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소연이 통하지 않는 나라, 미국

내가 본 미국(2) 나이아가라 폭포로 유명한 도시 버팔로 들어가기

등록 2004.09.21 19:51수정 2004.09.22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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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국부터 순조롭지 않은 미국 땅 밟기

길고 긴 비행을 거쳐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라 구아디아다 공항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뉴욕 시티와 근접한 여러 도시들을 경유하는 비행기들이 이착륙하는 곳이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가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버팔로 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

나이아가라로 가는 교통 수단은 비행기 이외에 버스나 기차, 대여 차량 등이 있다. 하지만 JFK 공항에서 나이아가라까지 비행기 이외의 다른 교통 수단으로 이동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가는 시간도 하루 종일이 걸리며 버스나 기차, 대여 차량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뉴욕의 중심부인 맨해튼까지 들어가야 한다.


a 나이아가라 폭포의 웅장한 모습

나이아가라 폭포의 웅장한 모습 ⓒ 강지이

차라리 조금 비용이 소요된다 할지라도 그냥 에어 버스를 이용해 JFK에서 라 구아디아다 공항으로 이동하는 편이 더 낫다. 이 두 공항은 에어 버스로 연결되어 있어 짐이 많은 승객에게도 편리하다. 잔뜩 찌푸린 하늘 아래 공항 서비스 직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에어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한다.

공항에 있는 서비스 직원들은 형광색 자켓을 입고 사람들을 안내한다. 성질 급한 안내원들은 빠른 말투로 어디를 가느냐고 묻고 승차용 티켓을 끊어 준다. 13달러짜리 티켓을 넘겨 주고는 공항 주변 고속도로 정체가 심해서 버스가 오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고 설명을 한다.

대충 승객들에게 라 구아디아다에서의 탑승 시각을 물어 보는데, 몇 번이나 잊어 버리고는 다시 물어 본다. 그리고는 정체가 심해서 아직 안 오고 있다는 둥, 탑승 시간이 충분하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둥 승객들을 붙들고 말이 많다. 껌까지 질겅질겅 씹으면서 승객들에게 알려 주는 것이 그들의 임무인 듯싶다.

드디어 버스가 도착했다. 탑승 시간이 충분하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서비스 직원의 말과는 달리 공항 발권 센터에 도착하자마자 기다란 발권 줄이 늘어서 있다. 비행기를 놓칠 것 같다는 사정을 말해 봤자 기다리라고 한다. 아주 무심한 태도로…. 내가 급한 것이지 자기들이 급한 것은 아니라는 여유 만만한 태도에 어이가 없다.

결국 2시 30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놓치고 말았다. 그 다음 비행기는 6시 30분인데 대기자로 올리는 것밖에 안 되고 그 다음 노선인 7시 반 비행기를 예약해 준다. 대기자는 미국 용어로 'Stand-by'라고 칭한다. 결국 스탠바이 상태에서 공항 내부를 어슬렁거렸다.


영국에서 꽤 오랜 기간 체류했던 나에게 미국인들이란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상당히 다른 가치관을 가진 존재로 보였다. 영국인들이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으면서도 어려움이 닥치면 친절한 태도로 도와 주려 노력하는 반면, 미국인들은 남의 일에 참견하면서도 정작 도와 주지는 않는다.

아니, 도와 주는 방법도 제대로 모르고 또 도와 주려는 의지도 그다지 없어 보인다. 그러다가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일이 발생하면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도움을 주려 한다. 그것이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에서라기보다는 자기가 흥미롭고 성취하고 싶어서일 때가 많다.


스탠 바이 상태로 공항을 배회하다가 내가 타려는 US 에어라인의 한 직원을 붙들고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미국처럼 하소연이 먹히는 나라도 또 없을 것 같다.

"내가 타려는 비행기가 2시 30분 건데 놓쳤어. 지금 언니가 공항에 마중 나와 있을 텐데 휴대폰도 없고 연락이 안 돼서 답답하네. 어떻게 그 쪽 공항에 연락해서 언니한테 집에 들어갔다가 나중에 나오라고 하면 안 될까?"

대답은 역시 황당하기만 하다. 자기네가 그 쪽에 연락할 수도 없고 또 연락처도 모른다는 것이다. 정 답답하면 내가 직접 버팔로 공항에 연락해서 언니와 연결을 취하라는 것이다. 결국 현지에 있는 한국 항공사에 전화를 걸어 버팔로 공항의 전화번호를 알아낸다.

전화를 걸자 자동응답기로 연결되는데 우리식 사고로 '경찰'의 번호로 연결을 신청했다. 한 경찰이 받자 통사정을 시작했는데 그 사람이 한다는 소리가 버팔로 공항에 다시 전화하라는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낭비한 전화 요금이 얼만데…' 억울하기만 했다. 결국 버팔로 공항에 다시 전화를 해도 언니랑 연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불친절한 대답뿐이다. 한국의 한 항공사에 전화를 해서 사정을 했더니 어떻게든 언니랑 연락을 취하겠다고 이야기한다.

어찌어찌 언니와도 연락이 되고 남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아까 내가 비행기를 놓쳤을 때 어떻게 빠른 비행기 표를 구할 수 없겠냐고 통사정을 했던 항공사 직원이 다가온다. 스탠 바이로 올라가 있었는데 6시 30분 비행기에 좌석이 좀 남을 것 같으니까 기다려 보라는 이야기이다. 역시 하소연한 보람이 있나 보다.

6시 30분이 다가와도 아무런 얘기가 없자, 항공사 부스 근처를 어슬렁거렸더니 내 이름을 부르면서 그 직원이 환호성을 지른다. "야! 너 좌석 얻었어. 드디어 가네." 마치 자기 덕분에 빠른 표를 얻은 것 같은 말투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버팔로 공항은 어둠에 싸여 있었다. 이곳은 나이아가라 폭포를 가기 위한 관문이다. 그 규모는 우리 나라의 대구 공항 정도로 작지만 수많은 미국 관광객들이 이 공항을 통해 나이아가라 폭포를 방문한다.

미국인들이 허니문으로 제일 가 보고 싶은 곳으로 꼽은 나이아가라 폭포 덕분에 국제 공항으로 이름나게 된 버팔로 공항. 버팔로 자체는 경주 정도의 작은 도시이지만 여기서 40여분만 가면 나이아가라 폭포에 이르게 된다. 또 이 근처에 있는 도시로 코닥 회사가 설립된 것으로 유명한 로체스터가 있다.

드디어 버팔로 공항에 도착하면서 나의 본격적인 미국 여행이 시작되었다. 시작부터 만만치 않은 게 '아, 미국이란 나라가 이렇구나! 미국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행동하고 사고하는구나'하는 느낌을 절실히 받는다. 그 느낌이 이 여행기 속에 자세히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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