권을 준다. 헌법상으로는 국적에 상관없이 투표할 수 있다. 주민세를 지불하는 사람은 투표권은 준다는 규정이 있다. 물론 나는 주민세를 내고 있다. 그러나 나는 투표권이 없다.
오사카의 이쿠노구의 경우에는 재일조선인이 1/4이다. 이들이 이 지역 주민세의 1/4을 내고 있다. 그러나 일본 지방자치법에 따라 투표할 수 없었다. 최근 이런 기묘한 상황을 인식한 사람들이 외국인 중 주민세를 지불하는 사람들에게 참정권을 달라고 요구하는 운동이 진행중이다.
그런데, 일본의 보수언론은 이 움직임을 반대하고 있다. 보수언론들은 투표하고 싶으면 일본국적으로 귀화하라는 식으로 나온다. 과거 식민지배와 관련해 역사적 청산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우리더러 귀화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굴복이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국적 있는 사람들에게만 참정권을 주는 것은 '국민주의'다. 그런데 이것은 매우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한국정부도 한국국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 보호한다. 한국정부의 '국민주의'도 일본의 '국민주의' 흐름을 강화시키는 작용을 하고 있다.
재일 동포인 정태균 코마자와대학 교수는 일본 보수언론이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주장을 하고 있다. 재일 조선인들에게 주민자치권을 줄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다닌다. 정태균 교수는 한국말도 못하고, 한국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왜 일본인이 되지 않느냐, 왜 참정권을 주장하느냐고 말하고 있다.
정태균 교수의 말은 일본 우익들이 좋아하는 발언이다. 더군다나 일본사회에 살고 있는 소수자 입에서 나왔기 때문에 더욱 좋아한다. 그러나 재일 조선인의 입장에서 이 말은 매우 힘 빠지는 발언이다."
"진상규명 없이 화해와 용서를 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