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산대놀이 마지막회

놀이는 끝나고

등록 2004.09.21 16:03수정 2004.09.21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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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전의 난리는 진압이 되었고 7명의 목이 매어 달린 뒤 나중에 잡아들인 이들은 매만 쳐 돌려 보내는 선으로 수습이 되었다. 법적인 근거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논란을 거듭했던 상인의 처벌 문제는 싸전 상인 중 정종근과 창고를 제공한 여객 주인 김재순이 사형을 당하는 선으로 마무리 되었고 경상의 행수 배수도나 다른 싸전 상인들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았다. 백위길은 난리를 맞아 제대로 처신하지 못했다 하여 포교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상심 마옵소서. 인생지사 새옹지마(人生之事 塞翁之馬)라지 않습니까? 어쩌면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모릅니다.”


애향이는 애써 백위길을 위로했으나 백위길은 며칠간을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집에만 틀어박혀 있을 정도였다.

“진짜 도적은 잡지도 못하면서 무고한 백성은 일곱이나 목을 매달았네. 더욱이 다른 포교와 종사관들마저 망설일 때 백성들의 난동을 막으려 한 건 나일세! 어찌 이리 처사가 불공정할 수 있단 말인가.”

위로하기 위해 찾아온 끔적이 내외와 개똥이에게 백위길은 탄식을 거듭했다. 끔적이는 백위길을 달래며 같이 장사를 시작해 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해왔다.

“장사라......! 하하하...... 왜들 이러시오. 높으신 뜻을 가진 분들이 같이 장사나 해 보지 않겠냐니...... 속셈을 알 수 없구려.”

백위길의 태도는 사뭇 냉소적이었다.


“더구나 귀한 사람을 데리고 다니면서도 말이외다...... 전의 말은 혹 나를 홀리기 위해 지어낸 말이 아니오? 따지기도 할 겸 혜천 스님을 한번 만나봐야겠소.”

끔적이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침울한 표정을 지었고 그 이후 개똥이와 처를 데리고 한양을 떠나버렸다.


“이보게, 백 포교!”

포교에서 쫓겨난 지 보름여, 하릴없이 누워서 세월을 보네고 있는 백위길에게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백위길은 화들짝 일어나 문을 열었다. 그를 부른 사람은 옴 땡추였다.

“무엇하러 여기 온 게요?”

백위길은 경계심이 일어 잔뜩 긴장한 태도였지만 옴 땡추는 평소 그러하듯이 태연한 모습으로 마루에 걸터 앉아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냥 얘기 좀 하러 온 것일세.”

“그냥 가시오.”

백위길은 신경질적인 태도를 보이며 문을 닫으려 했으나 옴 땡추는 문을 떡 하니 움켜쥐었다.

“나도 이젠 예전 같지 않다네. 그러니 마음 편히 가지고 내 제의를 받아들이게나.”

백위길은 만약을 대비해 방구석에 단도를 숨겨 놓은 것을 상기시키며 잡았던 문고리를 놓았다. 옴 땡추는 마른 기침을 해 대었다.

“거 시원한 물 한잔만 있으면 떠다 주시오.”

백위길은 무슨 흉계가 있을까 염려스러워 자리에서 미동도 않으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뒤로 돌아가면 독에 떠놓은 물이 있으니 직접 가서 드시구려.”

옴 땡추는 쓴웃음을 지으며 독으로 가 물을 떠 마신 후 앞마당을 이리저리 천천히 걸어다니며 주위를 살펴보고선 허허 웃기도 했다. 묘한 행동을 하는 옴 땡추를 보며 백위길은 더욱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지금 뭐 하는 것이오?”

옴 땡추는 우뚝 멈춰 밖으로 나와 보라는 듯 손짓을 했다. 순간 백위길은 저도 모르게 경계심이 풀려 서서히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때가 놓치면 할 수 없는 일이오. 이미 변해야 할 때 변하지 않음은 천시를 거슬리는 일임을 사람들은 어찌 모른단 말이오? 내 금강산에 인삼밭을 일구어 놓은 것이 있기에 사람들을 데리고 가 크게 장사를 해 볼 요량이오. 조금 있으면 아는 사람들이 찾아올 터인데 너무 늦는구먼.”

잠시 후 세 명의 사내가 찾아왔는데 그들은 놀랍게도 박춘호, 이순보, 그리고 별감이었던 강석배였다.

“이보게 백포교! 자네도 이젠 포도청에서 내쳐졌다 들었네! 우리와 함께 가세나!”

백위길은 옴 땡추의 제안이 진정임을 알고서는 한편으로 안심이 되긴 했지만 갑자기 결정을 내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루만 말미를 주시오.”

옴 땡추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사람들은 백위길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내일 새벽에 데리러 올 것이니 옷가지와 짚신만 장만해 놓게나 여비는 다 마련해 놓았네!”

뒤에서 숨어 얘기를 엿듣고 있던 애향이가 나와 백위길에게 조심스레 물어 보았다.

“정말 그러실 것입니까?”

“......모르겠소이다.”

“전 홀몸이 아니옵니다.”

“......”

그 날 밤 백위길은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새로운 일은 무섭구나.’

그러나 막상 새벽이 지나고 해가 뜨도록 밖에는 아무도 백위길을 찾아오지 않았다.

“이보시오. 박선달! 백씨는 정말 데려가지 않을 것이오?”

새벽 일찍 허여멀쑥한 사내와 똥싸게 땡추를 데리고 길을 나선 옴 땡추에게 박춘호, 이순보, 강석배가 동시에 물어보았지만 그는 다만 웃음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내가 한번 갔다오리까?”

박춘호의 말에 옴 땡추는 손사래를 쳤다.

“아닐세! 난 그 자를 여기 남겨두고 싶네. 자네들과는 달리 그는 언젠가 포도청에서 다시 부를 것이라 여기네.”

“겨우 그런 짐작으로 말입니까?”

강석배가 의아하다는 듯이 묻자 옴 땡추는 다시 크게 웃었다.

“사실 우매한 그가 날 남겨둔 걸세! 서로 미련 따윈 버리기로 한 것을 그가 알았으면 하네. 다 함께 걸판지게 놀지도 못할 것이면 떼어놓고 와야 하는 것인데 왜 난 진작에 그러지 못 했나. 이 나라가 바뀌어야 할 때 바뀌어야 하는 것인데 왜 사람들은 미련을 두나.”

옴 땡추의 말에는 어느덧 슬픔이 배여 있었다. 그 시각, 백위길도 넋두리를 내뱉고 있었다.

“미련한 사람들이로세 같이 놀자 말하고선 결국에는 그러지 못하는구나. 그러면서 어찌 세상사를 자기 뜻대로 하려 했단 말인가.”

멀리서는 혜천이 한양에서 돌아온 끔적이 일행을 맞이하고 있었다.

“놀이는 아직 끝나지 않았네. 다만 광대가 없기에 사람들도 곧 흩어져 버릴 것 같아 두려울 뿐이네. 다시 제대로 된 광대를 찾아 금강산으로 가야겠네.”

그렇게 놀이는 끝나고...... 사람들은 쓸쓸히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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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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