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지민이가 나를 보고 울어"

현실적인 육아정책이 아쉽습니다

등록 2004.09.23 14:28수정 2004.09.23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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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는 듯한 더위가 어느새 물러가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입니다. 특히 이번 주는 추석연휴가 시작되기 때문에 사람들의 얼굴은 고향에 간다는 설렘으로 상기되어 있습니다. 저도 대구에 있는 부모님과 아들을 보러 간다는 생각을 하면 입가에 웃음이 번집니다.


a 소리내어 웃고 있는 아들

소리내어 웃고 있는 아들 ⓒ 전진한

얼마 전에 태어난 것 같은 아들은 벌써 만 5개월이 되었습니다. 아들이 크는 것을 보면 세월의 무게가 조금씩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 부부와 아들이 떨어져 산 지 벌써 3개월. 처가에 아기를 맡길 때만 하더라도 하루에 15시간 이상씩 곤히 누워 잠만 자던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뒤집고, 뒤척이고, 잠시도 가만히 누워 있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알아듣지 못하는 옹알이를 하루종일 할 정도로 많이 컸습니다.

또한 아들은 소리 내어 웃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들과 떨어져 살기 때문에 전 아들이 소리 내어 웃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장모님께서 아들이 소리 내어 웃는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아들이 벌써 사람을 알아보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지난번 대구로 내려갈 때만 하더라도 누가 안아줘도 좋아하며 잘 놀았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장모님이 옆에 없으면 아들은 금세 불안해하며 서러운 눈물을 쏟아낸다고 합니다. 할머니를 엄마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아내는 2주에 한 번씩 대구에 있는 아들을 보러 내려갑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 가지 시간적, 물질적인 문제로 인해 한 달에 한 번도 내려가기가 힘이 듭니다. 그만큼 아들과 사랑을 나눌 시간이 너무나 부족한 것이지요.


얼마 전 아내는 아들을 보기 위해 대구에 내려갔습니다. 매일 봐도 보고 싶을 텐데…. 2주에 한 번씩 보니 아들이 얼마나 보고 싶었겠습니까? 아내는 아들이 있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여보 지민(아들)이 진짜 많이 컸어."
"그래? 많이 예뻐졌어?"
"응…. 근데 여보! 지민이가 나를 보고 울어."
"왜?"
"낯선 사람이 있어서 그런가봐. 할머니가 잠깐 나갔거든."


아내의 말에 가슴이 너무나 아팠습니다. 아들이 낯을 가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항상 봐주시던 할머니가 옆에 없으니 아들은 불안했나 봅니다. 아들은 가끔씩 나타나는 엄마를 자신의 엄마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아내가 아들의 그 모습을 보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무능한 남편이 모자간의 사랑도 멀어지게 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더욱 걱정되는 것은 저입니다. 아내는 그나마 2주에 한 번씩이라도 내려가서 얼굴을 익히고 있지만 한 달에 한 번도 제대로 가지 못하는 저는 아들이 얼마나 기억할까요?

이번 추석에 내려가 아들을 안으려고 한다면 아들은 우락부락한 아저씨의 모습을 보고 경악할 것 같습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 아픈 얘기입니다.

하지만 저와 비슷한 가정은 주위에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아기가 한 명이라도 출산하면 부모 중 한 명이 육아를 전담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 보니 아기는 가족이든 기관에 맡겨져야 합니다. 저희 가정처럼 일간 친척들이 모두 지방에 있는 사람들은 아기와 정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은 더욱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한나라당 안상수 의원 등 여야 의원 29명은 셋째 이후 자녀에게 보육료를 지원하는 내용의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이 법안의 내용은 이미 서울시와 일부 지자체에서 출산장려 정책의 하나로 이미 시행되고 있기도 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저 법안이 서민들에게는 그저 황당한 얘기로만 들리는 것은 왜일까요? 한 명의 아기를 키우기 위해 이같이 전쟁을 치르고 있는 가정에서 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 셋째를 낳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젊은 부부들이 아기를 가지지 않으려고 하는지 정확한 문제점을 지적하지 못하고 있는 정부와 정책에 그저 답답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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