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의 행동화, 의석군을 응원하며

[주장] 자신의 믿음과 신념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등록 2004.09.23 00:21수정 2004.09.23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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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들과 술을 나누다 보면 종종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 나누게 됩니다. 물론 수컷들 대화가 늘 그렇듯이 자주 삼천포로 빠지기는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이야기의 골자는 결국 "네가 믿고 주장하는 바를 스스로 실천하는 것은 혓바닥으로 팔꿈치 핥는 것 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였습니다. 까놓고 이야기해서, 홍상수 영화에 나오는 류의 마초들의 환상이 현실화되었을 때 넌 그것을 거부할 수 있느냐, 뭐 이런 이야기들이죠.

얼마 전 뉴스에서 학내 종교 자유를 위해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대광고등학교 학생 강의석군의 이야기를 듣고 전 '참 신선하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 신선함은 곧 놀라움으로, 그리고 경외감으로 바뀌었습니다.

a 강의석군. 대광고 정문 좌측에는 학생들을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글귀가 새겨 있다.

강의석군. 대광고 정문 좌측에는 학생들을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글귀가 새겨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의석군을 둘러싼 학교 시스템은 종교와 권위라는 미명 아래 그를 비난하고 박해했습니다. 학생들을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만들겠다는, 사랑을 근본 정신으로 하는 종교를 숭배하는 이 미션 스쿨은, 민주 사회에서 개인이 응당 누려야 할 종교의 자유를 주장한 의석군을 퇴학시켰고, 법원의 가처분 결정으로 돌아온 그를 또다시 처절하게 차가운 구석으로 내몰았습니다.

'예배 선택권'을 주장하며 단식 투쟁 중인 의석군은 주위에서 강제로 입원을 시키려는 데에 위협을 느끼고 가출을 감행하였으며, 실종 4일만에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체력이 악화되어 발견되었습니다. 현재 의석군은 가족에 인계된 이후에도 여전히 투쟁의 의지를 버리지 않고 있으며, 그의 단식은 44일째에 접어들었습니다.

의석군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칼자루를 쥔 대광고는 "예배가 싫으면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면 되는 일을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우리도 정말 힘들고 괴롭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다른 미션 스쿨들이 연합하여 동시에 '예배 선택권'을 채택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의석군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의석군이 미션 스쿨이 아닌 다른 곳으로 전학을 가면 모든 것은 해결될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의석군을 괴롭히는 갖가지 논쟁들의 가장 일관된 주장이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나 편하고 합리적인 판단이겠지요. 법원의 가처분 결정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의석군이 그 즈음에서 투쟁을 접고 전학을 택했더라도 그는 '신통방통한 젊은이'로 기억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의석군을 그럴 수 없습니다. 이것은 그의 신념이기 때문입니다. 사고하는 인간으로써 응당히 주장하고 누려야만 할 '자유'에 대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대광고라 해서, 미션스쿨이라고 해서, 그리고 기독교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참으로 눈물이 쏟아져 내립니다. 의석군의 파르라니 깎은 머리를 보면서, 피골이 상접한 얼굴에 투쟁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눈자위를 보면서,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는 피켓을 들고 관계 관청 앞에 초연하게 서 있는 이 소년을 보면서 말입니다. 믿음과 신념에 대한 이토록 강한 의지 앞에서 어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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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필

도대체 신념의 행동화에 대해서 이토록 간명하고 확연하게 이치를 드러낸 자가 우리 사회 어디에 있었습니까. 누구나가 자신의 이익과 물질에 대한 욕구를 주장하고 갖가지 거짓 담론들만이 사방에서 허무한 목소리를 내고 있을 때, 의석군은 자신의 소박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외롭고 쓸쓸한 투쟁을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제가 다니는 학교도 기독교 미션 스쿨이고, '채플'이라는 이름으로 예배 참여를 강제하고 있습니다. 이미 오래 전에 이 과목을 패스하면서 도대체 왜 우리가 이런 과목을 들어야만 하는지 모르겠다고 창피한 줄 모르고 핏대 높여 재잘거리던 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 얼마나 한심한 노릇입니까. 저는 의석군처럼 자신의 소신과 믿음을 위해서 투쟁하지 못했으며, 점차 상쇄돼 가는 시스템들에 대한 반감을 '연륜과 중용'이라는 미명 아래 비겁하게 긍정하고 있었습니다.

제발 의석군의 투쟁 앞에서 오로지 특정 종교의 폐단 혹은 우월성에 대한 지루한 논쟁들만이 난무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의석군의 행동은 단순히 종교의 자유와 기독교의 개방 담론을 위해 기록되고 지워질 이야기 거리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개인이 지향하고 주장하는 믿음들을 과연 얼마만큼이나 실제로 실천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실천할 수 있을 것인지 심각하게 자문하고 고민해봐야 할 것이며, 이 숭고한 개인의 운동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여야 할 것입니다.

의석군의 외롭지만 의롭고 위대한 투쟁은 지금 이 시간에도 막강한 기독교 시스템들에 의해서 왜곡되고 박해 당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자신들이 존경해마지 않는 성인들께서 종교의 자유를 위해 얼마나 핍박받고 어떻게 순교되어 왔는지 돌이켜보아야 할 것이며, 지금이라도 기업화로 왜곡된 형태에서 진정한 종교 본연의 모습로 돌아와야만 할 것입니다.

권위 의식에 사로잡혀 사리 분별의 기능을 잃어버린 작금의 모습은 진심으로 불쾌하고 섭섭합니다. 지금 당신들 손으로 또 하나의 순교자를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시공간을 관통하여 언제나 항상 옳았던 명제는 개인의 자유와 투쟁의 숭고함이었습니다. 부디 역사가 증명하는 이 명백한 사실을 외면하지 말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강의석군의 쾌유와 승리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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